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창부수夫唱婦隨면 부창부수婦唱夫隨이고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살았다. 아니, 산다. 여전히 듣고 산다는 말이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인물이 진짜 좋은가를 가늠한다. 남들이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고 살아온 세월은 알게 모르게 내 삶에 영향을 주었으니, 남들이 뭐라든 주체적 삶을 살면 된다는 걸 진즉에 알았어야 했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내 눈엔 그냥 그러한데, 그렇다길래 그런가 보다며 산다. 시골 인물 중엔 봐줄 만한가 보다며 산다. 한 달이면 두어 번쯤 지나가다 오다가다 이런 소릴 듣는 걸 보면 헛소리는 아닌가 보다며 그냥 산다.
내 인물 이야기가 아니다... 응? 남편 인물이 그렇단 이야기다.
남편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면, 잡스런 생각들에 휩쓸려 산다. 이를테면, 와이프가 엄청 쫓아다녔나 보다..라는 1차원적인 연상 작용 같은 것. 연애 때는 30킬로그램 이상 차이 나던 몸무게가 이제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을 확인하듯 애틋하게 맞닿아가는 중이다. 서로의 사랑을 이토록 확인하는 접점에 이르고 보니, 안 그래도 쫓아다녔을 것 같은 비교 하위의 심정이 주가 하락세가 폭락세로 갑변하듯 매몰차다. 아주 그냥 싹수가 파랗다. 상대적 하락장이랄까.
남편이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면, 상대적으로 외모 자신감이 바닥을 친다. 남편과는 연애 기간을 포함 인생의 절반을 함께 살고 있다. 연애 기간을 빼더라도 초등 6년, 중등 3년까지 함께한 우리는 찐친이다. 펼쳐보고 싶지 않은 굴욕의 얼굴들까지 모두 알고 있는 남편이니 외모가 어떻든 일말의 관심 없이 그냥 산다. 가끔 만나는 초등 친구들은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오오? 라며 놀란다. 이 또한 자주 겪는 반응이라 괘념치 않는다.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일 년에 열두 번쯤 들으며 인생의 반을 함께 살면, 외모 자신감은 꾸준히 하락한다. 내 은둔의 삶의 근원은 남편 인물값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이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아이들 인물이 엄마를 닮았다는 소리에 버럭 한다. 애들이 아빠 닮은 줄 알고 일말의 기대감으로 살았는데, 엄마 얼굴을 보며 애들이 엄마 닮았네요?! 그러면…… 그런가? 응? 의심하며 불길하다.
남편이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혹여 내 인물도 버금가지 않을까 착각하는 일도 생긴다. 가끔 근사하게 차려입은 남편이 썩 괜찮아 보일 때, 중년의 나이에도 이럴 수가 있구나 감탄하며 감성이 장난을 친다. 이성적 외모 비교가 아닌 감성적 외모 감상이 되어버리는 순간, 어쩌면 나도 내 남편과 버금가는 외적 자산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든다. 오글을 넘어 오싹하다 나무라진 마시길. 다들 이런 마음으로 결혼까지 가신 게 아니셨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가끔은 영화 속 주인공 깨나 됐다는 생각이 있었으니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알콩달콩 살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현실감이 넘치면 하지 못하는 게 결혼이니,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 못하는 이유 중 n분의 1은 감성 부족이지 싶다. 결혼을 하려거든 감성지수를 올리면 가능성이 확 올라갈 것이라고 일러주고 싶다.
남편이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진작에 수술이라도 했다면 달라졌을까 공상하는 사람이 된다. 무서워서 하지도 못할 성형 따위를 상상한다. 콧날을 오똑하게 사각턱을 날렵하게 눈덮개살 지방이라도 살짝 빼보는 상상을 한다. 모두들 외모지상주의를 말할 때, 혼자 고고한 척 내적 아름다움을 칭송했던 최후가 지금의 나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된다. 진즉에 성형이라도 해뒀다면 어찌 됐을까. 상상하며 그림으로 승화시킨다. 여전히 내적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살지만, 외적 아름다움이 내적 아름다움의 반영이란 생각이 드는 이유를 당최 설명할 수가 없다.
남편이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남편 인물이 안 좋으면 내가 빛이 났으려나 공상한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외적 미의 기준은 상대적일 수 없다는 걸. 하향 평준화의 길일뿐이란 걸. 우리 아이들이 이 정도 미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남편 인물됨 덕분이란 걸 알게 되니 말이다.
남편이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면, 산으로 가는 공상에 망상을 더하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살게 된다.
잠깐 일손을 도우러 나갔던 귤밭에서 남편을 먼저 본 이웃 밭주인이 나를 보며 누구…?! 라 묻길래 와이프 됩니다..라는 답을 들으며 놀란 눈을 하고 돌아갔다. 입술 꽉 깨물게 떠오르는 뒷모습이 잊히지가 않아 쓰기 시작했다. 모든 걸 쏟아놓고 이제 그만 생각하려고. ㅎㅎㅎ
이 글을 어쩌려고 이렇게나 떠벌렸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아마 오늘이 제삿날이라 그랬나 보다. 제사상 부지런히 차려놓고 가만 생각해보며 내리는 결론은, 이러나저러나 각기 상황이 다르고 처해진 모양 따라 사는 게 인생 아니겠나 싶다. 생김새가 다른 건 내 탓이 아니니, 주어진 몸뚱아리 보듬으며 잘 살아보자는 게 인생 아니겠나 싶다.
인물 좋다는 말에 상대적 박탈감을 먼저 가질 것이 아니라, 부창부수夫唱婦隨면 부창부수婦唱夫隨겠거니 묻어가는 일도 때론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설사 인물이 안 좋다기로, 절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은 더더욱 아니며, 인물만이겠는가, 사람의 능력, 재력 같은 외적인 차이에 일비할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더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일이 좋더라는 경험의 이야기다.
제일 중요한 건 부부 사이에서까지 비교하는 우리네 삶은 피곤하니 이제 그만 접자는 이야기다. 나만 접으면 된다는 사실이 조금 섭섭할 뿐이지만. 사실, 이 글은 인물 좋은 남편과 산다는 내 자랑의 글이다. 응..
ps. 아시다시피 인물 좋다는 이야기를 연예인 수준급으로 읽으시면 아니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