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잠시 버려두기

수영은 우리를 잠시나마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by 반짝이는먼지

물속에 들어갈 때는, 책에 빠져들 때처럼, 삶을 땅에 버려두어도 된다. - 리디아 유크나비치, <물의 연대기>






창가에서 쏟아지는 빛이 수영장 수면에 닿아 잘랑거리다가 눈가를 어른거렸다. 왠지 그 빛이 나를 어루만지는 게 좋았다. 어서 오라고, 잘 왔다고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물 위에 누워 발부터 차 보면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데 발을 빠르게 놀리면 졸졸졸 소리가 조금 커진다. 졸졸졸 졸졸졸. 가만 누워 그 소리를 듣다 보면 수영장에 오기 전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은 컷아웃 되고 지금의 나만 두둥실 떠오른다.



아침은 뭘로 할까,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은 잘하려나, 새 교복이 불편하진 않을까, 바람이 많이 불던데 바람막이라도 입혀 보낼 걸 어쩐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목도리라도 챙겨줄걸, 점심은 입에 맞으려나, 병원엔 언제 다녀오지... 어머님 전화가 올지도 모르겠네.. 세차도 해야 하고, 엔진오일도 갈아야 하고, 병원도 다녀와야 하는데, 어느 시간에 다녀오지.. 눈을 뜨자마자 이어지는 염려 퍼레이드에 온갖 에너지를 쏟는 사이, 실행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고민들을 헤치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나의 미간과 뇌를 진정시키는 일.

그 일을 수영이 해주었다.






119.

엠뷸런스라는 걸 처음 타면 현실감이 없다.

들것에 들려 너른 차 뒷문으로 실려 가는 아이를 따라 허리를 굽신 숙이고 앰뷸러스에 올라타 앉아 있노라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하얀 형광등 불빛이 차 안으로 가득 퍼진 것이 흡사 천국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일으켜 세우는 시선을 따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봤던 앰뷸런스의 내부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칸칸이 나뉜 아크릴 서랍마다 갖가지 응급 도구들이 가득 채워진 채 벽면을 메운 차 안은 마치 80인치 FULL HD TV 속 4D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아이의 안위는 돌볼 겨를 없이 내 삶에 이런 일이 닥칠 거라곤 상상해 본 적 없는 내겐 엠뷸런스에 대한 대처 매뉴얼이 없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꿈이어야 한다고 믿을 뿐이었다.


"엄므아아아아 아.... 악.... 칵"

아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아이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진다. 얼굴 뒤에 숨은 파란 진공의 공간으로 아이의 얼굴이 빨려 들어간다. 엄마! 나 좀 도와줘요. 악. 엄마! 나를 꺼내줘요. 보이지 않는 손을 뻗으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점점 아이의 의식이 얼굴 뒤로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고 있었다.


하얗던 낯빛이 입술부터 파래진다. 덜덜덜덜 손에서 발에서 지진이 시작되고, 목이 턱이 누군가가 흔들어재끼는 목각 인형이 되어버렸다. 더 흔들어대다간 뚝 부러져버릴 것 같아 있는 힘껏 몸으로 눌러보지만 근원을 알 수 없는 진원의 힘은 내 몸을 타고 함께 흔들릴 뿐이었다. 아이의 혓바닥이 나오고 침이 흐르고 딱딱딱 턱이 접히고 나의 침이 흐르고 줄줄줄 눈물이 흐르고 제발 그만, 제발 그만. 아이의 얼굴을 돌려 나의 손으로 팔꿈치로 입을 닫아 누른다. 아이의 턱이 나의 손이 나의 마음처럼 뚝 부러져버릴 것만 같아 겁이 나 죽겠다. 있는 힘껏 세차게 누르다 파랗게 사라져 버린 아이의 얼굴 위로 제발.. 제발.


