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세상에서는 누군가 쓴 글이 여기저기에 퍼져있다. 일을 하다가 한숨을 돌리고 싶을 때면 다음 카페의 인기 글을 본다. 유용한 척하는 정보, 감성적이거나 웃긴 글 따위를 보는 것이 머리를 식히는데 도움이 된다. 어느 날 외로움에 대한 짤막한 단상을 모은 게시물을 보던 중 ‘단조’라는 분이 트위터에 적은 글을 읽게 되었다.
『자기 관리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다이어트 이런 거 아니고 외로움 관리인 듯』
‘맞아, 그렇지.’ 그의 글에 공감했다. 혼자서도 잘 사는 삶의 내적인 핵심은 외로움에 지배되지 않는 것과 그 어떤 모략에도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오랫동안 혼자 누워있었다. 그는 당뇨병을 앓았고 결국엔 그로 인하여 돌아가셨다. 고통에 익숙해진 것인지 임종을 앞둔 그의 얼굴만은 고요했지만 발가락이 썩고 여러 합병증이 왔었다. 인슐린 조절 체계가 망가지면 망막병증, 신장병증, 뇌혈관질환 따위의 수많은 병증이 더불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이것이 사람들이 당뇨병을 무서워하는 이유이다.
외로움도 불안이나 우울 따위의 지독한 합병증을 몰아온다는 데서 당뇨병과 닮은 구석이 있다. 사람들은 유쾌하지 못한 감정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말간 얼굴로 바보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평소라면 관심도 없었을 사람과 사귀거나 술을 핑계 삼아 친구라 믿어왔던 사람과 공허한 밤을 함께 보내면서. 걸지 말았어야 할 전화와 기대지 말았어야 할 어깨, 감정에 휩쓸려 절제하지 못한 말과 지울 수만 있다면 깨끗이 도려내고 싶은 장면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내게도 “나를 왜 외롭게 만들어? 네가 있는데 내가 왜 외로워야 되냐고!” 울며 따져 물었던 밤들이 있었다. 어쩌지 못해 절절매는 너를 알면서도 끔찍하게 아파서 예민해진 환자처럼 쏘아붙였다. 홀로 지내는 지금보다 당신과 함께였던 날들이 더욱 날카롭게 외로웠다. 사랑과 친절을 줄 것이라 믿었던 사람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너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짙은 어둠과 몇 번이나 한 말을 까맣게 잊어버리던 순간이 온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아픈 것이 싫어서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다. 엄마는 딸의 외로움을 걱정했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야. 엄마는 아빠가 있다고 외롭지 않아?’ 내가 묻자 온종일 거실에서 생활하는 그녀가 안방에 틀어박혀 있는 그의 공간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맞아, 그렇지.’
사람들은 둘이서 살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혼자서도 외로움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은 둘이 살아도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잠깐의 시기 동안 서로를 달래는 것뿐이다.
외로움은 없애거나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완치가 불가능하다. 평생 인슐린 수치를 관리할 수밖에 없는 환자처럼 외로움을 조금 성가신 지병으로 여기고 그저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광활한 우주에 홀로 서 있는 인간은 원래가 외로운 존재이니 나의 고독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첫 번째 방법이다. 유별나게 나만 고통에 과민한 것 같이 느껴져도 다들 고요한 얼굴로 통증을 견뎌 내고 있다. 남의 고난에 위안을 얻는 것은 찌질하기 짝이 없지만 어쨌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썩 위로가 된다. 때때로 찾아오는 통증에 덜 아파하지는 않겠지만 차츰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쟤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우리는 모두 다 아프다는 것을.
각자에게는 본인이 짊어져야 할 고유한 감정의 짐이 있다.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스스로일 뿐. 혼자서도 외로움 수치를 튀게 하지 않을 자신만의 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끔은 전문가의 상담이나 도움도 받는 것도 좋다. 고독을 끌어안고서도 건강하게 살아 나가야 한다. 작은 병이 있더라도 삶은 계속되고 나는 행복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