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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Aug 18. 2021

정리되지 않은 단톡방

내향형(I) 인간의 관계 유지 방법

군대 선임의 한 가지 습관을 기억한다. 그는 톡방을 끊임없이 정리했다. 개인 톡방부터 단톡방까지 대화가 끝난 방은 여지없이 나가버리는 작업을 수시로 했다. 그와 함께 있는 단톡방이 있어서 그는 나에게도 물어보곤 했다. 이 톡방 볼일 끝났겠지? 이제 나가도 되겠지? 하고 말이다. 몇 년 묵은 톡방도 잘 정리하지 않는 내게 선임의 그 습관은 상당히 신선했다.



그에 반해 나는 단톡방 정리를 잘하지 않는다. 단체로 폭파하지 않으면 그대로 두는 편이다. 정리하는 것이 귀찮은 탓도 있지만 사실 단톡방을 꽤 좋아해서 그렇다. 물론 불편하지 않은 단톡방 얘기다. 불편하지 않다는 표현이 딱 적당하다. 실없는 농담을 할 만큼 편한 단톡방부터 몇 주 텀을 두고 안부 정도를 나누는 그런 방까지 포함한 범주다.



단톡방을 좋아하는 것은 내가 개인 선톡을 어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향적이다. MBTI로 말하자면 확실한 I다. I인 내게 사람과의 관계는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영역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과 관계 맺고 유지하려고 쓰는 에너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내 개인 영역을 지키고자 할 때 쓰는 에너지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고 카카오톡에서도 쉼이 필요한 사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한 I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군데군데 끼여서 많이 노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여러 사람과 함께라 편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단체는 편한 점이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단체의 기준으로 자연스레 정해지고 그 결정이 용인되는 부분이 있어서다. 단톡방에서도 비슷하다. 그 부분은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다. 만남의 빈도, 단톡의 분위기, 관계의 깊이까지 대략적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상당히 편하다고 느끼고 있다.



단톡방은 내게 있어 적당히 알고 지낸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훌륭한 수단이다. 개인적으로 연락했다면 많은 에너지와 신경을 썼을 것이다. 안부는 어느 정도로 물어야 하는지, 대화는 어디서 끝을 맺어야 할지, 만나자고 약속을 잡아야 하는지, 밥 한번 먹자고 하는 말이 어느 정도 진심인지 등등 말이다. 애초에 이런 부담 때문에 개인적인 연락은 하지 않았을 것도 같다.



가끔씩 대화하는 단톡방의 알람이 울리면 단톡방의 존재가 사뭇 고마워진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삶에서 큰 부담 없이 관계의 끈을 놓지 않게 해 주니 말이다. 굳이 말하지 않고 읽기만 해도 충분하다. 말을 걸고 싶을 때 말을 하면 된다. 사라지는 숫자 1로만 존재해도 되는 익명성이 좋으면서 언제든 대화에 뛰어들 수 있는 장이 마련돼 있는 것도 좋다.



오늘도 하루에 수없이 톡을 하면서 채팅 목록을 들여다본다. 여러 단톡방이 보인다. 가끔 힘이 빠져 채팅 목록 아래로 가라앉는 단톡방은 가라앉게 놔둔다. 굳이 살리려 하지 않고 정리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채팅 목록이 지저분해질 수도 있지만 이런 애쓰지 않는 톡방 관리법이 좋다. 막상 가라앉던 단톡방에 채팅 알람이 울리면 궁금해서 바로 확인한다. 마침  또 하나의 카톡 알람이 뜬다. 오랜만에 떠오른 단톡방이다. 이번엔 아아 그렇구나 하고 읽고 넘긴다. 그냥 그런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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