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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Dec 09. 2021

가장 갖고 싶은 것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니까


"언니~ 돈 좀 보냈어. 목걸이 하나 사라고! 다른 거 말고 꼭 목걸이만 사야 돼!"     



응? 무슨 돈? 왜? 대체 왜? 왜? 왜? 왜? 이 나이에 동생한테 용돈 받을 일이 뭐간? 왜 보낸 건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우아하게 받을 줄 모르는 나는 호들갑을 뒤집어쓰고 물었다.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 언니 집에 얹혀살던 그때의 집값이라 했다. 따아아아식, 제법 어른이네. 따아아아식, 언니 된 입장으로 부끄럽게스리.. 물가 상승률이란 게 있는데 말야. 좀 더 쓰지... 그러고는 홀라당 받았다. 잘 키운 동생 열 남편 안 부럽다. 보고 있나, 남의 편.     



이 돈으로 목걸이를 사라고? 응. 딱 목걸이만 사야 해! 다른 건 안 돼! 얘는 아무리 클레오파트라의 목걸이를 걸친들 그 모가지가 그 모가지 이상이 되지 못할 걸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싶다. 당시 읽고 있던 책이 하필 <싯다르타>였던 탓에 내 목에 걸릴 금붙이 '따위' 부질없다 했다.     


"나 책 사고 싶은데, 책 사면 안 돼?! 백 권쯤 사면, 백 권만큼 행복하겠다야."     


책에 빠져 사느라, 사고 싶은 거라곤 책밖에 없었다. 굵직한 목에 금실 한 줄 거느니, 백 권의 책으로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살 수만 있다면 책 읽을 '시간'까지 사고 싶을 지경이었다. 책의 재미에 뒤늦게 빠져버린 난, 안 그래도 부족하던 시간을 더 부족하게 느꼈다. 일상의 모든 것에 손을 놓고라도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싶었다. 이 재밌는 걸 왜 지금에야 알았을까. 난 언니가 맞는데, 동생처럼 답했다.     



절대 목걸이만 사야 한다고 못을 박는 동생의 전화를 끊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역시나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들뿐이다. 목걸이는 무슨, 내 만족을 위한 라이프 리스트에 목걸이란 1도 없다. 그래서 그 돈은 받았지만 안 받은 돈이고, 쓸 수 있지만 쓸 수 없는 돈인 채 그대로 남았다.     



동생은 스스로에게 선물 준다 생각하라고 했다.. 응? 선물! 그래, 나에게 선물 좋지, 그래! 선물을 준다고 아무리 고쳐 생각을 해봐도 책 외엔 떠오르지 않는 난, 뭐가 잘못된 걸까.     



샥티 거웨인이 그랬다. '사람은 내부에서 인도하는 대로 따르지 않을 때마다 에너지의 손실과 힘의 손실, 정신적 죽음을 느낀다.'라고. 이름이 어려워서 말도 어렵게 느껴지지만 생각해보면 쉬운 말이다. 똑같은 일상을 보내다가도 어느 날, 힘에 부치거나 정신적 부담이 시작된다는 건, 내부에 변화가 생겼다는 말과 같다는 말이다. 일상은 똑같은데 내 마음의 변화로 에너지의 손실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여 내 마음의 변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거웨인의 말을 듣고 알겠더라. 책보다 더 갖고 싶은 게 있다는 걸.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가장 갖고 싶은 건 '시간'이었다. 나를 위한 시간, 생각할 시간, 공상할 시간, 시간, 시간, 시간이 가장 갖고 싶었다. 나에게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가장 갖고 싶은 '시간'을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를 열렬하게 고민했다. 돈으로 시간을 살 방법까지 궁리했다. 그리고 돈으로 시간을 샀다.     



어디서 읽었는데, (읽기만 하고 출처가 기억이 안 난다;;) 시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했다. 시간이 남을까 두려워하는 사람과 남는 시간이 없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내가 바로 남는 시간이 없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남는 시간이 없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내부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에 매몰된다. 사람을 만나도 즐겁지가 않고, 새로운 경험을 해도 스스로의 생각에 매몰된 채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받아들이기 버겁다. 남는 시간을 확보한 뒤에 내부에서 넘쳐나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생각의 정리를 끝내고 나서야 다른 이들과 어울려도 어울릴 수가 있고, 새로운 경험을 시작해도 시작할 수가 있단다. 하아. 이래서 일과 중에 붕 뜨는 시간이 좀 많은가 보다.     



왜 시간이 없다고 느낄까. 일단은 책을 읽고 싶으니까. 그리고 싶으니까. 쓰고 싶으니까. 생각을 하고 싶으니까. 삶을 정리하고 싶으니까.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은 할 수가 없다고 느끼니까. 아기가 놀고 있는 옆에서 홈트도 하는 엄마도 많던데 난 당최 아기 옆에서 뭘 하는 엄마가 되기 힘들더라. 오롯이 혼자가 되었을 때에야 내 시간이 생겼다고 느낀다. 시간을 맘껏 쓸 수 있다는 기쁨이 가장 누리고 싶은 일이더라.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옷장 정리조차 못하는 난 좀 이상한 사람인가. 돌아보니 그렇게 살고 있더라. 시간을 뺏긴다고 느끼는 순간 화가 나고, 내 시간을 존중 받는다 느끼는 순간 기분이 좋다.     



동생이 돈을 보내온 뒤로, 종종 목걸이를 검색한다. 자주 보면 생각이 달라질까 싶어 관심을 좀 가져보려고 애쓴다. 지인을 만날 때 어떤 목걸이를 꼈는지 보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름다운 목선을 타고 흐르는 목걸이를 살핀다.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 어울릴만한 목걸이는 모두 아니지 싶다. 와중에 내 목을 너무 하대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부턴 목엔 바르지도 않던 선크림도 바르게 됐으니까. 보이지 않던 목에 신경을 쓰게 됐으니까. 관심을 갖고 보다보니 갖고 싶은 목걸이도 좀 생기는 중이다.     



동생이 목걸이 하라고 준 돈을 받아둔 지 벌써 9개월이 지났다. 9개월이 지난 지금은 금값이 올랐네? 금테크에도 영 재주가 없다... 그리고 여전히 내 목엔 목걸이가 없다.     



인플레이션 급상승이 맥주 값으로 확 느껴지는 요즘, 통장에 묻어둔 동생의 돈은 가치 하락의 뭇매를 맞고 결국 목에 목걸이를 걸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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