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매물 영접하기

우주 매물이 되는 과정을 관찰하기

by 반짝이는먼지

"취줍으로 얻은 수영복은 나의 피부가 될 것이다. 그런데.. 또 신상이 나온다지." - 반짝이는 먼지






"온라인은 넘 빡세요, 아침에 매장 다녀오길 잘했네요."

"꺄 성공 신나요! 드디어 품습니다"

"장바구니에 흔적만 남아..ㅜㅜ"

"결제창도 못 갔네요."

"정말 오픈하자마자 장바구니 넣었는데 품절 맞나요? 안 풀린 거 아닌가요?"

"광탈이네요. ㄷㄷㄷㄷㄷ"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26초 결제 완료입니다. 팝업 대기하다가 코앞에서 품절이라 진짜 화났는데 보상받는 기분이네요."

"아니, 정말 뭐죠? 결제했는데 품절 나참..."

"너무하네. 진짜 10초 컷인가요... 결제됐다가 취소 ㅠ.ㅠ 희망고문합니까"

"카드 인증까지 하고 승인 문자도 왔는데! 바로 승인 취소됐어요. ㅠㅠ"

"와 지난번 광탈이었는데 짱 쉽게 성공했어요. 와 손 떨리네요."

"결제 중 취소. 와 너무하네요."

"몇 초 성공하셨나요. 저 21초."

“결제 다 돼서 좋아했더니 바로 취소네요. 줬다 뺐는 기분. 더 나빠. ㅜㅜ“

"와 몇 개 들어온 거죠? 바로 품절이네요. 사신 분 계시나요?"

"저는 37초에서 결제 취소 당했고 댓 보니 33초까지는 성공했더라고요. 느린 손가락과 제 반응속도가 4초 차이로 ㅠㅠ 뭐 암튼 열받아서 그냥 취소했어요. 다른 것들도. 안 산다. 아니 못 산다. 안녕..."

"장바구니에 흔적만 남기고 화만 남았다. 쓰지도 못할 생쿠는 왜 주나."

"오늘도 지갑 잘 지켰다.. ㅠ 드디어 나도 산다 산다! 했지만, 결제되고 취소 엔딩. 아.. 느린 내 손가락.. 결국 하나도 못 사서 지갑은 굳게 잘 지킴.ㅜ"

"스치듯 안녕..."


우주 매물이 되는 통과 의례 중 첫 관문은 '10초 컷 품절 대란'일 테다. 대란의 복판에 서보고 싶었다.



오후 3시 오픈 예정이라는 태그를 달고 나타난 이번 신상은 오픈 일 이틀 전에 나타났다. 카페에는 술렁이는 말들로 파도를 탔고, 지난번에 상한 마음 이번에는 위로받겠노라는 염원의 기도들이 가득했다. 한 줄 한 줄 읽고 있으려니 나도 동참을 하면 어떨까, 아니해야 할 것 같은데? 동하던 참이었다.


34분 전 3시. 수영 강습 추첨 결과라도 기다리는 기분이다. 이럴 때일수록 하던 일에 몰입해야 한다며 마음을 고쳐먹지만, 책 한 장 넘길 때마다 핸드폰 액정을 터치하는 내 손을 막을 수가 없다. 오픈 시각이 다가올수록 이렇게나 쫄깃한 순간이 따로 있었나 싶다. 수모 하나 사는 데 마음을 이렇게나 써야 한다고? 웃음이 날 뿐이다.



쫄깃한 마음. 한없이 느슨하다거나 긴장으로 촉박하다거나 하는 극강의 마음이 아니라 강하게 쿵 내리 찧나 싶다가 약한 듯 적당한 리듬을 타면서 왕복하는 그네 끝 최고점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퉁'하고 튕기며 극강의 당김음을 타는 것 같다.



