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4-26 16화

딸기 케이크를 위한 명상

by 김토끼

연극을 보러 대학로에 갔다. 저녁 7시 30분 공연이었지만 집에서 일찍 나오는 바람에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극장에 도착했다. 극장에서 표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공기에 안경테가 차가워진다. 대한민국은 수능 때만 다가오면 날씨가 춥다.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밖에 있을 수는 없겠다 싶어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다.
추위를 피해 카페에 들어오긴 했지만 난 커피를 싫어한다. 탄산도 즐기지 않아 메뉴판을 한번 흩어보며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러다 계산대 옆 냉장고에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조각 케이크들에 눈이 갔고, 5,300원짜리 딸기 케이크를 하나 주문한 뒤 케이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집에서 일찍 나오게 된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약하자면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온다고 전화가 와서다. 우리 가족은 지금 사는 집으로 2015년쯤 이사 왔다. 내가 군대에 끌려가 있을 때라서 사실 정확한 날짜는 잘 모르겠다. 사회와의 연락은 친구들은 물론 가족과도 잘하지 않았던 나는 어느 날 엄마에게서 온 편지를 받게 되었다. 내용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집에 빚이 많아져서 지금 살던 집을 정리하고, 우리 가족이 분당에 있는 할머니 집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겠다고. 내가 지금 제일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가족이 더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을 하니 조금 충격이었다. 나는 편지를 다 읽지도 않고 집으로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고, 엄마에게 상황을 대충 전해 들었다.
사실 4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엄마는 내게 빚이 얼마인지, 어쩌다가 집을 팔 정도로 불어난 건지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는다. 뭐 아빠가 주식을 했는데 잘 안되었다던가. 어쨌든 그렇게 우리 가족은 분당 할머니 집으로 들어갈 뻔하다가 지금 살고 있는 구산동의 작은 집에 살게 되었다. 그렇게 4년을 살던 집을 이제 정리하고 이사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굉장히 좁다. 그래도 내 방은 있어서 누워있을 수는 있지만. 엄마도 집이 좁은 것이 미안했는지 내가 학교를 다니며 집에 늦게 들어오면 좁아터진 집에 들어오기 싫어서 항상 늦게 들어오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좁아터진 집을 정리하고, 이사 갈 준비를 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부동산에서 갑자기 불쑥 집을 구경하러 오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게 난 딸기 케이크를 앞에 두고 이사 갈 집을 상상해보며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카페에서 음료 없이 케이크를 하나 두고 있는 사람이 신기한 건지, 혼자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러 카페에 온 사람이 신기한 건지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과 세네 번 정도 눈이 마주쳤다. 동물원에서 먹이를 먹는 사자가 된 기분이 들어 창을 등지는 방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케이크에 집중하기로 했다. 작지만 예쁘게 생긴 케이크였다. 만드는 사람은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얼마나 오래 걸렸기에 이 작은 케이크가 5,300원이나 하는 걸까. 그럼 도대체 이 케이크 한 통은 얼마란 말인가. 점원이 냅킨에 돌돌 말아준 은색 포크를 풀어 케이크를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케이크는 15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고 나는 핸드폰을 켰다. 오목을 두고, 글을 끄적이다가 유튜브를 봤다. 유튜브는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연극 시간을 15분 정도 남겨두고 난 케이크를 담았던 빈 접시와 내 입에 들어갔던 포크를 카운터에 반납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끗했던 흰 접시에는 빨갛고 하얀 크림들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케이크의 세상 마지막 흔적은 곧 카페 알바의 설거지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내게 1시간가량의 따뜻함을 선물한 케이크에게 조의를 표하며 카페 문을 나섰다. 밖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낙엽들이 바람에 뒹구는 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로 빈틈이 없었다. 난 차가워진 안경을 벗어 겉옷으로 알을 닦으며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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