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4-26 11화

안녕, 컵라면

by 김토끼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오르기 전, 그러니까 작년까지 내 근무시간은 오전 9시 출근, 오후 2시 반 퇴근이었다. 중간에 30분 휴게시간이 있었는데, 이 시간에 나는 밥을 먹었다. 휴학 중인 대학생에게는 꼭두새벽과 같은 오전 9시 출근에 아침밥을 먹고 올수 있을 리가 없었으므로, 12시만 넘어도 배가 고팠다. 롯데몰로 첫 출근 -아마 8월 20일경으로 기억한다-한 날의 첫 휴게시간에 나는, 그전에는 롯데몰에 와 본적이 없었기에 그곳의 밥집 분포에 대해 완전한 백지상태였다. 지하에는 직원식당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옛날에 잠실 롯데마트에서 일할 때 직원식당에 대한 좋은 추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4층에는 식당가가 있다고 하니 올라가봤다.

롯데몰에서 직원교육을 할 때 들은 것 같았다. 고양시에 생긴 스타필드보다 롯데몰이 확실히 앞서나가는 것은 식당가라고. 그 말대로 4층에는 다양한 식당이 있었다. 나이가 조금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대찌개를 파는 곳, 설렁탕과 갈비탕을 파는 곳, 코다리 정식을 파는곳 에서부터 시작하여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본식 라면과 돈까스를 파는 곳, 함박 스테이크를 파는 곳 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메뉴와 가격을 머릿속으로 비교하던 나는 4층을 가득 메운 음식냄새에 더 배가 고파져서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어, 인도식 카레를 파는 곳 맞은편에 있는 초밥 집에 들어갔다.
내가 자리에 앉은 시간은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많아서 메뉴가 나오기 까지 약 20분을 기다렸다. 20분 동안 내가 입은 유니폼이 초밥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초밥 집에서는 회전초밥도 팔았고, 점심특선메뉴로 12,000원짜리 세트메뉴도 팔았지만, 회전 초밥은 아무래도 가격이 부담일 것 같아 나는 점심특선 세트메뉴를 시켰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 10분도 남지 않아서 초밥 8조각을 우동국물과 함께 마시고 내려와야 했다. 맛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던 것 같다.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나는 쉬는 시간에 담배도 한 모금 하지 못하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했다.
매장으로 돌아와 커피머신에 원두를 채우며 생각했다. 쉬는 시간마다 이렇게 전투적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면, 4층 식당가로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 비싼 초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눈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먹었다. 게다가 4층 식당가를 돌아다니며 조사한 메뉴들의 평균가격은 대략 1만원. 평일 5일을 일하는 내가 매일 휴식시간마다 4층에서 밥을 먹게 된다면 단순한 계산으로 일주일에 5만원, 한 달에는 약 20만원을 식비로 쓰는 셈이다. 내 월급을 계산해본 결과 한 달에 약 80만원이다. 월급의 1/4을 식비로, 그것도 허무하게 쓸 수는 없었다.
다음날에는 내가 일하는 곳 옆에 있는 롯데리아에 갔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바쁜 것은 롯데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내 앞에 줄은 없었지만 누군가 주문했다는 증거인 텅 빈 고동색 쟁반들이 계산대 옆 음식을 받아가는 곳에 수두룩했고, 나는 또 꼼짝없이 15분정도를 기다려야했다. 물론 햄버거를 다 먹는 시간은 15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난 애초에 롯데리아 햄버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다가, 세트메뉴는 직원할인을 받아도 5천원이 넘는 돈이었다. 받는 돈에 비해 맛이 형편없어서 롯데리아는 포기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나는 내가 일하는 3층 매장 건너편에 있는 세븐일레븐을 이용했다. 가격도 부담이 없는 편이고, 초밥 집에서처럼 전투적으로 먹을 필요도 없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도시락을 먹었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 특유의 플라스틱 맛이 나는 반찬들 때문에, 내 황금 같은 30분을 맡길 자격은 없다고 판단했다. 요즘 gs 25에서는 편의점 도시락들도 맛있게 잘 나오던데, 세븐일레븐은 아직 아닌가보다.
결국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컵라면과 삼각김밥이었다. 컵라면을 선택한 첫 날에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 일주, 이주가 지나가자 아무리 라면을 좋아하는 나라고 해도 컵라면이 조금씩 물렸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요일별로 라면의 종류를 바꿔서 먹는 것이었다. 월요일은 신라면. 화요일은 불닭볶음면. 수요일은 진라면. 목요일은 참깨라면. 금요일은 짜파게티의 순서로 먹었다. 하지만 신라면은 스티로폼 용기의 맛이 진하게 나서 더 쉽게 질렸다. 그렇게 신라면은 내 점심메뉴에서 탈락했지만 진라면은 칭찬할 만 했다. 특히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는 진라면은 냄비에 끓여먹는 라면보다도 맛있는 것 같았다. 물론 진라면도 5일 내내 먹으면 질리는 시점이 오기는 했지만, 그럴 때는 사이사이 불닭볶음면, 짜파게티를 메뉴에 섞어가며 버텼다. 그리고 가끔 일하는 매장에서 회식비로 컵라면을 사서 뒤쪽 창고에 놓으면, 그 라면들을 먹어가며 진라면에 지친 혀를 쉬게 했고, 겸사겸사 점심 값을 아꼈다.
19년이 되어 최저임금이 오르자 내 근무시간이 1시간 줄어들어, 나는 1시에 퇴근을 했다. (휴게시간 30분도 빼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1시간 30분을 일찍 퇴근하게 되었다.) 1시에 퇴근을 하게 될 때 까지 약 4개월을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이 질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마 학교를 다니게 될 나는 앞으로도 점심에 어쩔 수 없이 컵라면을 많이 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며 다른 알바를 할 때도 휴게시간이 30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컵라면을 먹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나무젓가락에 긁혀 면과 같이 올라오는 신라면의 플라스틱 용기 맛이 떠오른다. 당분간은 컵라면과 작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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