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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22. 2021

무용함과 취미 사이

찾아내기

  나만 아는 즐거운 여가 생활이 있다. 금전적 보상이 제로에 가까운 것이기에 경제적 측면에서 생산 활동이라 부를 수 없고, 누군가에게 취미라고 떳떳하게 소개하기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미미하다. 구구절절 설명하기에 막막하고 애매한 그것들의 정체는 산책과 끄적임이다.


  내가 사는 동네든 평소 눈여겨본 마음이 가는 곳이 발길 닿는대로 어슬렁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집안일을 재빠르게 마무리하고 남는 몇 시간, 지인들과 교류하고 카페에 가는 시간을 쪼개고 생략하여 도보에 집중한다. 시간을 투자해 마음의 환기와 건강을 얻는다.

워킹화에 트레이닝복 갖추지 않아도 집에 널린 일상복을 주섬주섬 걸치고 나서면 된다. 서울 시내를 유랑하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편안한 차림이면 된다.

  때로는 임장을 겸한 산책으로 사적인 욕망을 채우기도 한다. 동네 순회 중 궁금증이 들어 서슴없이 근처 부동산 들어가기도 한다. 열에 열은 소득과 상관없이 자기 만족 가까운 풍요롭고 충만한 마음만 안고 나오지만.

  가끔은 산책 대신 자전거 하이킹을 나서기도 한다. 하이킹은 비루한 육신으로 할 수 있는 신체 활동이기에 그다지 뛰어난 체력 필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는 저질 체력에 차마 시도하지 못하지만 미련할 정도로 걷는 것만큼은 체력이 허한다. 종종걸음으로 천변을 걷고 있노라면 빠른 속도감으로 쌩하고 지나치는 건장한 두 다리의 소유자들을 많이 마주친다.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며 시원한 바람을 느껴보고자 집에 있던 아들 주니어용 자전거를 꺼내든 것이 그 시작이었다.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던 대퇴부의 근육을 깨우고 무사히 로드를 마치며 자심감을 얻는다. 본격적으로 따릉이 서비스에 가입하고 두 다리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핸들을 돌며 두세시간 고강도로 달려본다. 서울의 자치구를 넘나들고 한강 대교들을 하나씩 도장깨듯 통과해본다. 속력에 대한 두려움은 저만치 달아나고 오히려 속도에 갈급함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산책보다 금세 체력이 방전되지만  개방감과 해방감이 밀려온다. 은근히 카타르시스가 있다. 1000원의 행복은 비단 맥도널드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떠나기 전 귀찮고 성가신, 일말의 망설임을 무릅쓰고 나설 부지런함만 있다면 나는 스트레스의 일정 부분을 그날의 코스에 조금 덜어내고 돌아올 수 있다.


  산책이든 하이킹이든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하게 동적인 취미가 이것이니 나로선 지켜내야할 희소성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쉬운 점이 있원한다고 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내 건강상태가 허하지 않으면 제약이 따른다. 사시사철 즐길 수 없고 설사 날씨가 맑다해도 고민이 따른다. 아무래도 터덜거리고 걷다보면 먼지를 뒤집어쓰게 되고 얼굴은 벌겋게 익는다. 아들2의 하교 시간에 맞춰 샤워할 시간도 없이 초췌한 몰골로 급박하게 학교로 복귀하게 된다. 빛나는 젊음을 가진 엄마들 틈바구니에서 흙먼지 투성이의 늙은 엄마를 맞닥뜨린다면 아들2는 나를 건강함의 표식이 아닌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길것만 같았다.


  이를 대체하고 보완해주는 의미로 병행하는 취미가 끄적이는 것이다. 제대로 배워본 적도, 많은 습작을 거친 것도 아닌 형편없는 수다나 낙서같은 조악한 수준이다.

하지만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무한정 꼬물거리는 정적인 취미를 사랑한다.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을 수 있는 좌식 체력특화인간이 나란 인간이다.

신체 중 둔부와 다리 일부를 바닥 어딘가에 고정한 채 눈만 꿈벅이며 머리와 손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오전 정신이 맑은 시각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흩어면 그 날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나도 가락을 바삐 움직인다. 머리 속으로는 정리되지 않고 부유하는 생각들을 붙잡기 바쁘다.

  간혹 설겆이를 하거나, 욕조 몸을 담그고 있을때, 청소기를 돌릴때, 쓰고  문장, 글감, 단어등이 퍼뜩 머리속을 스칠때가 있다. 애꿎게도 손이 자유롭지 못한 채 다른 도구에 묶여 제약이 존재할때 글을 쓰고픈 충동밀려온다. 문제는 부지불식간이 다가온 것처럼 뿅하고 사라지는 것도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건 마치 게임 한 판을 클리어하면 주어지는 금화와도 같다. 재빨리 보너스등을 클릭하지 않으신기루처럼 재빨리 사라진다.

물론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 떠오른 생각이 글로 옮겨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신하고 썩 괜찮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사진이 풍광을 다 담아낼 수 없듯이 그림이 실사로 표현하는데는 한계가 있듯이 하나의 단계를 더 거쳐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실되는 것,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 막옮기고 보면 별 것 아닌 것들일지 모른다. 아니 주로 그런 것 투성이일 것이다. 알맹이는 이미 휘발되고 쭉정이들만 남아 문장으로 구성된건 아닐까 자주 반문해본다.

  

  나름대로 그때그때 떠오른 것들을 주변에 있는 이면지, 스마트폰 메모장 등에 닥치는대로 기록한다. 쪼가리 흔적들을 모아 퀼팅하듯 짜집기한다. 채집, 배열, 첨언, 퇴고 수번을 빙빙 돌려본다.

글을 계속 써내려가는 것은 과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중구난방인 이 작업을 과연 계속할 수 있까? 컨셉, 목차, 제목은 무엇으로 구상하면 좋을까? 나는 어떤 대상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싶 것인가.

방향성을 고민하며 다른 책들을 두루 살고 내 능력치의 바닥을 절감한다.


  이익이 되지 않는 활동, 무용한 일에는 심드렁하지만 산책과 글쓰기만큼은 호혜로운 음을 허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익내기 위한 일이 아님에도 나 좋자고 시간을 들여 무턱대고 끄적이니 말이다. 동시에 창밖보며 날씨를 살피고 산책 나갈 시간을 고민한다.

잉여짓도 이만것이 없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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