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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Jan 04. 2023

나목을 떠올리다

글쓰기에 소심해지던 어느 밤, 나목을 떠올리다.



좋은 이야기에서는 좋은 울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문득 삶을 살다가 ‘자기 앞의 생’의 모모가 준 울림이 기억이 나는 날이 있다. 도무지 모르겠는 아이의 속을 머리로 분석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는 어느 날이면 가슴속에서 모모가 말한다.


‘그냥 안아줘.’


 갇힌 새장과 같이 반복되고 답답한 일상을 살고 있는 어느 날이면, 류시화 시인의 책 속에 등장했던 새장에 갇힌 새가 말을 한다.


‘네가 지금 사랑하는 것은 너를 편안하게 하는 것들이야. 그것을 포기해야만 날 수 있어.’


 어제는 문득 밝은 이야기만 할 거 같은 나의 면면 중에 다크사이드인 내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한 다음 바락 겁이 났다. 그리고 ‘나목’을 생각했다.


정리 프로젝트 오프 모임으로 만난, 이웃님들과의 다정한 차 시간. 수다를 떨다가 마지막으로 선물처럼, 내 책을 건네려고 하는 때였다. 책을 사고 싶었다면서 돈을 직접 주시는 이웃님께 고마우면서도 바락 겁이 났다.


‘이 자기 고백적 이야기, 어쩌면 일기처럼 쓰인 이 글을 돈을 주고 판다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것을, 괜찮으려나?’


눈앞에서 건넨 만원을 손에 쥔 내 마음이 너무 불안해졌다. 내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고파는 물건이 된 내 책.


그 책에는 분명히 내 마음의 정성과 진심이 들어간 것이기는 하지만, 돈을 주고 팔만큼의 상품성이 있는가? 에 대한 의구심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마음.


그렇게 잠이 쉬이 안 오고 뒤척거려지는 밤에, 나는 ‘나목’을 생각했다. 글 안에 아름다움을 담고 싶은 미칠 듯한 강박이 있던 내게 나목이 말을 걸어왔다.


전쟁이라는 어두운 역사 너머의 봄을 그리는 의연한 나무 한 그루가 그려진 투박한 그림. 박수근 화백의 ‘나목’과 그 속에 아름다움의 가치를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냈던 박완서 작가의 첫 장편 소설, 나목.


나목의 작가 박완서는 치열한 전쟁의 시기를 온몸으로 살아낸 청춘이었다. 그녀가 찾은 생의 이유  하나가 '언젠가는  처절한 나날들에 대해 글을 리라!' 였다고 했다. 가족을 잃고 꿈을 잃고 희망을 잃은 스무  청춘이었던 그녀가  역사의 현장.


그리고 20여 년이 지나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그린 그녀의 소설 속 역사는 슬프고 처절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웠다. 치열한 역사의 시간을, 자신만의 방향으로 살아낸 이의 모습, 그런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일까?


상처를 온 마음에 품고 살아온 20년의 세월이 오히려 그 아픔을 숙성시킨 것일까?


처절한 나날들의 상처가 어떻게 깊은 울림의 시로 바뀐 것일까? 그것조차 아름다움의 시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상처 입은 치유자인 박완서 작가님의 시선 덕분이다.


감히, 나는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자꾸 나목을 떠올린 밤이었다.


여전히 세상을 향해 더 좋은 이야기를 주고 싶다는 강박과 진실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 그 모든 감정들이 요동치는 날이면 다시 박완서로 돌아가서 그녀의 작품을 읽을 것이다.


일그러져 보이는 것들과 부조리 속에서도 딛고 일어나던 주인공들의 생, 그것처럼 곧 내 멘탈도 굳게 일어서길.


오늘은 그렇게 ‘나목’의 힘을 빌어, 글쓰기를 이어간다.


좋은 글은 감동을 통해, 삶을 더 잘 살고 싶은 의욕과 용기를 준다. 고마워요, 박완서 작가님. 오늘은 당신이 불어준 따스한 바람이 내 영혼을 일으키네요. 어디선가 수많은 이들을 일으켜온 당신의 글처럼, 내 글이 내 삶이 더욱 단단해지길 바라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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