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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Oct 11. 2021

가끔씩, 찾아가서 들어요

브로콜리너마저, 앵콜요청금지

여느 때와 같은 평일, 요즘 점심을 빨리 먹고 회사 주변 공원을 걷는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에어팟을 끼고 소리를 잔뜩 올린 후 공원을 한 바퀴 걷는 것이 나의 최근 점심 루틴이다. 그날도 공원을 향하면서 음악 앱을 켰다. 쭉 나열된 플레이 리스트를 보면서 어느 노래를 들을까 고민했다. 내 플레이 리스트에는 곡이 많다. 대충 사는 내 성격이 반영된 플레이 리스트는 정리되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은 2400곡가량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곡들, 드라마 ost, 그때그때의 인기 차트, 앱에서 추천하는 리스트 등이 섞여 있다. 언젠가 정리하겠지 하다가 놔둔 것이 지금의 플레이 리스트가 됐다. 한번 다 지우고 다시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막상 떠올리려 하면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가끔 듣고 싶은 그런 곡도 꽤 있기 때문이다.            


          

뒤적거리다 발견한 것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곡이다. 나는 이 가수의 정규 1집을 좋아한다. 복고풍 사운드와 풋풋한 감성을 가득 담은 그 앨범의 모든 곡을 꽤나 좋아하며 들었다. 거기에 수록된 10번째 곡인 ‘앵콜요청금지’라는 곡은 특히 더 좋아했다. 이 곡은 브로콜리너마저를 알게 해 준 곡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멜로디, 담백한 가사로 말하는 이별, 당시 보컬이었던 계피의 목소리. 이러한 것들은 언제나 이 곡을 한창 듣던 2008년 중학생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그 감성을 간만에 느끼고 싶어서 앵콜요청금지를 눌러 재생했다. 그러자 한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어느 날 아버지와 나, 둘이 함께 가족 단위 모임에 갔다. 정확히 무슨 모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는다. 아버지와 친한 지인들이 각자 가족들을 데리고 동해안 어느 곳으로 놀러 간 정도로 기억한다. 아마 포항과 영덕 그 사이 어딘가였던 것 같다. 다섯 내지 여섯 가정이 모였는데, 그중엔 나와 동갑인 여자애도 있었다. 보통 가족 모임에 따라오는 건 어린아이들이었기에 나랑 같은 나이는 그 애뿐이었다. 단발머리에 이목구비 선이 얇은 아이였다. 나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내심 친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고 동시에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잔뜩 긴장했다. 당시 나는 친해지고 싶은 기분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어린아이보다는 성숙했지만, 사람을 적당히 상대할 줄 아는 경험이 있을 만큼의 나이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말을 걸어볼까 생각만으로 몸과 머릿속이 뻣뻣해지는 내성적인 사춘기 중학생이었다.               

     

     

그 애는 나만큼 낯 가리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애가 다가와 과자 봉투를 내밀면서 ‘같이 먹을래?’라고 말을 건넨 그때는 저녁을 먹은 후였고 나는 모래 위 평상에 앉아서 쉬고 있던 참이었다. 어린아이들은 금방 친해져서 모래사장을 해맑게 뛰어다니고 있었고, 갓 노을이 져서 어슴푸레한 바다 쪽에선 파도가 잔잔하게 치고 있었다. 내심 언제 말을 붙일까 고민하던 나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했다. 혼란스러워서 머릿속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나는 ‘아니 괜찮아’라고 답해버렸다. '과자를 별로 안 좋아해서...' 단호하게 거절한 것 같아 뒤이어 사족을 덧붙였다. 나도 당황했지만 그 애도 당황한 듯 보였다. 그 애는 잠시 머뭇거리다 알겠다고 짧게 대답한 뒤 원래 자기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바다가 새까맣게 될 때까지 말을 다시 붙일까 머뭇거렸고 그 애가 숙소로 들어가는 걸 보고나서야 필요 없어진 고민을 멈추었다. 나는 혼자 평상에 더 앉아 있다가 들어갔다. 평상에 앉아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바다를 보면서 파도소리가 꽤 좋다고 생각했다. 



