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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토끼 Oct 22. 2023

재미 없다

재수를 했다. 결국 국문과에 합격했다. 뻔한 이야기다..당시 나에게는 ‘국어 선생’의 꿈이 있었다. 그런데 국문과에 진학하니 ‘국어 선생’은 성적순으로 5명에게만 자격이 주어지고, 나머지는 대학원에 다녀야 국어 선생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충격적이었다. 입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국어선생을 포기하고 살았다. 약 6년정도, 나는 꿈 없이 대학에 다녔다. 

   

 4학년이 되니 조금 조급해 졌다. 복학 이후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지만 학점도 3.4점이 겨우 될까 말까 하고, 여러 가지 자격증은 당연히 전무했다. 혼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학점도 인정이 되고, 월급도 준다는 인턴십 과정을 선택했다.      


내가 가게 된 회사는 작은 컨텐츠 회사였다. 거기서 인터넷 신문에 기사를 쓰는 일을 했다. 중장년층, 시니어층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기사들을 쓰는 일이었다. 피아니스트, 연극배우, 시인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일도 재밌었다. 다행히 거기서 좋게 봐주어 졸업을 마친 2월, 정직원이 되었다. 월급은 적었지만 먹고살만했다. 당시에는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던 터라 돈이 나갈 일도 없었고 차곡차곡 통장에 돈을 모으는 재미로 살았다.      


언제부터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어느새 취미가 퇴근 후 걷기 운동이 되었다. 3-4시간을 걸은 적도 있었다. 밤공기를 마시며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재미없다’였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상의 ‘날개’ 등에서 ‘산책’을 매개로 주인공들은 많은 생각을 한다.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그 작가들처럼 깊은 생각을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이 재미없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안 드니 잠시 그렇게 느끼기도 했다.   

   

산책을 즐긴지 약 3-4개월 정도 되었다. 나는 30살이 되기 전에(당시 나이 27)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30살이 넘어서도 안 되었다면 그냥 다시 다른 직장에 취업해서 먹고 살자고 다짐한다. 젊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안 해보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하고 싶은 일은 뜬금없게도 ‘연극’이었다. 대학생활에 했던 연극동아리가 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겠다.       


2020년 7월 나는 사표를 냈다. -그러나 결국 또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극단의 ‘워크샵’을 찾아보고, 한 극단을 찾아서 면접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나는 ‘기자’의 일을 그만두고 ‘연극배우’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워크샵은 서울의 한 극장에서 진행되었다. 지원자는 15명 정도 있었고, 연극을 하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저 사람들 사이에서 잘 할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 상태로 워크샵에 들어갔다. 첫 날은 무대에 앉아 자기소개를 1분 정도씩 진행했다. 긴장해서 이상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예뻐서 그렇기도 했지만, 참 특이했다. 파주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워크샵을 위해서 대표님에게 허락을 받고, 조금 일찍 퇴근하는 스케쥴로 조정을 했다고 한다. 4시쯤 일을 마치고 파주에서 서울로 오고, 워크샵 수업을 듣고 10시가 넘은 시간에 다시 파주로 돌아갔다.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워크샵이 끝나고, 술자리에서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재능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기자시절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 그러니까 연극 배우, 가야금 연주자, 시인, 작가 등등 본인이 꿈꿨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선배들, 또 함께 일했던 피자집 사장님은 ‘재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뭐.. 그냥 해 보는 거지.”     


혼자 ‘재능’과 ‘노력’을 저울질 했던 내 자신이 바보 같아지는 대답이었다. 난 연극이 재밌었다. 그 이유만으로도 연극에 내 시간을 투자할 이유는 충분했다.      


결국 이 친구와는 사귀게 되었다. 예쁜 것도 그렇지만, 그런 열정에 반하게 된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지금도 어느정도 그렇지만- 굉장히 헐렁한 삶을 추구했고 여유로움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나와 정 반대의 사람을 만나니 신기하기도 했다. 사귀게 된 것을 넘어서 같이 살게 되었고, 결혼을 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 나는 연극 배우를 그만두고 학원 선생을 하고 있다. 이 일은 꽤 재미있다. 어쩌면 내가 여자친구에게 영향을 받아, 뭐든 열심히 하려 하고 또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은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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