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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Dec 11. 2021

할머니와 옥돔

보이는 옥돔이 다 같은 옥돔은 아니라서


새벽 네 시, 눈이 떠졌다. 찬이의 몸부림을 온몸으로 맞고 눈이 떠진 날엔 다시 잠들기를 관둔다. 부스럭거리다 문득, 엊저녁에 할망상 다녀올 것이니 아침은 그걸로 갖다 먹으라는 어머님 말씀이 기억났다.



좀 전까지 이슬비가 내렸나 보다. 어수룩한 새벽, 나가보니 공기는 의외로 차지 않고 비에 젖은 차 유리가 촉촉하다. 운동이 모자란 요즘, 도보 거리 40분인 시댁까지 걸을까 잠시 생각하다 말았다. 밤 12시보다 새벽 5시가 더 까만 시골은 새벽 운동이 무섭기 때문이다. 얼른 차 시동을 걸었다. 바깥 기온 13도. 히터는 말고 뜨끈하게 열선만 켜고 달렸다. 도로 바닥이 온통 비를 맞아 더 까만 새벽이다.



방금 집에 들어오셨다는 어머님은 현관 등을 모두 켠 채, 분주히 오가는 중이셨다. 벌써 왔느냐며 건네시는 차롱 안에는 직화구이 옥돔 두 마리와 갓 지은 밥 한 통, 사과 세 개가 들어 있다. 아.. 옥돔구이 냄새. 한쪽으로도 밥 한 공기 거뜬하게 말아먹을 위력을 가진 생선계의 명품.



언제 다녀오신 거냐고, 여태 묻지도 않고 잘만 받아먹던 내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느냐며 당신도 이젠 그만하려 하신다 했다. 아연이도 열 살이 됐고 두어 해만 더 하고 그만 할거라 하셨다. 아연이가 열 살이 되니 그만하신다는 말은 뭘까. 간밤에 울다 간 아연이 이야기를 조곤조곤해드리고는 잘 먹겠다 말씀드리고 돌아왔다.



7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2021년 12월을 사는 나와 아이들과 할머니의 이야기다. 그리고 곧 사라질 이야기다.



할망상은 아이들이 자꾸 건강하지 못해 산신에게 기원하는 무속신앙이라 했다. 아이들이 9살이 될 때까지도 무탈하게 크길 기원하고 그간의 보호에 감사함을 올리는 일이라 했다. 그간 여러 번 어머님께 묻곤 했는데, 알 필요없다시며 자꾸 답을 피하셨더랬다. 알면 다친다, 알면 효험 떨어질라 염려하는 느낌이랄까. 그때마다 검색창에 묻곤 했는데, 별 답이 없었다. 이제는 기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헛헛하게 말씀하시며, 하나의 역사 끝에 서 계신 어머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손자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매년 상하반기 기원하고 또 기원하셨구나. 요즘은 구하기도 힘든 당일바리 옥돔을 발 동동 구르며 뱃날에 맞춰 사 오셔서는, 길고양이 낚을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모기장에 둘러쳐 옥상 볕에 바짝 말렸다가, 기원하는 날 새벽 직화로 달달 구워 갓 지은 밥과 과일을 챙겨주셨던 거로구나. 할머니 마음에 아이들의 건강이 그랬구나.



할머니가 그랬다고 딸아이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잊어버리지 말라고 이 옥돔이 그런 옥돔이라고.



딸아이가 가끔, 할머니 옥돔이 먹고 싶다 이야기할 때가 있다. 뱃날을 알아둬야 하나, 자연산 옥돔구이 집을 알아둬야 하나, 마련하기 쉽지 않은 옥돔 탓에 허둥지둥 마음만 바쁘다. 후에라도 내가 그 옥돔을 차려줄 수 있을까. 네가 할머니 옥돔의 의미를 알 날이 올까. 옛 것이 구차해져버린 이 시대를 지나는 나도 겨우 알까 싶은 이 일을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그래도 너의 입이 벌써 기억하겠지. 할머니의 옥돔 맛과 할머니의 마음을. 무심히 끓인 어머님의 된장국이 내 입에 새겨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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