발작이 시작된 지 20여분이 지났다. 그제야 들것이 들어왔다. 엠뷸런스를 타기까지 다시 10분. 아이의 발작은 멈추지 않았다. "제발 빨리 주사라도 넣어주세요. 제발"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아이의 얼굴을 보며 당장 뭐라도 해주길 애원해 보지만, 응급 대원들에겐 그럴 권한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시간 다시 15분, 도착한 응급실에서 진정제를 투여하기까지도 아이의 발작은 계속 됐다. "괜찮아. 응..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던 나의 아이는 처음으로 엠뷸런스에 실렸다. '삐요 삐요'로 알고 있던 엠뷸런스 소리가 '위독 위독'으로 들리고, 학교 너머 엠뷸런스 소리가 가까이 들릴 때면 가슴이 철렁하다가 목이 칵하고 막혔다. 아이의 발작을 두 눈으로 지켜본 뒤로 아이의 뒤척이는 소리에도 벌떡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자동반사가 만들어놓은 일상의 루틴들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아이의 불행을 내가 먼저 막고 싶은 나만의 의식이었다.


삶이 지루하기 짝이 없을까 봐 그랬는지,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처럼 타고 또 타보라는 뜻이었는지, 잊을 만하면 나를 엠뷸런스에 태웠다. 어떤 날엔 응급환자 이송차량이라는 것도 타기 시작했는데, 엠뷸런스에 대한 또 다른 사실도 알게 됐다. '삐요 삐요'로 알고 있던 소리 말고 하나가 더 있었다. "이이이이이옹~ 이이이이이이옹~" 하는 소리인데, 이것은 '비켜어어 줘요~! 지나갑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게 아이의 아픔이 나를 가두기 시작했다. 사고는 늘 초저녁과 밤 사이에 일어났다. 초저녁 시간만 되면 긴장했다. 늘 연락이 되는 곳에 있어야 했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비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과잉보호적 망상증이 한 번 생기고 나니 사라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간헐적 긴급출동은 대비태세를 완강하게 갖추는 동기로 작용했다. 초저녁과 싸우듯 했다. 1년이 지나면 다시 1년, 총알을 장전한 보초 병사처럼 지냈다. 비상 연락에 빈틈없는 일상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초저녁 시간 이후의 외출은 삼가게 되었다. 지인들과의 약속은 물론 간단한 장보기도 다음 날로 미뤘다. 나의 밤은 그렇게 문을 닫았다.







십수 년을 보초병사처럼 지내던 내가 수영장엘 간다는 건, 무기를 내팽개친 탈영병이라도 된 기분일지 몰랐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눈물이 날 거 같고, 무서웠다. 돌이켜보니 이런 중증도 없었다. 아이보다 내가 더 큰 병을 앓았다.


새벽 6시에서 7시, 아이가 잠든 시각, 일어난들 아빠는 있을 시각, 아무도 나를 찾을 일이 없고 아침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 새벽 시간이라면 가능할지 몰랐다. 단 한 시간을 빌려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수영이 시작됐다.


아무도 찾을 일 없는 시간임에도 어찌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강습이 끝나고 씻고 나오는 시간이 단 1분 컷인 적도 있었다. 나를 찾는 일이 생기고야 말 거라는 불안감이 석 달이 지나갈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안에 나는 있지만, 저 바깥 너머에선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일어나지도 않을 사건 사고에 대비하는 마음이 쉬 떠나질 않았다. 수영 하나 시작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웠다. 그리고 100일의 기적이 일어났다. 딱 두 달만 해보려던 수영이 100일을 넘더니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게 됐다.



수영을 할 때 나는 여러 가지 소리가 있다. 첫 번째는 발차는 소리, 사람마다 발목의 유연성과 힘이 달라서 여러 가지 소리를 내는데, 잘 차는 발차기 소리는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소리가 난다. 슉슉슉슉 또는 즈박즈박즈박 소리가 나면 스냅이 제대로 들어간 발차기라 본다. 발차기 실력이 늘수록 소리를 구분해 내는 능력까지 얻을 수 있다. 잘못된 발차기의 대표적인 소리는 텅텅텅이다. 두 번째는 누워서 배영킥을 찰 때 나는 시냇물 소리다. 물 위에 가만히 누워 발을 살랑살랑 차다 보면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 발을 빠르게 놀리면 졸졸졸 소리가 커지는데 시냇가 돌을 타고 흐르는 딱 시냇물 소리 같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졸졸졸 소리가 잘 안 들린다면 오리발을 신고 차볼 것. 아주 새가 지저귈 것만 같은 시냇물이 흐른다. 셋째는 선수들이 자유형을 할 때 나는 소리인데 찹찹찹 소리가 난다. 팔을 돌릴 때 엔트리하는 순간에 수면과 맞닿아 나는 찰진 소리다. 소리에서 스냅이 느껴진다. 넷째는 다이빙하는 소리고 다섯째는 각양각색의 자세로 수영하는 소리다. 저마다 다양한 신체조건으로 수영을 하다 보면 물에서 낼 수 있는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소리가 은근히 명상 같다.



