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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Feb 05. 2024

봄이 온다

봄꽃이 장에 나오는 계절, 4월이다. 꽃을 파는 아주머니는 시장 건너편 신호등 아래서 색색의 화분을 펼쳐 놓고 퇴근하던 나의 걸음을 잡았다. 설레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신호가 몇 번이나 바뀔 동안 꽃구경을 하다가 쨍한 노란색과 여린 분홍색의 칼란디바를 신중히 골라 왔다. 작은 베란다에서 햇빛을 머금고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을 틔우는 그들을 보면 여지없이 마음이 달뜬다. 소담히 피어난 꽃들이 집 안 가득 청명을 몰고 온다.


식물을 키우게 된 것은 스무 평 남짓의 내 집이 생기면 서부터이다. 오랫동안 독립을 꿈꿨던 나는 집 꾸미기에 진심을 다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오늘의 집’이나 ‘핀터레스트’에서 인테리어 사진을 찾아보았다. 라탄으로 만들어진 가구 혹은 보헤미안 풍의 커튼 있는 사진에는 항상 열대 관엽 식물들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사를 하면 탁자에 둘 식물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인테리어 소품들과 함께 작은 나무인 마오리소포라를 산 것이 식집사의 길로 들어선 시작이 되었다.


마오리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닮아서 이름 지어진 마오리소포라는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환경을 좋아한다. 다행히 그의 생육 환경이 우리 집과 맞았던지 걱정했던 분갈이 몸살 없이 무탈하게 적응해 주었다. 갈지자형으로 꺾인 나뭇가지에서 연두색의 조밀한 잎을 내어주는 그가 어지간히 기특했다.

식물을 바라보면 시간이 빨리 갔다. 텔레비전의 영상처럼 화려한 장면 전환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느린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주말 아침에는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웅크리고 있는 새순을 찾아내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 되었다. 초보 식집사의 서툰 돌봄에도 자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그들이 대견하여 바라보는 눈에 애정이 어렸다.

식물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부지불식간에 초록을 사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나이가 드는 바람에 어딘가 내재되어 있던 양육의 본능이 발현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아기 대신 식물을 키우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우스갯소리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들에게 전례 없는 애정을 쏟고 있다. 가습기를 틀어 습도를 맞춰주고 겨울이나 장마철에는 식물등을 설치해 모자란 햇빛을 보충해 준다. 때에 맞추어 방제하고 시비도 한다. 요란을 떨며 그들의 고요한 성장을 돕는다.


식물은 움직인다. 바람에 흔들리거나 아주 천천히 말린 신엽을 펼치기도 한다. 그들의 활동이 적요한 집에 얕은 숨을 불어넣는다. 퇴근을 하고 불을 켠 뒤 베란다로 향하면 어제보다 키가 자란 식물들이 여전한 푸름으로 나를 반긴다. 분무기에 펌프질을 하고 공중에 분사하면 시원한 물방울이 발등에 내려앉고 젖은 잎에 생기가 어린다. 시든 잎을 솎아내거나 자구를 캐며 그들의 생명 활동에 동참하고 있으면 이 집에 살아 있는 것이 나뿐이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저 누군가 내 옆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때가 있다. 싱그러운 밤바람이 젖은 곱슬머리를 스쳐 잎 사이를 흔들면 안온한 집에 생의 기운이 흐른다.


몇 주 전 신호등 아래서 사 온 칼란디바가 다복한 꽃망울을 모두 터뜨렸다. 모진 어둠을 견뎌낸 꽃은 봄이 오면 누구보다 화려한 계절 맞이를 한다. 마음에 서리가 내릴 때 식물을 본다. 견디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봄이 올 것이라고 식물이 내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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