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4-26 10화

몽실이

by 김토끼

몽실이는 내가 9살 때 쯤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분당에 사시는 할머니가 내 생일선물로 얻어왔던가. 혹시라도 길을 가다가 털이 몽실몽실한 느낌을 주는 강아지 인형을 본 일이 있다면, 몽실이는 딱 그렇게 생겼다고 말하고 싶다. 작은 체구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덮여있는 회색 털. 얼굴주변에는 흰색털이 있었고 군데군데 지저분한 갈색 털이 몽실몽실한 느낌을 주어서 첫 눈에 이름을 지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성의 없는 작명이지만 우리 가족은 그를 몽실이라고 불렀다. 몽실이 이외에도 내가 지은 성의없는 이름의 강아지들은 여럿 있다. 처음으로 우리집에 왔던 로라. 썰매를 끌던 견종이라 덩치가 컸던 검둥이. 내가 다녔던 어린이집에서 키우던 개였지만, 어린이집이 마당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우리집에서 맡아주었던 봉봉이까지. 이중 로라는 어느 날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검둥이는 너무 짖어대는 탓에 주인집에서 눈치를 주어 시골의 농장으로 보내버렸다. 봉봉이는 늙어서 죽었다. 그래서 가장 나와 오래 지낸 강아지는 몽실이다.

내가 9살 때 살던 집은 파란 지붕에 마당엔 은행나무가 있는 집이었다. 그곳에서 로라가 집을 나갔고, 검둥이가 팔려갔다. 몽실이는 딱 그 두 사건의 중간쯤에 우리 집에 왔다. 그래서 내가 파란지붕 집을 떠날 때 데려간 강아지는 몽실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파란 지붕 집에서는 대략 3-4년 정도를 살았다. 이사를 간 곳은 마당이 꽤 넓은 2층 주택이었다. 내가 11살 때의 일이다. 특이하게도 날짜도 기억이 난다. 9월 11일. 마당이 넓어서 인지 몽실이는 꽤 신나보였다. 쥐를 잡고 놀았고, 화단을 다 뒤집어놓았다. 보다 못한 아빠는 결국 마당 한 구석에 몽실이를 묶어놓고 키우기로 했다. 아빠가 없을 때 가끔 내가 몰래 몽실이를 풀어놓기도 했지만. 이 집에서 살 때 봉봉이가 우리집에 왔다. 봉봉이는 성격이 꽤 더러운 편이었던 것 같다. 가끔 몽실이가 왠지 봉봉이에게 혼나고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몽실이가 고양이에게도 밥그릇을 빼앗기는 순둥이였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마당이 넓은 집에서 5년을 살았다. 그 5년 동안 봉봉이가 하늘나라로 갔고, 나는 고등학교에 올라갔다.

2009년, 내가 고1때 우리 집은 다시 한 번 이사를 간다. 당시 집안 사정을 엄마 아빠가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빠가 주식으로 돈을 많이 날린 시기가 그때쯤이다. 이번에 이사 간 곳은 마당이 없는 낡은 빌라였다. 마당이 없었기에 몽실이를 키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베란다 같은 공간이 있었지만 너무 비좁았고, 그래서 그런지 밤마다 몽실이가 짖는 일이 많아졌다. 청소를 이틀만 안 해주어도 냄새가 나기도했다. 아빠도 바빠졌고 엄마도 바빠졌기에 몽실이에게 신경 쓰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결국 몽실이를 마당이 있는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몽실이가 외할머니 집으로 간 뒤로는 몽실이를 자주 보지 못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생신 때 밥을 먹으러 가거나, 명절 때 보러가는 일이 전부였던 것 같다. 하지만 몽실이는 내가 올 때마다 허겁지겁 달려와 반겨주었다. 몽실이는 그곳의 생활에 만족한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몽실이를 묶어두지 않았고, 그곳 마당은 예전 우리 집보다 훨씬 넓어서 몽실이는 마음껏 뛰어다녔다. 외할머니 집 마당은 거울에 비친 ‘ㄴ’자 모양이었다. 집의 옆면과 정면 현관문까지는 군데군데 이끼와 곰팡이가 낀 보도블럭이 깔려있었고, 그 외에는 회색 시멘트바닥이었다. 현관문과 가장 먼 회색 시멘트 바닥에 몽실이의 집이 있었다. 가끔 몽실이가 안보여 집 쪽으로 가면 그 집에서 고양이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이번엔 고양이들과는 완전히 친구가 된 듯 보였다. 고양이들도 몽실이를 피하지 않았고, 밥을 같이 먹었다. 집의 옆에 있는 마당에는 화단이 있었는데, 나무의 종류가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름이면 담장보다 큰 나무들의 잎사귀때문에 조금 높이 있는 옆집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 집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응암동의 언덕 중턱에 있던 집인데, 재개발을 한다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녹번역 근처의 새로 지은 빌라로 이사를 가야했다.

2015년. 할머니집의 재개발 날짜가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집의 짐을 미리 새 집으로 조금씩 옮겨두는 것을 도와드렸다. 나도 마침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기에 같이 도와드렸다. 짐을 옮기려 할머니집 마당에 들어섰지만 그곳에 몽실이는 없었다.

몽실이가 골칫거리였던 것은 맞다. 새로 이사 가게 되는 빌라는 몽실이를 키울만한 장소가 없었으니까. 그 문제로 우리 가족과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나보다. 몽실이는 어느 날 할머니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 로라가 그랬던 것처럼. 몽실이가 할머니집 밖으로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묶어두지 않았기에 대문이 열리면 밖으로 나갔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들어오곤 했다. 할머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눈 재개발 때문에 몽실이를 키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대화를 몽실이가 알아듣고 자기발로 떠난 것이라고, 신통한 개라고 했다. 난 신통하다기 보다는 몽실이가 가여웠다. 우리 가족 때문에 여기저기 떠밀려 다니던 몽실이. 몽실이는 끝까지 무언가에 떠밀려 사라졌다. 할머니집의 짐을 옮기던 날은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는 2015년 가을의 끝자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당에는 고양이도, 강아지도 없었다. 화단은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하늘을 보니 하늘에 금이 간 것 같았다.

몽실이가 엄청 그립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좁은 집에서 살 때나, 마당에서 살 때나 조금 더 몽실이와 시간을 보낼 걸 하는 생각을 가끔 할 뿐이다. 가끔 고양이들과 같이 있는 몽실이의 사진을 찾아본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몽실이 사진을 찍어놓은 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지금도 내 SNS메신저의 배경 사진 마지막장은 몽실이가 고양이들과 마당에서 널브러져 있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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