해양생물학자 월러스 니콜스는 물가 근처나 물속에서 사람은 ‘차분하고 명상적인 정신 상태’로 전환된다고 했다. ‘블루 마인드(Blue Mind)’ 이론으로 명상처럼 마음이 이완되고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나로 충분한 시간. 수영장 천장을 바라보고 두둥실 떠 있었다. 찰싹 뽀그르르 귓가로 들리는 물소리가 고요한 듯 다정하게 들렸다. 두 다리를 곧게 펴고 살랑살랑 흔들어대니 가라앉으려던 내 몸이 두둥실 떠올라 몰랑몰랑 물침대에 누운 것만 같다. 아무도 간섭하는 이가 없고, 온전히 나만 나를 찾고 있다. 까마득 잊고 있던 나를 낯설게 만나는 일. 낯선 여행지에서 어색한 나를 만난 듯 물 위에 떠 있는 내가 반갑다. 낯선 감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내가 두고 온 핸드폰 생각이 나지 않고, 누군가 나를 찾을 일은 더 이상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영화 한 편을 봤을 뿐인데,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좋아한다. 지인의 집에서 차 한잔 마셨을 뿐인데 나오던 길에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생기고야 마는 일. 근사한 빵칼 하나 샀을 뿐인데 빵이 썰고 싶어서 빵을 만들고 싶어지는 일 같은, 나 홀로 걷던 산책길에 작은 소품샵에서 작은 엽서 한 장을 보고는 뭐라도 하고 싶어져 버리는 마음의 순간을 좋아한다. 거실창에서 가만 내려다본 카페 안에서 만들고 진열하고 계산하고 정리하는 사장님의 동선을 바라보고만 있는데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마음의 동요가 찌릿하게 좋다. 음악 하나 켰을 뿐인데 빵이 굽고 싶어질 때처럼 내 마음에 불을 자꾸 지펴주는 모든 순간이 매일 오는 밥때처럼 차려졌으면 좋겠다.


음악을 듣기도 전에 플리 대문 사진 하나로 모든 상상이 가능해져 버리는 일을 수영도 해주더라. 수영이 그 목록에 들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수영이 그걸 한다. 오늘도 해냈구나,라는 성취감이면 족했는데, 언젠가부터 수영장을 나설 때면 들어갈 때와는 다른 내가 되어서 뭐라도 할 것 같은 마음이 진동처럼 솟아나 소나무와 야자수와 하늘의 구름과 볕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쌓아두고 나온 설거지를 가볍게 마칠 수 있고, 뭐라도 해보자고 자꾸 뒤적거리는 나를 만나는 일. 그걸 수영이 해주고 있다. 그래서 끊을 수가 없다. 빵처럼.


수영은 우리를 잠시나마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수영을 하는 동안의 나는 그동안 알고 지내던 나와 다른 이인 것 같다. 문을 열면 다른 차원의 세계로 잠시 나갔다가 전혀 다른 세계의 경험을 하고 돌아오는 스즈메처럼. 그렇게 나의 수영은 여행처럼 시작됐다.


수영을 갔다 오는 일이 아직도 여행 같아서 진짜 뭍여행은 예전처럼 갈 생각이 없다. 부작용이 조금 있긴 하다.






"수영 안 가?"

"어 이제 가려고."

모처럼 휴일이라 늑장을 부렸더니 남편이 내 수영을 먼저 챙긴다. 수영장이 쉬는 날이면 잔뜩 날이 서는 나를 겪은 남편이 나의 수영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좀 걷다 올게."

"오전에 수영 안 갔어?"

"오늘 운동량이 모자라더라고."

"어, 그래. 다녀와."

하루 두 타임을 운동에 쓰겠다는 아내의 말에 남편이 수긍을 더한 응원의 표정을 보낸다.



날이 잔뜩 섰던 나를 수영이 바꿔놨다. 수영장에 다녀오기만 했는데도 편안해지는 내가 달라진 탓인지 아이의 아픔도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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