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4-26 17화

파도

by 김토끼

발을 디딜 적마다 발목까지 꺼지는 모래사장에 나를 세웠다. 여기저기 고장 난 신체. 바람이야 견뎌 내지만 어찌 성난 파도까지 견디랴. 쏴아- 무너지고- 쏴아- 무너지고- 파도는 하아얀 거품을 물고 나를 잘게 채찍질한다. 그 속에는 흩어진 나의 표정이 한 조각. 파도에 발목 윗부분이 으스러져 나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갈매기는 잘려나간 오른손을 물고 흐린 하늘을 날갯짓한다. 오른손에는 부러진 펜이 들려있다. 저 지저분한 새는 어딘가에 내 오른손을 심어라. 그곳은 햇빛이 잘 들고 땅이 단단하여라. 파도와 함께 해변에서 멀어지는 입술이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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