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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운 Nov 03. 2022

일직선으로 꾸는 꿈

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1     


나, 그리고 너 

4도로 인쇄된 유리구슬 아래에 있지 그 너머로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너의 눈꺼풀이 일직선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나는 유리궁전을 만들고 싶었지 내 꿈속에서. 모두가 미끄러지는 실패를 겪고 대신에 아무도 자라지 않는 투명하고 징그러운 이야기가 가능한 세계 속 궁전.     


“왜 그렇게 잔인한 것만을 사랑해?”

네가 물으면 나는 궁전의 빛이 닿기 전 네 눈가에 손차양을 만들어 주면서, “이런 나의 마음이 어디에도 없는 세상이라서”

입술을 짓씹고      


엽서가 될 만큼 오래된 산책을 하러 가고 싶었어       


         

2    

 

슬픈 여자는 꿈을 꿨다 그보다 더 슬퍼 보이는 금붕어가 그에게 안기는 꿈을 내가 태어났을 때 슬픈 여자는 금붕어보다 슬픈 표정으로, 금붕어가 팔다리 없이 기어 다녔던 꿈에서 도망쳐서 만난, 팔다리를 가지고도 태어나 기어 다니는,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3  

   

지금 나는 

죽어서 문진이 된 개가 누르고 있는 글을 읽고 있다      


그럼에도 힘차게 뒤를 받쳐 줄 감정의 힘이 온전하지 않다면, 내 원한에는 척추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시 태어나다』, 수잔 손택  

          

개는 목줄을 당기면서 내 분노를 헤아렸고  

그는 조롱하지 않고도 나를 허물어뜨릴 수 있었다     


이토록 간결한 사랑의 마음     


생각해 보면 

그가 신이었는지도 모르지      


매일 같은 흙길을 걷는 전례만을 요구하는 소박한 신 말이야      


          

4     

불의 나라에 간 적이 있다 그들은 내 워킹 비자를 살펴보고 그들의 ㅂ, 부, 불, 불행에서 춤추도록 허락했다 나는 그 나라에서 연인의 손을 잡고 타오르는 불을 집거나 먹을 수도 있었다      


아니 잠깐     


생각해 보면 

그가 신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때 나는 신의 존재와 그가 만들었다는 연옥에 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취미가 있었으므로 그의 손을 놓고 물었다     


당신은 어디에서 연원한 신입니까?  

    

그는 어항의 모양처럼 웃으면서    

  

아니, 나는 다만 사랑   


        

5     


마지막 바캉스의 때가 도래하면

     

우리, 서로 잘못 그어진 채로 

폭죽이 터지는 해변가를 걷고 있을지도 몰라    

  

바다는 거꾸로 일어서서 

우리의 산책에 동참했다      


평화롭고 두려운 순간이 활동사진처럼 이어졌다 아주 오래      


해변가로 팔다리 없는 금붕어가 밀려오고 

나는 그것을 물어 가는 개를 바라보면서  

    

이마로 떨어지는 폭죽 소리      


“이런 것들도 번역할 수 있어?”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언어들과 손짓들이 불투명해지는 질문을 음악처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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