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읽다
‘아버지의 해방 일지’라는 책을 만났다.
시작은 ‘꿈꾸는 유목민’님의 블로그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11-12월의 독서 정리를 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으로 이 책을 꼽으셨던 걸 보며 호기심이 일었다.
동시성인지, 그날? 그다음 날 즈음에 연꽃 바람님이 올리신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님의 북 토크 안내를 보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참가할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
그저 기쁜 마음으로 책 두 권을 샀다.(한 권은 내 친구의 몫이었다.)
제목이나 소재를 보면 전혀 슬플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니컬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책을 넘기는 내내 먹먹해지는 마음… 아, 이런 게 천상 작가의 글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을 후벼 파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아침 글쓰기도 포기하고 아침 운동도 포기하고 하마터면 아침밥도 포기하고 출근할 뻔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를 만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40이 넘어서 내면 아이를 만나면서 비로소 새롭게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한 나의 시선과 생각이 겹치면서 이야기가 무섭도록 내 삶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 누구의 무엇도 아닌,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를 보기까지가 왜 그리 어려운 일일까?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부모의 역할은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 준 것으로 다한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사랑과 베풂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불평하게 되는 것, 그것이 자식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조차 당연하게 여기다가 이렇게 부모님의 죽음이나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깨닫는 부모라는 자리의 막중함과 한 인간으로서의 부모를 알게 된다.
세상 아무도 보지 않던 시간에도 빨갱이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삶을 바쳤던 아버지의 삶은 살아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끝났다. 하지만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아버지를 바라보던 딸은 기자보다 더한 취재 정신으로 글로써 죽은 아버지를 이렇게 세상에 살려두었다.
세상 누구보다 멀어졌던 부녀를 다시 회복하게 한 죽음이라는 아이러니처럼.
공산주의를 믿지 않는 딸에 의해 다시 살게 된 영원한 빨갱이, 아부지.
상식과 생각을 뛰어넘는 삶의 신비 덕분에, 삶은 더 살아볼 만한 것이 된다.
오늘도 일상에 치여 살아가는 나를 일으켜준, 숨 쉬게 해 준 책과 이야기가 내 삶에서도 신비를 일깨워 주는 도구가 되길 바라며, 글 쓰는 밤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