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봄날

청춘의 초상

by 꿈꾸는 리얼리스트

□ 세 번째 봄날 (0425)

◇ #1. 이대 앞 심포니
막 신입생 되고 얼마 안 됐을 때 그를 따라 이대 앞 심포니에 간 적이 있다. 그의 초등학교 때 친구가 내 고3 때 우리 반 반장이었고 어찌 둘이 만난다는 얘길 듣고 "나도 갈까?" 했다가 따라갔던 것. 커피 한 잔 하면서 우리는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그때 나눈 이야기는 생각나지 않는데 이대 앞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영주야. 이 에스컬레이터가 서울에서 젤 긴 에스컬레이터래."라고 일러주던 그였다. 그가 입었던 촘촘했던 질감의 와인색 스웨터와 검정 배낭이 기억난다. 커피 한 잔 하고 내가 먼저 일어섰는지, 딴 데 가서 저녁이라도 먹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늦은 오후 그때 심포니만의 분위기는 그대로 기억난다. 그때 P가 흘러나오는 곡에 대해 설명해줬는지는 모르겠다. P는 친구지만 이런저런 얘기와 알아둘 만한 것들을 잘 일러주었다.

#2. 그의 자취방
이땐 초여름 혹은 늦은 봄이었다. 백마쯤 되었나?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동네 분위기 등등 기억 안 나고 역시 무슨 얘기를 나눴는 지도 별로 기억 안 난다. P의 자취방은 기억난다. 별 게 없었고 책상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우린 무슨 얘기를 하다가 메모를 했고 나는 "너 글씨 잘 쓰네. 난 글씨 잘 쓰는 사람 좋던데." 했던 거 같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지만 그와 내가 시계를 바꿔 찼다. "우리 며칠 간만 시계 바꿔 차 보자."라며 친한 척, 우정을 기억하고 간직하고자 했던 거 같다. 그의 시계가 까만 쎄무 줄이었고 알이 꽤 컸다. 재미로 끼고 있긴 했는데 그 친구는 알 적은 여자 시계를 차고 있으려면 웃겼을 것 같다.

#3. 두 시의 남부터미널
남부터미널을 수차례 오고 갔지만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배웅이 될 것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허전하면서도 꽉 찬 감정을 오래간만에 느껴보았다. 누구 말마따나 한 사람이 오는 건 그의 일생이 한꺼번에 오는 거라 하더라만 앞으로 그와 나 사이의 세 번째 봄날로 기억할만한 남부터미널의 오후 두 시는, 봄날이 가듯 허전하고도 텅 빈 듯한 충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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