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에서 원주로

뜻밖의 원주

by 꿈꾸는 리얼리스트

곰치국을 먹고, 눈부신 죽변항을 빠져나왔다. 정오가 지난 시간이었는데 아직 오전 같은 청량감이 일렁대었다. 동해가 좋다고들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남해만을 주로 다녔던 나는 동해의 맑음을 제대로 느끼는 중이었다. 울진 바닷가의 해안선을 따라 달리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커피숍이 두 군데 있다. 첫 집을 가려다 두 번째 집에 갔다. 발코니가 마치 지중해의 산토리니처럼 청명했다. 커피숍은 한산했다. 우리가 오고 난 뒤로 두 세 팀이 들어왔다.

L이 심한 사투리로

"영주야, 나는 아메리카노다, 니는 뭐 마실 거고?" 했다.

주문을 받던 아가씨들이 까르르 웃는다.

나는 대학생 때 즐겨먹던 파르페와 비슷한 걸로 주문했다. 휘핑크림을 얻은 카페 모칸가 그랬다. 과연 파르페처럼 생각보다 요란한 장식의 커피가 나왔다.

L은 진짜 산? 에 있다가 온 건지, 승려생활이라도 한 건지... 나더러 차 쟁반을 들고 오라고 했다. 내 가방을 들어줄지언정 아낙네들이 들어야 할 법한 차 쟁반은 못 든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도사라고 말하던 L은 진짜 산속에서 누구 시중을 받으며 지낸 듯, 뒷짐을 지고 걷는가 하면 앞서거니, 뒷 서거니 나를 따라오거나 앞장서기를 잘했다.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에서 커피를 마셨다. L이 마신 아메리카노는 보통이었고, 내 커피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하지만 L은 "네 것도 맛보자." 하면서 내 커피를 마셔보더니 "커피 맛은 나쁘지 않네."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들뜬 기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동해의 맑은 물을 바라다봤다. 모든 게 싱그러웠다.

커피를 마시고, 커피숍을 나오기 직전에 마당에 그네가 있어 앉아도 보았다. 나의 뒷모습을 찍어주던 L이 내 곁으로 와 앉았다. 문득, "80이 돼도, 90이 돼도 널 사랑할게."라던 첫사랑 남자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된 내 옆에 누군가 앉아준다면,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고... 아니, 너 같은 남자를 만나를 만나 늙을 때까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했다. 이후 그의 SNS에서 그 커피숍에서 봤음직한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평소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바람까지 떠올려졌다.


커피숍을 나와 또 달렸다. 이제는 그가 사는 경기도의 어느 소도시로 달릴 참이었다. 거기서 나는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갈 참이었다. 하루 남은 연휴는 각자 쉬기로 하고, 거기서 헤어지기로 했던 것... 하지만 울진을 빠져나와 단양쯤 닿았을 때 L이 말했다.

"나, 돌아가기 싫다. 원주까지 갔다가 가자. 대신, 너를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늦더라도 집 앞까지 태워줄게."

라고 했다. 정말이지 그가 준 선물 때문에라도 캐리어에, 한 짐이 더 있어서 서울에 도착하면 꽤 먼 거리의 집에까지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나는 당장 고마워서 "그럼 나는 좋지. 고마워."라고 했다. 우리는 다시 원주를 향해 달렸다. 연휴라서 행락객들이 많았다. 5월 초인데 낮에는 푹푹 쪘다. 하지만, 더없이 싱그러운 봄날의 미풍이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편안하면서 긴장되고, 계속 긴장해서 그런지 몽롱한 기분에 노곤하기도 했다. L은 샹송에서 가요, 가요 중에서 포크와 트로트를 넘나들며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다 들려주었다. 주현미의 곡을 들으며 넘던 문경새재는 너무 나른했다. "주현미 곡을 싫어하지는 않는데 왜 이리 쳐지노?"

했더니 "영주는 주현미 곡을 싫어하는구나." 하면서 다른 곡을 틀어줬다. 주변은 온통 푸르른데 구슬픈 트로트가 신파처럼 느껴진다. 어제 부산에서 출발할 때는 샹송이었는데 지금은 트로트... 평소에 트로트라고는 전혀 듣지 않는 나에게 묘한 기분이었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좀 자라. 운전하는 사람만큼이나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든 법이다."

"운전 조심해라. 내 좀 잘게..."

정말이지 노곤해서 한숨 붙여야 될 것 같았다.

영주, 칠곡, 충주, 단양, 뭐 그렇게 지나친 것 같다... L의 달구지는 다시 원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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