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응암역 이마트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려면 역시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 3일정도 일하면 한 달 용돈정도는 되지 않을까 해서 주중에는 월요일과 목요일, 그리고 주말에 한 번 일하기로 했다. 이마트는 매 월 2번째와 4번째 일요일은 쉰다. 그 날은 맥도날드도 문을 닫아서, 2번째, 4번째 주에는 토요일에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 알바 교육을 갔던 날이었다. 3월의 세 번째 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A를 처음 만났다. 검은 색 뿔테 안경을 꼈고, 키는 180이 조금 안되어 보였다. 아마 마른 체형 때문에 실제보다 더 커보였을 것이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은지 내 나이를 물어보더니 이내 말을 편하게 하겠다고 했고 난 거부감 없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그날 그는 나에게 매장 마감을 하는 법을 대충 뼈대만 알려주었다. 1시간짜리 교육이기 때문에 대충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A의 말투는 시종일관 나긋나긋했다. 내가 처음이라 못 알아들은 것이 많은데도 그는 특유의 목소리 톤을 잃지 않았다. 한 가지 조금 무서웠던 것은 교육을 받으며 무심코 A의 팔을 보게 되었는데, 그 팔이 상처투성이였던 것이었다. 나도 이제 여기서 일하면 여기저기 데이면서 하게 되는 건가. 그렇게 1시간의 교육이 끝났고, A는 내 기억 속에 ‘상냥한 사람’으로 남았다. 그 후로 약 3개월간 A와는 일을 하며 자주 마주쳤다. 나는 마감일을 주로 했고, A도 역시 마감일을 거의 평일 내내 했으므로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그를 꼭 보게 되었다. 같이 일을 해 본 느낌은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상냥했다는 것이다. 주방 청소를 하느라 길이 좁아 빠져나갈 곳이 없으면 A가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잠시 그 일을 접고 길을 비켜주었고, 궂은일은 항상 먼저 나서서 하려고 했다. 가끔은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루는 마감을 끝내고 A와 옷을 갈아입으러 9층의 탈의실로 올라가고 있었다. 천장을 보며 걷던 A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영호야. 너는 내가 선이라고 생각하니, 악이라고 생각하니?” 심오하고 뜬금없는 질문의 내용에 잠시 당황했지만 웃자고 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그가 악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아서 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래...? 근데 왜 난 벌을 받고 있는 걸까?” 난 무슨 벌을 받고 있느냐고 되물어봤지만 A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도 일을 12시까지 하여 힘들기도 하고 딱히 캐물을 생각도 들지 않아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그 날 옷을 갈아입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A는 이런 식의 뜬금없는 질문을 종종 하고는 했다. 그 시간대는 대부분 12시 마감이 끝난 후, 9층의 탈의실로 향하면서였다. 그 날도 마감을 하고, 9층의 정수기에서 물을 한 모금씩 나눠 마신 후 A와 함께 탈의실로 향하던 중이었다. A가 말했다. “영호야. 넌 내가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니?” 저번의 질문을 받았을 때보다 더 당황스러웠다. 내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궁금했지만 내 생각 속에 그는 상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랬구나. 고마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고, 6월 말이 되었다. 평소와 같이 월요일에 출근을 했는데 A가 보이지 않았다. 같이 마감일을 하는 H에게 그 형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형, 오늘 일 끝나고 말씀 드릴게요.” 일이 끝나고, 깜깜한 이마트 매장 앞에서 담배연기로 한숨을 쉬며 H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H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저번 주 금요일에 A는 갑자기 나오지 않았다. 핸드폰은 꺼져있었고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H생각으로는, 맥도날드의 스파이들이 무서워서일 것이다. A는 맥도날드 본사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위해 이마트점에 스파이를 배치했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게 맥도날드의 스파이들이다. 그리고 A가 생각했던 스파이중 하나는 H의 말에 따르면 놀랍게도 나였다. H는 2년 전에도 A와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2년 전에도 이런 식으로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A는 H와 친했고, 그에게만 스파이 목록(?)을 말해준 것이었다. “조현병이랬나? 어쨌든 정신이 좀 이상한 형이에요, 그 형.” 진짜인가 싶어서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 머릿속에서는 A가 나를 스파이로 생각하면서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던 A와, 내 기억 속에 ‘상냥한 사람’으로 저장된 A, 둘로 분리되었다. 그 둘의 간격은 너무 멀어서 그 둘을 동시에 볼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조현병 A를 보게 되었고 상냥한 A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하지만 그 다음주, A가 돌아왔다. 사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A는 언제나처럼 나를 보더니 ‘영호야 안녕.’하며 밝게 인사했다. 뜻밖의 인사에 나도 얼떨결에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예전과 같이 밝게 A를 대할 수는 없었다. 그때 내 표정이 조금 어두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일이 끝나고, 9층의 탈의실로 올라갔다. 마감은 H와 A,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했지만, H는 할 일이 조금 남았다며 형들 먼저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A와 단 둘이 9층으로 올라갔다. 탈의실로 향하는 나는 피곤했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앞을 보면서도 나는 옆 눈으로 A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탈의실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었다. A와 나의 사물함은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우리는 서로 등을 돌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A가 내게 말했다. “예전에 형이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어. 야간으로 두 달 정도 했지. 근데 중간에 관둬서 죄송하다고 하고 그 달 월급은 안 받겠다고 했거든. 그러면서 그만뒀어. 근데 그렇게 그만 두게 된 이유가...” 너 같은 스파이새끼들 때문이야! 하며 날카로운 무언가로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온 몸의 신경이 내 등에 집중되었다. 등골이 서늘하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내 문이 열리더니, H가 들어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서있는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12시까지 일을 하느라 그랬는지, 그 형이 무서워 긴장하고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수도. 그렇게 우리 셋은 이마트를 빠져나왔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 후로 2주가 흘렀다. 주중에 출근을 했지만 A가 또 보이지 않아서, H에게 물어봤다. 이번에는 머뭇거리지 않으며 H가 대답했다. “그 형 그만뒀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한 편으로는 안심했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잊혀져가던 ‘상냥한 사람’ A가 떠올랐다. A는 나를 스파이로 오해하고 무서워하고 있었다. 내가 좀더 A의 경계심을 풀어줬어야 했을까. 날 왜 스파이라고 생각했을까. 편의점에서 갑자기 관 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한 점은 많지만, 막상 A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물어보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