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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19. 2021

느슨한 운동이 주는 편안함, 겨울산

찾아내기

  '피땀흘리며 필사적으로 해내야 하는 것' 운동으로 정의내리는 나름의  고정관념이 있었다. 막상 하지 않으면서 늘 '해야하는데'몸에 대해 빚진 마음만 늘려갔다. 미안함만 안은 채 채무를 갚을 길은 요원하고 의지박약인 상태로 지냈다.

  몸이 고될 정도로 숨 할딱거리며 독하게 성취해야 하는 것는 나와는 영 맞지 않았다.

  온몸을 불살라 에너지를 소모하고 칼로리를 태워가며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일은 정중히 사양한다. PT는 돈내고 벌받는 기분일테고, 헬스는 혼자하니 과연 재미 있긴 한걸까? 물에 대한 공포심으로 수영은 안되겠고, 디스크로 요가나 필라테스는 요원하다.

  무엇보다 육체적 에너지를 운동에 소진하면 다른 일상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끌어올 힘이 바닥날것만 같았다.

  효과적인 운동의 순기능으로 근력이 생기고, 단련이 되면 오히려 삶의 활력이 된다고 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활기찬 삶을 영위할 수 있겠지만 이상하게 운동에는 영 구미가 당기지도, 의지가 샘솟지도, 용기와 엄두가 나지도 않는다.

  이미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과 정신적 압박, 책무를 요하는 일들이 이미 일상 생활 만연해있다. 고로 운동까지 중압감을 느끼며 해내기에는 부침이 생긴다. 신체의 신진대사와 다이어트, 근육 강화, 체지방 감소 등의 효과보다 다 내던지고 편하게 퍼져있고 싶은 갈망이 더 큰 것이다. 은연중에 심리적 저항감이 거세지며 몸의 활동을 저지하는 것이다.


  비굴한 변명일 수 있겠지만 설렁설렁 걷는 일, 뛰지 않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뒤뚱이는 경보, 뻐근한 몸이 딱 시원해질 정도의 스트레칭, 천천히 산을 오르락거리는 일이 혹 운동 될 수 있다면, 그 정도로도 인정이 된다면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겠다. 가시적 효과가 미미해 격렬한 운동이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몸에 대한 미안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이 요동침을 나는 느슨한 운동이라 명명한다.

느슨한 운동에는 모든 것이 박자를 맞추어 갖춰져 있을 필요가 없다. 일상의 상태 그대로 마음과 시간과 날씨가 동요한다면 행하면 된다. 빡세게, 가열차게, 열정적으로, 완벽히 갖추려는 부담을 안고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몸에 대한 죄책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한발짝 움직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하나마나한 미미한  움직임은 겨울 산행과 많이 닮아있기도 하다.

겨울산을 오르내리며 산행이 그닥 부담스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실내복에 롱다운을 걸친들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으니 복장에서 자유롭다. 난방이 잘된 헬스장에서처럼 윤곽을 두드러지게 살려주는 옷을 부담스럽게 걸칠 필요가 없다. 겨울은 가려진 옷차림으로 비교적 외양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므로 주눅들 필요가 없는편이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동하지 않거나 눈과 비, 한파같은 악천후를 핑계로 심리적 압박을 내려놓을 수 있고 마음껏 시기를 유예시킬 수도 있다. 방해 요소가 많으니 느슨한 마음가짐으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간혹 '하면 좋고'의 적극적인 마음으로 설렁설렁 나서면 생각지도 못한 무형의 선물을 얻는다. 기후의 방해 공작에도 아랑곳없이 황량한 산을 오가며 유산소 운동을 하는 내가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겨진다. 운동 별거 아니라는 긍정적인 마음마저 샘솟는다.

그 시기의 산이 주는 아름다움을 목도할 수 있는 건 덤이겠다. 겨울산은 산 자체가 풍기는 묵직한 매력을 온전히 흡수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산의 본질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때가 겨울인 것이다. 그전의 나는 꽃이 피고 지는 현장의 아름다움을 찾아, 시원한 그늘과 계곡을 찾아 산을 오가곤 했다. 더 어린 시절에는 산보다는 바다에서 튜브를 타고 유영하는 것을 즐겼다.

헐벗은듯 초라하고 푸석하고 날것의 겨울산은 더군나 오를 이유를 찾지 못했다. 황홀한 설산은 논외로 치더라도, 메마른 대지의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만들어내는 산등성이를 올라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무료한 겨울날, 코로나로 답답해진 마음을 추스리고 활동적인 아이들의 활동 반경을 넓혀주고자 고열량식으로 묵직해진 몸뚱아리를 움직여 산행을 나섰다.

녹아 내린 뒤 질척함이 가신 파삭한 대지는 적막함 속에 흙먼지만을 일으켰다. 들숨으로 땅에서 배어나오는 흙내음이 훅 들어왔다. 인공적이지도 과하지도 않은 깊은 자연의 향, 달콤함과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투박하고 날것의 냄새였다. 구황작물에서 맡아봤음직한 흙더미의 내음이었다. 꽃과 풀향기가 배제된 날것의 내음과 함께 민낯의 산등성이를 맞순간이었다.

그건 마치 웅크리고 도사리고 있다가 적막함 속 정적을 깨트리는 자를 소박하게 반기는 겨울산의 인사같았다. 다른 계절에는 미처 느끼지 못하는 순수다. 계절의 급변을 알리는 봄의 꽃망울이나 무성한 여름 신록, 형형색색의 가을 열매들처럼 다른 요소에 마음을 뺏기고 한눈을 팔 우려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내어주고 무로 돌아가는 장엄한 시간만이 있을뿐이었다.

오로지 앙상한 나뭇가지와 바스러지는 이파리들만 존재하는 척박한 풍경 속에서 찾아낸 것이 있었다. 서서히 침잠하는 줄 알았던 그 속에서 다시 소생을 준비하고 있던 자연이었다. 가냘픈 나뭇가지들 위로 계란처럼 갸름한 몽우리들이 그 징엄이었다. 표면에는 흡사 고양이나 강아지의 귀털처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미처 모르고 지나갔을 솜털이 있었다. 쓰다듬던 손으로 놀랍도록 부드럽고 포근한 촉감이 느껴진다.

유독 겨울에 그 푸르른 빛이 더해지는 소나무는 또 어떤지. 표피층이 벗겨진 나무들 사이에서 위풍당당하게 한겨울을 버텨내는 강인함에 경외심이 든다.

  중심을 잡고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 있는 겨울산은 가장 가식없고 소탈해서 사색하기 가장 좋은 곳이기도 하다. 화려한 자연의 색에 한눈을 팔 우려도 없고, 동물마저 동면에 들어간 조용한 숲길을 오로지 내면의 소리에만 집중한채 걸어나갈 수 있다.


  머리가 시끌하고 몸이 무거울때면 무심한 행색으로 추레함이 피차 일반인 산으로 들어간다.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고 편안한 호흡으로 돌려받으니 겨울에 행할 수 있는 가장 느슨한 운동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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