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김모군은 하늘에 해가 사선으로 걸린 한시쯤 느지막이 일어났다. 좁은 집안에는 시계 소리가 째깍째깍 울리었다. 어제 늦게까지 마신 술기운이 올라와 김모군은 헛구역질을 하며 차가운 물 한 컵을 비웠다. 언제 마지막으로 쓰였는지도 모르는 컵을 다시 정수기 앞에 두고 김모군은 다시 좁은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김모군은 휴학생이다.
김모군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학생 신분이라기엔 현재 휴학을 신청해 놓은 상태라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백수라고 스스로를 칭할 때마다, 학교는 안 다니지만 졸업을 아직 안 했으니 학생이라며 마음속의 무언가가 위안을 주었다. 김모군의 마음속은 백수라는 정체성과 학생이라는 정체성이 시소를 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시소의 가운데에 타고 있는 김모군은 누군가가 무거워져 시소가 내려갈 때마다, 박쥐처럼 왔다 갔다 하며 반대편에 무게를 더해주어 완벽한 평형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술이 덜 깬 채로 침대에 누워 낮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은 그대로 있는데 김 모가 누워있는 침대만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들어 김모군은 머리가 더 어지러워졌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은 김 모는 집을 나섰다. 공복인 상태를 10시간이나 유지했건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먹는다면 헛구역질이 진짜 구역질이 될 것 같아 김 모는 그 길로 집을 나선 것이다.
김모군의 동네는 햇빛이 잘 드는 길이 없어, 골목엔 낮에도 밤에도 여기저기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햇빛 있는 길을 찾으며 걷던 김모군은 갑자기 무릎에 통증을 느끼고는 발을 절으며 조금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제 호텔 일을 하다가 카트에 부딪힌 무릎이 아직도 아픈 것이었다.
김모군이 호텔에서 일하는 것은, 휴학을 한 주제에 집에만 있으면 마음속의 백수라는 녀석이 점점 커져 손을 쓸 수 없을뿐더러,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25살이라는 나이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죄송스러운 나이였고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 돈이라도 벌자는 심리였다. 또 김모군은 최근 꿈이 생겼는데 그것은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이었다. 김모군은 태어나서 비행기를 딱 한번 타봤다. 그 사실을 김모군은 썩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해외에 나가서 일도 하고, 여행도 하며 영어 회화 공부도 하는 워킹홀리데이는 김 모 군에게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과업으로 보였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모군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하려 캐나다 이민국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지만, 여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딱 한번 사용했을 뿐인 여권은 이미 유효기한이 지나있었고 어쩔 수 없이 김모군은 5만 5천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여권을 만들었다. 일주일 후 여권이 나온 김모군은 다시 비자 신청을 했고, ‘풀(pool)’이라는 곳에 들어가는 것에 성공했다. 그 풀 속에서 사람들을 무작위로 골라 2천여 명 까지 비자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풀 속에는 이미 4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 후로 세 달간 김모군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일을 하며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워킹홀리데이를 기다리는 것은 생각보다 일상생활에서 편리한 일이었다. 김모군은 요즈음 사람들과의 왕래는 적지만, 그래도 어제와 같이 술을 마실 일이 가끔은 생기는 편이었다. 그럴 적마다 사람들은 휴학을 한 김모군이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요즘은 무얼 하고 지내냐는 질문을 던져댔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김모군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언급하며 신청해 두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지금 호텔에서 일을 하는 것은 그저 캐나다에 갈 때 초반에 드는 정착금을 벌고 있는 것이라고 김모군은 덧붙인다. 그럴 적마다 사람들은 재밌겠다고 김모군을 부럽게 바라보는데, 김모군은 사실과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마음속 한 구석으로는 자신이 정말 재밌는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김모군은 알고 있었다. 캐나다는 안될 것이라는 것을. 자신은 평생 무언가 당첨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김모군은 2천여 명이 다 채워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며 돈이나 벌자는 심산이 있었다. 호텔은 실제로 돈을 꽤 많이 주었다. 새벽 5시 50분까지 출근을 해야 해서 김모군은 눈이 점점 충혈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늦은 2시가 되면 일이 끝나니 집에 와서 잠을 청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일하면 다음날 돈이 들어왔고, 김모군은 그런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캐나다가 자신을 끝내 거부한다면, 그렇게 모은 돈과 함께 다음 학기에 학교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김모군의 다리는 절뚝거리면서도 꾸준히 움직여 김모군을 구산역 사거리까지 끌고 왔다. 사방이 탁 트인 도로에 오니 그곳은 햇빛도 잘 들고, 시원했다. 조금은 어지럽던 머리도 이제는 그 통증이 조금 가라앉은 듯싶었다. 김모군은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 레모네이드를 한 잔 샀다.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며 김모군은 집으로 돌아갔다. 상큼한 음료가 뱃속으로 들어가니 허기가 돌아온 기분이 들어 집에 들어가 밥을 차려 먹으려는 것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김모군은 일부러 햇빛을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그늘진 골목골목을 그대로 지나쳐 김모는 집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