강습 추첨 결과를 기다릴 때면 늘 그랬다. 온라인 추첨 시스템이 없을 시절(불과 4~5년 전이었다)에는 새벽 6시 선착순 등록을 하려고 새벽 1시에 어수룩한 거스름을 헤치고 5시간이나 줄을 서서 등록을 했다. 그때는 수영이 아닌 요가 강습 신청이긴 했지만, 옆줄이 수영 대기줄이었다. 줄 끝에 서서 앞에서 몇 번째인지 셀수록 다가오는 그 쫄깃한 기분은 겪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성공하면 당첨에 대한 만족감을 배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당첨 확률이 희박할수록 만족감은 올라간다.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기분이다. 남들은 성공하지 못한 무언가를 얻은 기분. 5초가 되기도 전에 사라지는 구매하기 버튼을 보고 나면 더욱 갖고 싶어지는 심리. 우주 매물로 향하는 신상 수영복에 대한 갈증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보통의 일상에선 느낄 수 없는 쫄깃한 기분을 누리고 싶어서 부러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오픈 시각이 다가왔다. 오픈 10분 전부터 사용하지도 않을 컴퓨터에 앉아 대기한다. 이것저것 구매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페이 잔액을 충전해 두고 상황을 주시하다 보면 어느새 10초 전. 마음속으로 10초를 세며 새로고침을 한다. 3, 2, 1! 품절이었던 버튼이 구매하기 버튼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하는 사이 3초가 흐르고, 손이 떨려서 5초, 사이즈 옵션을 선택하고 바로 구매하기를 누르자 11초를 넘겼다. 이미 저장해 둔 개인 정보를 눈으로 훑는 사이 15초가 흘렀고, 페이 선택을 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는 동안 19초까지 지났다. 페이 사이트로 넘어갔다고 돌아오는 시간 24초. 동의 버튼을 누르고 결제가 완료되기까지 31초. 다시 상품 페이지로 돌아가 꿈인 듯 만났던 '구매하기' 버튼이 '품절'로 바뀐 것을 확인하자 만족감이 급상승한다.



31초 컷으로 구매에 성공한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랬다. 아무나 성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내가 해냈다는 우월감. 남들이 갖고 싶어 하는 무언가를 손에 얻었다는 만족감. 이 매물로 다른 매물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경제적 획득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신상을 사기 위한 하루였네요. 잠실에 오픈런은 못 갔지만 여유분 있는 거 확인하고 도전해 봤는데, 결국 매장 찾다가 시간 허비하고 구매 실패했어요. 온라인은 대기하다 3시에 딱 도전했는데 결국 또 구매 실패했고요. 오늘 구입하신 분 정말 부럽습니다."라는 글까지 보고 있으려니 괜히 내가 금이라도 캔 것 같다. 이 게 뭐라고.






온라인 피케팅의 성공 여부는 시뮬레이션에 있다. 모든 상황을 대비한 리허설이 필요하다. 접속 디바이스는 무엇으로 할지, 결제 시스템은 어떤 것으로 할지, 주소 및 전화번호 입력은 개인 정보에 미리 담아두며, 추가로 선택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미리 체크해 둔다.


오픈 런이라면 고개부터 젓고 보는 편이어서 줄을 서야 한다면 바로 옆 한가한 식당을 찾는 편이지만, 온라인 런이라면 가끔 재미 삼아 시도해 보는 편이다. 쫄깃한 듯 적당한 긴장감 후에 밀려드는 희한한 만족감에 더해 은근한 행복감까지 안겨주기 때문이다. 브랜드 신상 오픈 런이든, 체험단이든, 수케팅이든, 피케팅이든 요즘은 점점 더 사람들의 쫄깃 만족하고픈 심정을 이용한 마케팅이 점점 더 늘어가는 추세다. 다~ 누려주겠다아아~~라고 생각하면서 또 수영복만 파고 있다.


온라인 피케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결제 시스템이다. 몇 번의 단계를 거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디바이스의 환경이 다르고, 쇼핑몰에서 제공하는 결제 환경에 따라 결제 시간이 천차만별 달라지기 때문이다. 카드 결제를 할 것이지, 페이 결제를 할 것인지에 따라 결제에 소요되는 시간 또한 최대 5초 이상 차이가 난다.



피케팅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페이 결제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가장 빠른 건 따로 있다. 몰에서 제공하는 포인트 결제다. 상품 금액이 포인트로 전액 결제할 수 있는 금액이라면 포인트 결제가 가장 빠를 테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보통 페이 결제를 택한다. 카드 결제는 카드 앱을 한 번 타고 와야 하는데 뱅글뱅글 두 바퀴 정도는 돌아야 한다. 보안 시스템을 거쳐야 해서 시간 소요가 꽤 길기 때문이다. 반면, 페이 결제는 접속해야 하는 앱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하여 페이 결제를 결정했다면 총알 장전을 미리 해두길 추천한다. 시뮬레이션도 할 겸 상품 결제를 한 번 해본다. 보통 결제 한 상품에 대해서는 바로 취소가 가능하니 염려할 필요가 없다. (단, 일부몰은 취소 버튼이 따로 없어서 바로 취소가 안 되기도 하니 유념한다.) 일단 로그인을 하고 페이 결제가 얼마나 빠른지 경험을 해본다. 몇 번의 화면 전환이 일어나는지 기억해 두는 것도 좋다. 시간이 좀 남는다면 카드 결제 시스템까지 한 번 타보고 페이결제와 경쟁이 되지 않음을 비교한다. 여기까지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나면 페이 잔고까지 자동으로 장전이 되기 때문에 준비 상태 자동 셋업 완료다.


