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교는 글쓰기

나의 기도는 '수영'

by 반짝이는먼지

무엇을 만들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 만들어야 한다- 팀 브라운, <메이커스 랩>






"숨이 너무 짧아서 힘들어요."

"숨은 누구나 힘들죠. 그냥 참고하는 거죠."


팔을 세 번 저을 때마다 숨을 쉰다. 웜업 300미터를 돌았더니 숨이 모자라 다리에서 찌릿 젖산을 몰빵으로 맞은 기분이다. 숨은 가쁘지 않은데 온몸에서 산소가 모자라다며 찌릿찌릿 통신을 보내는 중이다. 다리는 더 저을 수 없다며 뻗댄다. 숨이 짧아서 힘들다고 투정 부듯 툭 던졌더니 돌아온 말이 이랬다.


"그냥 참고하는 거죠."



그러고 보면 뭐든 해내는 순간은 그냥 참고하는 시간 사이에 있었다. 50미터 완주를 눈앞에 두고 35미터에서 벌떡, 40미터에서 벌떡 일어섰던 날들이 떠올랐다. 뚫린 콧구멍으로 물이 벌컥벌컥 들어와 뇌 속을 헤집어 놓을 것만 같은 공포감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때, 이대로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아 대체 어떻게 참고 더 가라는 건지 방법을 알 수가 없던 때가 떠올랐다. 내게 남은 숨이 더는 없는 것 같은데 머리가 띵 두통이 몰려와도 조금만 더 참아보겠노라 끄덕이다가 결국엔 내 안에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일. 그걸 꺼내오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다른 방법 좀 알려달라 엄한 데다 묻고 있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 나에게 자꾸 묻는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조금만 더 참고 나아가 보라 말을 건다. 조금만 더 참는 일 정도는 이제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꿈만 꾸라고, 자꾸 말한다. 도저히 안 될 것 같던 순간에도 더 해낼 수 있는 힘이 저 끝에 남아 있다고, 믿어 보라고 자꾸 말을 거는 중이다. 결국엔 한 발짝 더 내딛는 이가 얻게 되는 드라마는 현실에서도 무지 많다는 걸 이제 좀 알 때도 되지 않냐고 중얼거린다.






글을 하나로 묶는 일도 그렇다. 수영 일기를 쓰다 보면 글 하나하나를 모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지는데, 한 번 해볼까 싶어 글 네댓 개쯤을 모았을 즈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접영 35미터 구간과 똑같다. 더 이상은 갈 수 없을 것 같다. 동력을 잃어버린 기분에 그만 갈까, 누굴 위해 쓰는데? 이 글이 뭐 돼? 뭘 위해 더 가야 하는데? 애달파 죽겠다고 하소연이라도 하게? 자꾸만 나에게 시비를 건다.



그래 이제 그만 쓰자, 그만 일어서자, 가봤자 별 거 없잖아, 적당히 타협을 하려다가도 아니지, 여기까지 왔으면 끝장은 봐야지, 라며 남아 있는 숨까지 끌어다 쓸 줄 아는 인내라는 녀석을 꺼내오는 일을 수영이 알려준다. 왜 쓰고 있는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 위해서 계속 써야 한다고, 그만 하자 했던 어제를 잊고 다시 해보자고 마음 먹는 일을 매일의 수영이 해주고 있다.



클리셰. 새로움이 없어진 진부한 상투구. 매일 반복하는 일이 진부해지지 않으려면 '기대'라는 양념이 필요하다. '기대'는 새로움과 성장이라는 연료를 먹고 자란다. 아직도 배워야 할 기술들이 있고,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나게 해주는 수영은 아직도 '기대'라는 걸 내어 준다. 가끔은 매정하게 뚝 끊어버리는 참에 더 참고 헤엄칠 숨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레인 끝에 다다를 거라는 걸 복기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참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됐다.


접영 35미터? 한 번 참기가 어렵지, 두 번 참으면 세 번째는 쉬울 거야.


'기대'가 하는 일이 이렇다. 해도 좋고 말아도 좋을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일로 만든다. 해야 할 일은 이것밖에 없다는 듯. 접영 50미터를 가볍게 가는 수영인이 되겠다고. 해도 좋고 말아도 좋을 거라 생각했던 글 모으기를 꼭 해야만 하는 일로 만들고야 마는 '기대'라는 일은 잠시 스쳐가는 마법 같을지라도 "그냥 참고하는" 연료가 되기에 최대한 빌어 쓰기로 한다.



수영 일기를 쓰고 있는 순간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이렇게도 해볼걸. 저렇게도 해봤으면 좋았잖아. 눈으로 다시 헤엄친다. 그러면 내일 해볼거리들이 생기고, 조금 더 참아볼까, 레벨업이라도 하는 기분에 괜히 웃게 된다.


글의 힘으로 산다. 쓰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에 기대어 오늘 강습을 복기하며 쓰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로 다시 헤엄칠 수 있다.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을 구별하게 하고 잘 됐던 이유와 안 됐던 이유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다 보면 좋았던 마음은 더 좋아지고 싫었던 마음은 헤벌쭉 헤집어진다.






아무것도 흥미가 없고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이 게 최선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고 나의 최선이 조금도 보이는 거 같지 않아, 길을 잃었다기엔 갈 길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계단을 오르는 아이를 보다 괜히 짠해져서는 왜 짠한 건가 했다가 눈물이 또로록 났다가 딱히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거 같지도 않다가 이제부터라도 다시 해볼까 싶다가 에라 될 대로 되라지 그랬다가 뭐라도 되는가 싶다가,


하던 대로 수영장엘 갔다.




주차를 하고 터벅터벅, 화장실에 들렀다 터벅터벅, 락커키를 꽂고 터분 터분, 하던 대로가 있어서 하던 대로 하다 보니 어느새 샤워기 앞이다. 이대로 수영이 될까 싶다가 힘이 1도 없어서 너무 먹었나 했다가 힘 되는 걸 안 먹어서 그런가 했다가 뜨근한 물에 한바탕 몸을 기댔다가 다시 집 갈까 했다가 하나둘 들어오는 수친들과 지난 주말 이야길 하다 보니 어느새 수영복을 다 입었다.


하던 대로 수영장 입수.




언제 그랬는지 싶다. 좀 전의 내가 그랬던가 싶다. 나도 모르게 수영장이길래 수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보니 수영장을 나서는 내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서 뭐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뭘 먹어도 맛있을 거 같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뭘 해도 즐거울 거 같은 마음이 퐁퐁퐁 솟아올랐다.

아~ 수영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이렇게 써먹어야 하는구나, 했다.



수영장을 나설 때면 들어설 땐 없었던 에너지가 솟아난다. 바람을 가르며 되돌아오는 길에 무어라도 할 것 같다.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 되는 이 기분을 얻기 위해 온갖 귀찮음을 이겨냈구나 한다. 커피 한 잔을 내려 글을 써야지. 키보드를 두드릴 생각에 벌써 좋다. 거들떠보기도 싫던 아침의 설거지에 절로 손이 간다거나 확인하고 싶지 않은 빨랫감들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일로 바뀐다. 부담스럽던 일들이 쉽게 해낼 수 있는 일로 변신한다. 설거지까지 가볍게 끝내고 난 뒤엔 무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로 일기장을 펼친다.


수영이라면 잘 건널 수 있을 거 같다, 모든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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