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2년차, 분갈이를 했다

천냥금, 극락조

by 신대방 고라니

집에 2개의 식물이 있다. 자취 시작할 때 산 천냥금과 극락조다.(식물 고유 명칭이다.) 처음 얼마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볕을 잘 받으라고 창문가에 따로 내놓을 만큼 잘 돌보았다. 그러나 직장과 이사 등으로 근래엔 거의 신경 쓰지 못했다. 오랜만에 자세히 살펴보니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잎사귀 끝 마른 부분, 흘러넘친 물에 얼룩진 화분, 식물에 비해 좁아 보이는 화분 크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주말에는 신경을 써주겠노라 생각하며 집 근처 꽃집에 들렀다.



분갈이가 가능한지 물어봤다. 사장님은 분갈이에 필요한 화분과 흙은 판다면서 식물 종류와 크기, 키운 기간 등을 물었다. 신경 못 쓴 만큼 잘 설명하지 못했다. 사장님께 말한 뒤 극락조를 꽃집에 가져왔다. 상태를 확인한 사장님은 바로 분갈이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얼핏 지렁인 줄 알았다면서 내게 화분 밑바닥을 보여주었다. 뿌리가 화분 배수 구멍으로 나와 자라고 있는 심각한 상태였다. 마치 인삼처럼 굵은 뿌리였다.




그 자리에서 화분을 깼다. 뿌리를 따로 뺄 수 없을 만큼 배수 구멍을 꽉 막고 있었다. 화분 속에는 뱀이 똬리 튼 것 마냥 뿌리가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그렇게 계속 공간을 찾다 화분 밖으로 뿌리 길을 낸 것이리라 생각하며 흙을 털고 얽힌 부분은 잘라냈다. 사장님은 극락조를 조심스레 다루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라고 했다. 그 말에 공감한 건 아니지만 잘못한 기분이었다. 마치 개는 훌륭하다에서 빌런 의뢰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찌 보면 자취생활 같이 시작한 룸메이트인데 좀 소홀하긴 했다.




사실 귀찮았다. 그동안 바빠서 신경 못 쓴 건 아니었다. 눈에 띌 때마다 화분 갈아야지 생각만 하고 그냥 지나쳤다. 생각으로만 그친 순간이 지나갈 때마다 뿌리는 짓누르는 화분 밑을 비집고 살길을 찾고 있었다. 멈춰 있던 것을 움직이게 한 것은 지인과의 대화 덕분이다. 지인에게 "분갈이를 할 거야"라고 했더니 그럼 꽃집에서 해주는지 알아보라고 말해주었다. 퇴근길 문득 생각난 그 대화 덕에 나는 꽃집에 들렀다. 아마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국 물구멍이 막힌 화분 속에서 흙과 뿌리가 썩을 때까지 몰랐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다. 타인에게 무심코 내뱉은 말은 때론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KakaoTalk_20210401_234505698_13.jpg 무사히 분갈이를 마친 극락조



나쁜 버릇이 많다. 귀찮아서, 마주치기 싫어서 미뤄두고 회피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회피해서 생긴 감정이나 상황들을 내 일 아니라는 듯이 방관한다. 모른 척한 상황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엔 하나의 식물이었지만 다음엔 하나의 관계일 수도,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면서, 또 어리석음으로 인한 문제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곁에 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더 느낀다. 어리석음을 짚어줄 수도, 어리석은 감정들을 같이 흘려보낼 수도 있는 관계들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식물을 산 걸 수도 있다. 게으름과 외로움을 방지하려고 말이다. 지방에서 막 올라와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혼자였다. 웅크리는 성향이 강한 내가 식물 덕분에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신경쓰고 돌볼 수 있었다. 방안에 나 아닌 다른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비록 정신없는 삶에 천냥금과 극락조를 잘 보진 못했지만 이번에 분갈이를 하면서 찬찬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분갈이를 하면서 주변을 한 번 더 생각했다. 내 식물의 화분을 들여다보았듯, 다른 이의 화분도 들여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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