그 애와의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따로 얘기를 나눈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다음으로 또렷한 기억은 다음 날 아침에 바다를 보면서 한 시간 정도 백사장을 걸었던 일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리버 MP3로 앵콜요청금지를 계속 들었던 일이다. 그때는 그냥 노래가 좋아서 계속 들었을 뿐인데, 이젠 노래를 들으면 십중팔구 그때가 떠오른다. 과자를 건넨 그 애가 생각난다기 보단 그때의 전반적인 감성이 떠오른다. 한 번 더 말을 걸어 주길 바랐던 찌질했던 마음과 결국 먼저 말을 걸지 못했던 소심함을 지닌 당시의 내가 생각난다. 별일 아닌 걸로도 잔뜩 긴장하고 설렐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나 말이다. 찬찬히 더듬다 보면 풋풋하고 아련하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계속 떠올리고 느끼고 싶은 기억이다. 앵콜요청금지는 당시 감정과 감성, 기억이 마구 뒤섞여 기록된 노래다.                

     



노래를 들으면서 옛 기억에 빠져있던 나는 노래가 끝난 후 유튜브를 켠다. 향수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다. 그리고 브로콜리너마저 1집을 검색한다. 아쉽게도 내가 앱에서 들은 건 오리지널 정규 1집이 아니다. 그 앨범은 현재 음원이 막혀 앱에서 듣지 못한다. 1집 앨범 이후 당시 소속사를 나오고 보컬이었던 계피가 탈퇴하는 등 여러 이슈와 저작권 문제가 얽히면서 1집 앨범이 통째로 막혀있는 걸로 알고 있다. 앨범 제목처럼 ‘보편적인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던 브로콜리너마저의 1집은 더 이상 보편적인 방법으로 들을 수 없다. 그들의 사정 역시 보편적이지 않을 거라 짐작한다. 단지 팬 입장에선 아쉬울 뿐이다. 



브로콜리너마저의 1집 앨범, 더 이상 음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그나마 팬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첫 ep 앨범인 '앵콜요청금지'가 16년도에 재발매되었다는 점이다. 덧붙이자면 브로콜리너마저의 첫 앨범은 2007년 발매한 ep앨범 '앵콜요청금지'이고, 그 이후 2008년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가 발매됐다. 두 앨범의 수록곡이 꽤 비슷한데, 그 말은 음원이 막힌 이후 계피 목소리로 들을 수 없었던 몇몇 곡을 재발매한 ep앨범을 통해 다시 들을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그래서 재발매 소식을 듣고는 설렜다. 1집 당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복고풍 사운드, 청춘을 얘기하는 가사들과 그 곡들에 담긴 향수를 다시 맛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발매 앨범은 뭔가 아쉬웠다. 들을수록 아쉬움은 짙어갔다. 음악 퀄리티 문제는 아니었다. 단지 곡의 음색이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을 뿐이었다. 몇 차례 더 듣고 난 후 깨달았다. 나는 계피가 부른 앵콜요청금지가 아니라 그 당시 계피가 부른 앵콜요청금지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재발매한 앨범은 뭔가 덧칠한 느낌이었고, 덧칠에 가려진 건 오리지널 곡에 담긴 내 감성과 추억인 듯싶었다. 향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건 오리지널 곡이었고 그게 나의 곡이었다.

               


가끔 노래 제목처럼, 그들의 상황처럼 앵콜요청금지가 된 오리지널 곡이 듣고 싶다. 그래서 음원 곡을 듣고 나면 유튜브에 찾아간다. 유튜브는 소중한 감성이 담긴 앨범을 잘 간직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유튜브를 통해 찾아 듣는 것이 딱히 불편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마치 어릴 적 사진 앨범을 펼쳐 보는 느낌이어서 그렇다. 풋풋하고 부끄러운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간직한 소중한 앨범. 옛날 앨범을 매일 감상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내가 듣고 싶을 때 가끔 들으러 간다.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가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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