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큰 Aug 26. 2022

찾는 기쁨 헤매는 기쁨

여름에는 도서관 | 두 번째 이야기


지어진 지 40년이 다 되어가던 우리 동네 공공 도서관은 코로나가 발생해 전 세계가 혼란스러웠던 2020년 초에 한참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나는 때마침 공사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테니까. 대신 나중에 도서관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면 누구보다 확실한 단골이 되어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도서관 공사가 끝난 뒤에도 팬데믹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단단히 벼른 사람답게 수시로 바뀌던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나름 알차게 도서관을 이용했다. 이름 빼고 거의 모든 것이 달라진 도서관이 좋아서였다. 넓어진 주차장과 말끔해진 건물 외부는 물론이고, 실제로 건물 규모가 커진 것도 아닌데 마치 마술을 부린 듯 넓고 쾌적해진 도서관 내부의 변신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서가와 테이블의 배치가 맘에 들었다. 단순히 일자 형태로 놓여있던 서가의 절반이 곡선 형태로 바뀌고 네모네모 했던 열람 테이블도 둥글둥글해져 서가와 서가 사이에 어우러져 놓여있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찾으려고 서가를 따라 걸으면 둥그런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서 산책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요즘 도서관들은 대부분 이런 느낌으로 지어지는 듯. 자칫 무겁고 딱딱하게 느껴지던 도서관이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해지는 건 언제나 대찬성이다.


다만 이런 형태의 구조가 책 찾는 걸 어렵게 만들 때도 있다.


직선 형태의 서가에서 책을 찾을 때는 대개 서가들이 청구기호 순서대로 연달아 놓여있기 때문에 책을 찾기 쉽다. 반면 곡선 형태의 서가는 불규칙적으로 휘어서는 전혀 엉뚱한 장소에서 다음번 서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 도서관은 하필 내가 주로 자주 찾는 800번대 서가가 그랬다. 예를 들어 813번대 책을 찾다 보면 갑자기 서가가 끝나면서 이런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한국소설 (813.7)은 열람 테이블 건너편 곡선 서가로 이어집니다. >>> 오른쪽 4단 서가’

또 833번대 책을 찾으려고 서가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안내 문구를 만난다.

‘일본소설(833.6)은 열람 테이블 건너편 서가로 이어집니다. >>> 오른쪽 840 서가 왼편’

네? 건너편 서가 어디? 오른쪽 서가 왼편이라고요? 오른쪽, 왼쪽? 아이고 헷갈려.


이런 안내 문구가 도서관 내부 지도와 함께 여기저기 적혀있는 걸 보면 책 찾기가 까다롭다는 걸 도서관 측도 아는 듯. 초반에 나는 꽤나 서가 사이를 헤맸다. 누가 보면 저기 저 아줌마가 왜 저렇게 뱅뱅 돌아다니나 했을 것이다. 괜한 오해를 받기 싫었던 나는 결국 안내 지도를 핸드폰으로 찍은 뒤, 알아보기 쉽도록 촘촘히 청구기호를 적어둔 나만의 도서관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지금은 청구기호만 알면 사서 뺨치게 책을 금방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인가. 심지어 제자리에 없는 책을 찾는 노하우도 생겼다. 검색대에서 책을 검색하면 분명 대출 가능한 책이라고 나와 있는데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책 말이다.


그런 책은 일단 해당 서가 주변부터 살핀다. 다른 이용자가 그 책을 꺼내본 후 실수로, 혹은 대충 근처 아무 서가에 꽂아두었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만약 신간이거나 요즘 핫한 책을 찾는다면 서가보다는 대출반납 기기 근처에 있는 반납도서 트레이(북트럭이라고 하나?)에 놓여있거나 사서가 있는 데스크 근처의 신간 코너(혹은 이달의 책 코너)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직원에게 바로 문의해야 하는 책도 있다. 출간된 지 너무 오래되었거나 폐기할 정도로 낡은 책,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책은 직원들이 오픈된 서가에서 빼서 따로 보관해두니까. 그런 책을 검색해 보면 서고 위치 란에 ‘직원 문의’라고 따로 친절하게 적혀있다. 예전엔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서가 앞만 내내 서성거린 적도 있다.

또 일반도서와 똑같은 체계로 번호가 매겨져 있지만 ‘청소년 책’ ‘부산출판’ 등과 같은 말이 따로 붙은 책도 있다. 그런 책은 일반 서가가 아니라 그런 책만 따로 모아둔 서가에서 찾아야 한다.


한 번은 내가 이런저런 방법으로도 도저히 책을 찾지 못해 사서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사서 역시 나와 똑같은 순서로 책을 찾아다녔다. 그분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났다. 사서와의 책 찾기 게임에서 비긴 기분이랄까. ㅎㅎ 그깟 책 찾는 게 뭐라고. 한때는 사서가 꿈이었던 나. 그 수많은 책 속에서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척척 찾아내는 사서의 능력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삶의 방향도 인생의 해답도 이렇게 도서관 책처럼 척척 찾아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오십을 코앞에 둔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이 나이가 되면 뭐든 어느 정도 길이 정해져 그대로 살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던 거다. 또 다른 갈림길과 또 다른 미로는 언제든 내 앞에 나타나 나를 헤매게 한다. 앞으로 불행한 사고를 당하지 않고 크게 아픈 곳도 없어서 고맙게도 평균 수명만큼 산다고 하면 아직 몇십 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헤매고 있어도 될까. '무기력이란, 에너지를 써야 할 방향을 잃었기 때문에 찾아온다’는 어느 전문가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다만 그럴 때마다 나는 찾는 기쁨만큼이나 헤매는 기쁨을 주었던 도서관의 책들을 떠올린다. 누구보다 빠르게 원하는 책을 찾는 도중에 느닷없이 내 눈에 띄어 갑작스러운 내 손길을 받고는 오랫동안 닫혀있던 책장을 활짝 펼치며 숨을 쉬었던 책들을. 그중에는 내 손길에 보답이라도 하듯 내 마음을 찌르르하게 만드는 책들이 종종 있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숨겨진 보석 같은 책들이 있었다. 그 책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갈림길과 미로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듯이 정답 또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헤매고 있는, 아니 어쩌면 영영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는 나에게 조금은 느긋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려 한다.  n


photo by 눈큰 / iphone xs


이전 10화 뒷이야기#5 그리고 한여름 밤의 도서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