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없는 짓만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무용한 일에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고 있다는 것은 상당 부분 인정을 해야만 하겠지. 얕은 배움은 인생의 즐거움이고 약에 쓸 똥만큼도 없는 끈기와 환장할 호기심은 고질적 질병이니 취미 수집벽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림 그리기, 글 쓰기, 독서, 발레, 달리기, 헬스, 뜨개질, 베이킹, 또 생각조차 나지 않는 자잘한 장난들까지. 취미라고 말하기엔 모두 비루한 수준이지만 나는 정녕 쓸데없는 짓들을 사랑한다.
나의 고약한 취미 수집벽을 두둔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누가 뭐래도 나이가 들 수록 취미가 하나쯤은 필요하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놀기 삼아 하는 일들은 돈을 벌기 위해 참고 있는 팍팍한 시간을 견딜 힘을 준다. 물레를 돌린다든가 악기를 배우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저 안락한 침대에 기대어 유튜브를 보거나 동네의 맛집을 탐색하는 일이라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즐거움은 오늘 하루를 버텨낸 나에게 작은 보상이 된다.
달리기를 한다고 마라톤 메달을 딸 필요는 없고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콘텐츠를 즐기기만 하면 되지 구태여 브이로그를 찍어 수익을 창출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소파에 드러누워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취미라고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이 얼마나 건전한 취미생활인가?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꽤 재미가 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일들은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는 수영을 배운다. 발레를 배우다가 날씨가 더워져서 수영으로 갈아탔는데 너무 못해서 선생님이 엄청 답답해한다. 주말에 수영장에 나와 혼자 허우적거려 보기도 하고 유아 풀에 격리되어 열심히 발차기 연습도 했지만 나아지는 것 없다. 염병할 운동 신경 덕에 나는 여전히 우리 반 꼴찌이지만 기죽지 않고 쌀쌀한 밤을 맞을 때까지는 수영장에 다닐 것이다. 물에 들어가서 첨벙거리는 것. 그 자체가 좋으니까 말이다.
월, 수, 금은 헬스장에 가고 화, 목은 수영장에, 토요일은 글쓰기 모임에 나간다. 심심할 틈 없이 바쁘게 산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몰려올 때면 ‘다 감당이 돼?’라고 물을 만큼의 더 많은 일들을 벌인다. 원데이 클래스에 발을 담그거나 땀을 뻘뻘 흘릴 만한 운동을 시작한다. 바쁨은 외로움을 상쇄하니까.
혼자서 겪어야 하는 여분의 시간을 씩씩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잘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취미 활동은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심심하다며 몸을 꼬는 대신에 특정 활동에 몰입을 하며 시간을 소비할 수 있게 하니 아주 기특하다.
노년층에게 외로움은 인지력 감퇴와 우울증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혼으로 늙어 갈 수도 있는 나에게 적막한 시간들을 처리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지속적인 취미 활동은 외로움이나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을 쫓는 효과적인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 없나?’하며 흥미를 유발하는 새롭고 쓸데없는 일들에 기웃거린다.
일생을 재산 증식과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몰두해 오신 부모님은 돈 한 푼 되지 않는 취미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생업에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N포 세대로서는 실속 없는 짓만이 내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비록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글 하나 쓰지 못하고 공연히 종이만 낭비하더라도 공들인 시간들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으니 실속 없는 짓들에 몰두하는 것은 내게 있어 전혀 무용하지가 않고 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