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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방 고라니 Oct 19. 2021

자취 2년차, 분갈이를 했다

천냥금, 극락조

집에 2개의 식물이 있다. 자취 시작할 때 산 천냥금과 극락조다.(식물 고유 명칭이다.) 처음 얼마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볕을 잘 받으라고 창문가에 따로 내놓을 만큼 잘 돌보았다. 그러나 직장과 이사 등으로 근래엔 거의 신경 쓰지 못했다. 오랜만에 자세히 살펴보니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잎사귀 끝 마른 부분, 흘러넘친 물에 얼룩진 화분, 식물에 비해 좁아 보이는 화분 크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주말에는 신경을 써주겠노라 생각하며 집 근처 꽃집에 들렀다.     



분갈이가 가능한지 물어봤다. 사장님은 분갈이에 필요한 화분과 흙은 판다면서 식물 종류와 크기, 키운 기간 등을 물었다. 신경 못 쓴 만큼 잘 설명하지 못했다. 사장님께 말한 뒤 극락조를 꽃집에 가져왔다. 상태를 확인한 사장님은 바로 분갈이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얼핏 지렁인 줄 알았다면서 내게 화분 밑바닥을 보여주었다. 뿌리가 화분 배수 구멍으로 나와 자라고 있는 심각한 상태였다. 마치 인삼처럼 굵은 뿌리였다.  

    



그 자리에서 화분을 깼다. 뿌리를 따로 뺄 수 없을 만큼 배수 구멍을 꽉 막고 있었다. 화분 속에는 뱀이 똬리 튼 것 마냥 뿌리가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그렇게 계속 공간을 찾다 화분 밖으로 뿌리 길을 낸 것이리라 생각하며 흙을 털고 얽힌 부분은 잘라냈다. 사장님은 극락조를 조심스레 다루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라고 했다. 그 말에 공감한 건 아니지만 잘못한 기분이었다. 마치 개는 훌륭하다에서 빌런 의뢰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찌 보면 자취생활 같이 시작한 룸메이트인데 좀 소홀하긴 했다.     




사실 귀찮았다. 그동안 바빠서 신경 못 쓴 건 아니었다. 눈에 띌 때마다 화분 갈아야지 생각만 하고 그냥 지나쳤다. 생각으로만 그친 순간이 지나갈 때마다 뿌리는 짓누르는 화분 밑을 비집고 살길을 찾고 있었다. 멈춰 있던 것을 움직이게 한 것은 지인과의 대화 덕분이다. 지인에게 "분갈이를 할 거야"라고 했더니 그럼 꽃집에서 해주는지 알아보라고 말해주었다. 퇴근길 문득 생각난 그 대화 덕에 나는 꽃집에 들렀다. 아마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국 물구멍이 막힌 화분 속에서 흙과 뿌리가 썩을 때까지 몰랐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다. 타인에게 무심코 내뱉은 말은 때론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무사히 분갈이를 마친 극락조



나쁜 버릇이 많다. 귀찮아서, 마주치기 싫어서 미뤄두고 회피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회피해서 생긴 감정이나 상황들을 내 일 아니라는 듯이 방관한다. 모른 척한 상황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엔 하나의 식물이었지만 다음엔 하나의 관계일 수도,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어리석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은 모습으로 보면서, 또 어리석음으로 인한 문제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곁에 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더 느낀다. 어리석음을 짚어줄 수도, 어리석은 감정들을 같이 흘려보낼 수도 있는 관계들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식물을 산 걸 수도 있다. 게으름과 외로움을 방지하려고 말이다. 지방에서 막 올라와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혼자였다. 웅크리는 성향이 강한 내가 식물 덕분에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신경쓰고 돌볼 수 있었다. 방안에 나 아닌 다른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비록 정신없는 삶에 천냥금과 극락조를 잘 보진 못했지만 이번에 분갈이를 하면서 찬찬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분갈이를 하면서 주변을 한 번 더 생각했다. 내 식물의 화분을 들여다보았듯, 다른 이의 화분도 들여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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