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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07. 2021

[인생 후르츠], 나이드는 건 이렇게

찾아내기

  [타샤의 정원]을 영화화한다면 이런 느낌일까?[리틀 포레스트]의 노년판이 이쯤되려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배경이 일본이라면 이렇게 될까? 내멋대로 명작들에 갖다붙여 조합해본다.

이 영화는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이미 간략한 소개에서 짐작했듯이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것이 아닌 극도의 리얼리즘을 표방하며 바쁘면서도 잔잔하게 흐르는 노부부의 시간을 조용히 따라간다. 

  주인공인 87세 할머니와 90세 할아버지가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그들의 하루하루는 결코 허투루 흐르는 법이 없다.

  할머니는 남편에게 매일 정갈하고 영양가있는 밥상을 차려준다. 정작 본인은 마멀레이드 바른 토스트가 전부이면서 할아버지를 위해 장어를 굽고 생강 초절임을 만든다. 속이 더부룩해진다며 마다하는 감자로 고로케와 카레를 만들어 할아버지에게 대접하기도 한다. 철저히 남편의 식성에 맞춰 매번 새로운 메뉴로 다소 번거로운 끼니를 차려낸다. 심지어 그 작업은 남편이 생을 마감한 뒤에도 계속된다.

  과정에 괴움이나 번거롭고 귀찮음은 없다. 제삿밥까지 이어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진심어린 고귀한 사랑이 담겨있을 뿐이다. 근면성실을 넘어 한결같은 사랑을 유지한다는 것이 어디 결코 쉬운 일일까. 


  과거에 건축가였던 할아버지는 지론대로 자연을 집안에 들이는 삶, 가장 큰 건축이 곧 자연이 되는 삶을 건사해간다. 정원에 농작물을 채우고, 계절의 변화에 맞춰 땅을 솎아주고, 새들이 마실 물우물도 마련해 놓는다.

금전적인 유산보다 먹고 호흡할 수 있는 비옥한 땅을 물려주기 위해 토양 개선에 힘을 쏟는다. 가을에서 넘어가는 길목, 낙엽 거름을 모아 양질의 흙을 기름지게 채워넣는다. 그 건강한 영토에서 재배된 농작물은 인형의 집 소유자인 손녀에게 1달에 1번씩 배송된다. 함박 스테이크, 매실장아찌, 콩, 무, 체리를 통해 조부모의 사랑이 건네진다.

  인형의 집은  손녀 하루코가 어렸때 할아버지가 수제로 만들어준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이다. 플라스틱이 배제된 나무와 천으로 만들어진 애정어린 작품이다.


  남편이 극도로 미울때, 부동산이 답임을 외치며 돈이 정신을 지배할때, 실팍한 삶을 잠재우고 견고하게 내실을 기하고 싶을 때 봐야할 영화임에 틀림없다.


  어린이날 기념 안양천 걷기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다. 주말 아침 7시부터 색다르고 기념할만한 하루를 열고자 모여든 가족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군중속에 섞여 걷고 있는데 풀셋트로 등산복을 착장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따님의 직업, 해외 여행 경험, 아는 지역구 의원에 대한 이야기와 정치에 대한 개탄까지 그 짧은 시간 그분의 인생사와 가치관을 응축해 듣고 말았다. 작정하고 보폭을 맞추어 말상대를 찾은 그분의 관심은 시후 본인에서 타인으로 넘어다. 터울이 큰 것을 보니 안 낳으려다 낳았겠다는 추측성 발언이 아들 2를 향해 전해졌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탄생과 존재 여부에 대한 평을 듣는 것은 무안함을 넘어 무례함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아이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마치 길에서 본인의 신념어린 종교를 강권하는 사람을 만난듯 불편한 기분이었다.

  잠시후 곁을 파고들며 아주머니 한분이 구운 계란을 건네고 황급히 사라지셨다.

"아가, 이거 먹어. 새벽부터 기특하네."

좀전의 해프닝 따위는 잊은듯 웃으며 계란을 우겨넣는  아들 2의 표정을 보며 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으라는 말이 우스갯 소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끼어들어 교란시키지 않는, 정도를 걷는 노인이 되고 싶다.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고 주장보다 경청에 능숙한 노인이 되고 싶다.

   

  나이듦과 죽음은 시기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공평한 일 중 하나이다.

  오래된 붉은 파벽돌 건물과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보며 저무는 인생이 대해 조해본다. 벗은 자연은 계절에 맞게 본연의 모습으로 변한건 안쓰러운 핍의 산물로 여겨진다. 이미 을 틔우고 열매를 양산해내고 잠시 휴지기를 갖는 일련의 과정을 이루는 중인도.

인생역할을 다하고 소멸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은 이제 다 내려놓고 떠나기 위한 준비의 목적이자 종착지이다.

  장지로 향하는 날, 미래의 나의 장례식 버스안 풍경을 상상해본적이 있다. 버스에서 흐느끼는 소리나 정적보다 유희열의 「공원에서」, 김광진의 「편지」, 아이유의 「무릎」, 조수미의 「바람이 머무는 날에」가 흘러나왔음 좋겠다고 생했다. 계절은 4월 초 벚꽃이 흩날릴때면 여한이 없겠다는 바람이다. 혼자 떠나도 외롭지 않을 봄날, 만물이 소생과 삶의 사그러이 함어울려 화합과 축복 장이 되으면 하는 마음에.

죽음이 또다른 생의 탄생을 저해하는 것이 아닌 소과 동시에 재탄생의 마중물이 되기를 소망하며.

  (영화에 대한 단상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참 먼데까지 생각의 가지를 뻗어냈다. 연상의 잉여짓 오늘도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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