그다음은 디바이스. 일반적으로 PC가 폰보다 빠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폰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 피시방엘 가야 성공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요즘은 폰이 빠르다. 성능 좋은 피씨가 눈앞에 있더라도 일단 폰을 사용하는 걸 추천한다. 같은 시간이라도 폰 화면 전환이 빠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제주에 있다 보니 서울보다 랜선을 타고 오는 속도가 느리진 않을까 매번 의심을 하곤 하는데, 지금까지의 성공률로 보면 바보 같은 생각이 맞다.


이 외에 위시리스트에서 바로 결제 연결이 가능한지 알아두면 좋다. 동시 접속자 수가 많을 경우 상품 상세에서 구매하기로 가는 것보다 위시리스트에 담긴 상품을 선택 후 바로 결제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게 훨씬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제 시스템과 디바이스 정리까지 끝이 나면 사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손가락에 달렸다. 오픈 시각 바로 1분 전 복식 호흡을 한 번 하고 로그인 상태인지 마지막 체크를 한다. 당황해서 손가락이 떠는 상황이 벌어지면 안 되니까. 그리고는 60초 카운트를 마음속으로 하거나 타임워치를 켠다.


품절 버튼에 마우스 커서가 위치하게 둔 뒤 3, 2, 1초가 되는 순간 리프레시! 품절이었던 버튼이 구매하기로 변신한 걸 확인하고 바로 클릭! 페이 결제를 하고 주문 확인까지 하면 내가 할 일은 끝났다. 구매 완료 문자가 이어서 오고, 구매 취소 문자가 다시 오지 않았다면 일단 안심해도 좋다. 구매 완료 메일까지 받았다면 완전히 성공이고, 간혹 뒤늦게 결제 취소 문자가 올 때가 있으니 유의한다. 동시 주문일 경우, 0.00001초 차이까지 다투기 때문에 결제 취소 문자가 은근히 많이 발생하기도 한다. 주문정보를 확인하면 주문 일자가 초 단위까지 나오는데, 2025-06-23 15:00:31 주문하기까지 몇 초가 걸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


결제 취소 문자가 날아왔다고 단번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취줍(취소 분량을 줍는 행위)의 기회가 아직 있기 때문이다. 미련이 남는다면 조금 더 머물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간혹 주문 취소 분량이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취줍으로 얻은 상품은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데스티니~ 그러면 오랫동안 함께 하게 되는 마음까지 얻을 수 있다. 뭐든 정성을 쏟거나 집중하는 마음엔 소중한 무언가 돋아나기 마련이니까. 만약 취줍했다는 소문을 들을 수 없었다면 그 매물은 이미 우주로 날아갔다고 보면 된다.



김애란 작가도 그랬다. 예매 창이 열리자마자 티켓팅을 한 적도 몇 번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공연 마니아분들처럼은 못하고, 마음을 비우고 새로고침을 누르다가 취줍 좌석이 나면 가고 그런다고. 응. 그런다고 했다.



취줍으로 얻었던 2011년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는 내 평생 최고의 뮤지컬이 되었다. 무려 2열 정중앙.






고대하던 수모가 왔다. 내 눈에 예뻐 보이면 다수의 눈에도 예뻐 보이기 마련이고, 남들이 갖고 싶어 하는 걸 가진 내가 대단해진 것만 같은 착각은 사실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첫날, 강습에 호기롭게 착용. 모두들 나만 보는 것만 같은 얄팍함이 내 안에 가득했다. 강습이 잘 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뒤집어썼다. 다음 날도 착용. 자유형 200을 돌고 쉬려는데 이상하게 불편하다. 자꾸 벗겨지려고 한다. 수모를 부여잡다가 내 뒤에 바로 도착한 Y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 왜요?"

"응 수모가 자꾸 벗겨지네."

"그래서 전 저한테 맞는 수모 하나만 써요."

"그래, 그런 거 같더라. 그럼 수영복도?"

"네. 뭐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수영복도 이 거 하나만 입어요."

"아.."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불편해서 강습이 안 됐다. 그러다 알게 된 불편한 진실. 이 수모는 내 두상엔 맞지 않다는 결론. 결국 손이 잘 가는 수모로 돌아간 나는 매물을 원하는 이에게 되팔았다. 우주매물은 물에 들어갔다 왔을지언정 팔리고야 말더라. 심지어 잘 팔린다. 희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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