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성공을 높이는 방법1
‘꼰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참 재미있는 어감을 가진 단어이다. 사용하기 민망한 단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의미론적으로 아하 싶은 명확한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표현을 듣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분 나쁜 단어이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로 꼰대는 늙은이, 나이 든 사람 등을 뜻한다. 지금은 그 의미가 확장되어 나이가 어려도 권위주의적인 사람을 꼰대라 칭하기도 한다. 우리는 꼰대라는 단어를 대부분 소통의 관계에서 사용한다. 이야기(특히 정보와 지식)를 나누는 관계에서 권위도 없으면서 권위주의적인 상대를 비꼬는 은어적 호칭으로 사용한다. 어른이나 리더와 같이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을 우리가 무조건 꼰대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는 것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권위주의적인 사람을 ‘꼰대’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꼰대’의 어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어로 백작(伯爵)을 의미하는 단어인 ‘콩테(comte)’가 그 어원이라는 설을 나는 신뢰하는 편이다. ‘콩테’는 어쩌다 ‘꼰대’가 되었을까?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활동한 프랑스 선교사들이 자신들을 높여 ‘콩테’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귀족, ‘콩테’를 흉내내던 일본인 점령자들이 일본어 발음 ‘꼰대’로 자신들을 지칭하게 되었을 것 같다. 일본인 점령자 ‘꼰대’들이 하던 행동이 조선인들의 눈에 곱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꼴같잖던 행동을 하던 그들을 ‘꼰대’라 계속 불렀을테니 그 뜻이 지금처럼 권위없는 권위주의자를 비하해서 부르는 은어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이 가설(어원)을 지지한다.
옛부터 ‘꼰대’들이 가진 태도와 그들이 한 행동은, 아는 것을 자랑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강요하며 따르기를 요구하는 태도와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와 행동은 모두가 경계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리더는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리더는 정보가 많다. 경험도 많다. 당연히 지식도 많다. 그러다보니 아는 게 많음이 저절로 표시가 난다. 그래서 조심하지 않으면 리더의 행동과 태도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모습으로 보여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팔로워들에게도, 간혹 친구나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리더는 ‘꼰대’가 아주 쉽게 될 수 있다.
하긴, 리더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을 다양하고 오래 산 사람들은 그럴 가능성이 크다. 아니, 요즘 사람들은 다 아는게 많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꼰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는 것을 잘 전달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쌓이고 이어져야만 역사가 만들어지고 진화가 되듯, 아는 것의 전달은, 쌓고 이어지게 해 역사와 진화를 만드는 과정으로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아는 것을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아주 쉽게 꼰대가 될 수 있을만큼 어렵다.
지식과 경험의 전달과정은 여러 방법으로 이루어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글을 통해 내가 나누고자 하는 나의 미천한 지식과 경험 역시, 글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프로토콜이 맞아야만 원활하게 수행된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관계에 있는 모두가 프로토콜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 모두와 내가 프로토콜을 맞출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급변하는 현생에서는 프로토콜 맞추는 과정 자체를 무시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전달이 어렵다. 어렵다보니 전달자체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든, 쌓이고 이어지게 해야하기에 소통은 우리에게 필수적이다.
중요하지만 어려운 전달작업, 이 작업의 성공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프로토콜이 중요하다. 하지만 프로토콜 맞추기는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 유용한 전달방법이 코칭기법에 있다.
전달방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나의 경험은 여러 장면에서 있었다. 대표이사로 재직중에도 종종 있었다. 나름 정제된 언어로, 전달받는 직원들의 관점을 감안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전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 전달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적잖게 하였다. 나 나름으로 프로토콜을 맞추는 작업을 했지만 나만의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답정너라는 피드백이 돌아오기도 하였었다. 나름 노력한다고 하는데도 왜 답정너라는 피드백이 올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코칭을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찾게 되었다.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당사자가 가지고 있다고 코치들은 믿는다. 따라서, 코치는 클라이언트(또는 피코치)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이어야 한다. 하지만 수련 초창기에는 답을 빨리 찾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답을 구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답이라는 어설픈 믿음에, 내가 답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었다. 그래서 ‘티칭하지 말고 코칭하라’는 피드백을 수도 없이 받게 되었다.
아마도 회사에 있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답을 주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교과서에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답을 찾을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코칭과정에서 내 모습이 그랬다. 수련을 받는 과정에 코칭장면을 녹화하거나 녹음해서 리뷰를 하고 피드백을 받아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내 모습이 확인되더라. 가르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더라.
많은 리더들이 나와 같을 것이다. 나름 정제된 언어로, 리딩하는 대상들의 관점을 감안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전하고 나누는 노력들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의 주제에 함몰되어, 그리고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조직의 환경에만 비추어, 프로토콜을 맞추지 못할 뿐만 아니라 팔로워들이 스스로로 답을 찾을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이게 정답이야라고 알려주는 행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꼰대’가 되어있을 것이다.
고쳐지기 쉽지 않다. 하지만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꼰대가 된다. 꼰대가 되면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없다. 그럼 이어지지 않고 쌓이지도 않는다. 티칭하지 말고 코칭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렇다면, 티칭과 코칭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기다림이라 생각한다. 기다리면서 도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답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는 과정에 함께 하면서 필요로 되어지는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질문으로 내 이야기의 전달대상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을 갖게 해야 한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코칭도 받는 건가 보다. 여튼, 우선 머리로라도 잘 알고 훈련을 통해 실천해보자. 티칭말고 코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