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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Dec 28. 2021

다시 쓰면 보이는 것들

나를 발견하는 일


하루가 시작됐다. 별일 없이 지날 오늘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까. 밥을 하고 아이들을 깨우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고 다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의 아우성을 듣고 난장판을 치우다가 어디라도 나갔다가 돌아와 밥을 하고 어영부영 샤워를 하고 노닥거리다 잠이 드는 하루. 그리고  카포. 처음부터 다시.     



'다른 곳에서 보내는 이틀은 익숙한 환경에서 보내는 30일만큼의 가치가 있다'라는 이오네스코의 여행 공식에 따르면 나는 익숙한 환경에서 보내는 30일을 60일이라도 되는 듯 살고 있다. 여행이 없어서 그런가. 다른 듯 비슷한 일상이 반복된다. 마음이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새롭게 볼 수 있는 거였지? 알고 있었는데 잊어버렸다.     



일상을 여행하듯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렇게 살면 여행하듯 살 수 있겠구나 했다.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신이 났던 기억이 분명 있었다. <일상이 여행 같다면>이라던가,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던가, 여행하듯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딘가엔 있을 터였다. 인터넷을 뒤졌다. 어딘가 떠나지 않아도 지금 이곳에서 여행처럼 사는 법을 누군가는 이야기해뒀을 것만 같았다.     



도서관엘 갔다가 찾아낸 책이 장 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었다. 루소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쓰다 미완으로 남겼다는 이 책은 산책을 하며 생각했던 단상들을 기록한 글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사색, 그리고 억울했던 기억과 스스로를 위한 위로의 마음, 사랑에 대한 추억까지, 열 번의 산책을 따라 내면을 기록한 에세이다. 200년도 더 전에 쓰인 일기 같은 글이 지금을 사는 나에게 영감을 준 건, 반복되는 산책이라는 행위에도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날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모두 다르다는 것. 일상을 여행하듯 사는 자의 기록은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단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팁을 얻었다. 이불을 널어 말리던 어느 엄마의 삶을 엿봤던 그 날처럼.   


  

아이가 아파 조퇴하는 길이었다. 정오가 되지 않은 평일의 오전 시간은 휴일의 그것보다 훨씬 한가로웠다. 이대로 돌아가 잠이라도 실컷 자고 싶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가던 그 길에서 탁탁 이불 터는 소리를 들었다. 아파트들이 주욱 늘어선 동네에 조용할 틈 없는 새소리를 빗겨내며 베란다에 널어놓은 이불을 터는 소리가 어쩜 그리도 한가롭던지, 넋을 놓고 바라봤다. 아픈 아이를 가슴에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 가슴 졸일 생각을 하니 더욱 저 삶을 내가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좋을까 바라보고 또 보았다. 그 시간은 짧았지만, 머릿속에 남긴 인상은 다른 것들에 비해 강했던가보다. 나도 모르게 꿈 꾼 삶이 이불 터는 엄마의 삶이었다는 걸 10년도 더 지나서야 깨달았으니까.



글로 쓰면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산다. 어제의 나를 돌아보며 오늘을 기록하는 일은 내일을 살아갈 나를 더 튼튼하게 해준다. 그때 내가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록해두는 일로부터 남이 좋다 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시작이 된다. 무얼 해야 할지 길을 잃은 기분에 휩싸이는 이유는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살길 원하고 어떤 삶을 통과하는지 기록하는 일이 끊겼다는 거다. 끊어진 지점을 다시 찾아 쓰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쓰면 내가 보인다. 자기 발견을 위한 글쓰기가 된다. 남을 보며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나를 성찰하며 주체적 삶을 살게 된다.      



아이들과의 짧은 산책 후 집으로 돌아와 오늘을 다시 쓰는 지금, 몇 시간 전보다 더 여행 같은 이유는 지금 나의 생각이 어제와 다르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상이 여행 같을 수 있으려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쓰면 된다. 그 속에 숨었던 생각들을 꺼내 널어놓으면 된다. 자꾸 쓰며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겠다. 일상 여행자에게 필요한 일은 소설가가 하는 그 일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번거롭게 다시 쓰고 번거롭게 생각하며 살고 싶다.     



다시 쓰는 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세계가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제일 바깥쪽을 추상적이고 큰 단어들, 예컨대 평화, 정치, 슬픔, 절망 따위의 단어들이 단단하게 감싸고 있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구체적이고 작은 단어들이 숨어 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쓸 때, 우리는 대개 제일 바깥에 있는 단어들로 글을 쓴다. '5월을 보내는 마음이 슬프다'느니, '그녀는 질투심이 많다'느니. 자기가 쓴 초고를 보면 누구나 약간의 구토증세를 느끼는데,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이 우주가, 아니,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세계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좀 쓸 만한 단어는 그런 너저분한 단어들을 뚫고 가야 나온다.
<소설가의 일> 김연수



일상을 쓰면 쓸수록 지나온 시간은 살아 돌아온다.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빛의 방향과 바람과 냄새까지 되살아나는 기분을 느낀다. 그 때로 돌아가 미처 쓰지 못한 것들을 다시 보고 돌아오는 기분은 진득하게 살아내는 기분이 든다.


쓰기는 나를 다시 보는 법을 알려줬다. 허구가 아니라, 지난 시간 속에 건드리지 않았던 장면 속 이야기들을 다시 플레이시키며 흘려버린 생각들을 이어서 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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