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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Nov 16. 2021

정말 좋아해

찾아내기

  카키, 베이지 같은 뉴트럴 계열의 애매모호한 색상을 편애한다. 옷장을 열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영역이 튀지 않고 히듯 잠자고 있다. 물흐르는듯한 톤의 변주를 보며 늘 같은 계열로 구매하는 소비 패턴이 쉬이 바뀌지 않음을 증명해주는 것만 같아 웃음이 난다. 혹자는 칙칙하고 산뜻하지 않다며, 무엇보다 산지 안산지 구별이 안갈 정도라며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색상의 아이템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말랑해지며 지갑이 쉽게 열리는 것을 어쩌겠는가!

뒤섞이고 케케묵은 탁하고 채도가 낮은 색상은 시큰한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절제된 색상, 어디에나 스며들 수 있는 무난한 색상이 주는 매력이 있다. 확실하게 존재감을 위압적으로 드러내며 강렬하기까지 한 선명한 비비드 컬러에는 선을 그으며 뒤로 물러서게 된다. 쨍한 것에는 청명하고 맑은 것과는 또다른 부담감이 든다.


  사람을 좋아함에도 이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

'정말 좋아해, 너무 달지 않은 라떼, 비 갠 거리로 가볍게 나서는 산책…'

요조의 노래 <좋아해>처럼 자연스레 마음이 기울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필요없이 그냥 무작정 마음이 동하는 것이다.

  어느 여름밤, 맑고 청아한 으로 차분하게 읊조리는듯한 음색을 접했다. 여름 초저녁설핏 들리는 풀벌레 소리처럼 감성을 일깨우고 기분좋은 설레임을 주는 목소리였다.

그녀들, 이인조는 무대 밖 세계와 다정하게 눈을 하나하나 맞추며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현실이 극한까지 치닫는 상황이 와도 좌절하고 절망하지마. 불굴의 의지로 일어서. 강인하게 일어나 용기내봐.'

저 심연 어딘가로부터 의지를 끌어내어 불태워야 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조언이나 섣부른 충고가 아니었다.  

'힘들거야. 알고있어. 수고했어, 오늘도.'

그저 옆에서 경청해주고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손을 내밀어 위로를 건네는것만 같았다.

우울의 심연까지 내려가 울고불고 포효하며 허우적거리는 대신 적당한 지점에서 자각하고 수면위로 올라와야 할지 모른다고 조용히 속삭여주는 것만 같았다. 음을 추스리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어떻겠냐는듯.

  그녀들의 <유서>를 들으면서 총맞은 것처럼, 두꺼비집이 탁 끊어진 가슴이 저릿해왔다. 기분좋은 마음으로 잠시 산보라도 떠나듯 낭송하는노래 가사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나 산뜻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나! 결코 경솔하거나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고정 관념에 허를 찔린것만 같았다.

전두엽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심장에서 쏘아올린듯 뜨겁고 말캉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훌륭한 작품과의 접신의 순간 이루어지는 신체의 변화였다. 울부짖고 폭발하듯 읍소하지 않아도, 드라마틱한 전개가 없어도, 끈적이듯 질척이지 않고도 이렇게 심금을 울릴 수가 있구나.

  이후 옥상달빛은 산책을 하거나 글을 끄적일때 함께하는 메이트가 되었다. 

   

  [트래블러-쿠바편]이 방송되기 전부터 예고편을 보며 마음이 달떴다. 중남미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을거라는 추측뿐 정확한 지정학적 위치 모호한 기억 저편의 쿠바를 보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응답하라 1988]시리즈에서 발견한 배우 류준열 좀더 그다운 인간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감때문이었다. 진실성이 묻어나오는 얼굴과 신뢰감을 주는 저음의 목소리, 긴 눈매 끝자락에 언뜻 비추이는 개구짐과 영민한 반짝임을 목도하리란 설레임때문이었다.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보이는 솔직함과 당당함, 자신감, 순수함은 사람을 속수무책 빠져들게하는 매력임을 나는 알고있다. 그마치 한여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의 뜨거운 열기, 고요한 정적 속에 유일하게 존재를 알리는 매미의 외침처럼 특별하고 인상적이었다.

  열악한 현지에서 발생하는 일촉즉발의 위기들을 의연하고 호기롭게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예상했던 그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자력으로 배웠다는 영어 실력은 또 얼마나 훌륭하. 생동하는 그의 무궁한 매력에 출구란 없어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 아바나를 함께 거닐고픈 주책맞은 상상을 했다.


  [대화의 희열]을 통해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생각해온 김영하 작가를 화면상으로 만나게 되었다. 글로만 접했던 작가의 언변을 들으며, 양쪽의 능력치가 균형있게 조화를 이룸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날 그는 예술하는 작가들이 언급하기 힘들어하는 돈의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솔직한 의견을 피력했다. '생계 유지와 체면 사이, 원고료'의 상관 관계에 대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당당히 정공법으로 나아갔다. 수고로움의 대가로 요구하는 돈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며 상업성을 목적으로 제출한 결과에는 응당 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는 그의 말 고개를 주억거리며 전적으로 수긍했다.  숭고한 정신 세계가 담긴 무형의 지적 노동에 대한 대가란 명확히 측정되기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였다. 현실과 예술의 경계에서 지각을 갖추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그의 태도는 큰 울림을 주었다.

시각에 따라 저속하 비칠 수 있는 돈문제를 이렇게 논리적이고 객관화한 시각으로 침착하고 담담하게 발언할 수 있다니. 또 한 명의 편애할 만한 사람을 발견했다.


  삶의 부침에 격하게 저항하지 않고 부드러운 우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그녀들, 이인조를 좋아한다. 무모함과는 다른 진취적이고 용감한 방식으로 모험을 삶에 들일 줄 아는 그를 좋아한다. 고상한 척하않고 당한 사회 현실 타파 위해 개인의 역량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그의 세련된 방식이 좋다.

  적으로 그들을 아는 것은 아니다. 친분이 있지 않은 이상 방송에서 소비되는 이미지가 내가 아는 그들의 전부이다. 형상화되어 비춰지는 모습에서 호감과 비호감, 무관심의 어느 지점이 나것이다. 하지만 특별하게 방송을 뚫고 전해지는 아우라가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때로는 눈빛일 수 있고 목소리나 직업상 혹은 사적인 행보일 수 있다. 나는 영향력을 사한 그들의 멜로디와 연기, 집필의 기록 등을 찾아선다. 결코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팔로잉을 한다거나 리뷰나 댓글을 달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눈으로 쫓고 마음으로 응원한다. 이것이 내가 누군가 유명인을 좋아하는 방식이고 티안나는 조용한 덕질이다.

(함부로 이름을 언급한 가수, 배우,작가님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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