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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Oct 12. 2021

와인과 만남, 그리고 연애 활용편

당신의 연애를 업그레이드 해주는 와인 이란 마법

어쩌면 인생은  why 라는 의문으로 시작해서

why not 이란 반문으로 옮겨가는 듯 하다.

적어도 내 인생은 이제 " 왜?" 가 아닌 " 왜 안돼?" 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고 부터 많은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계속 꼬리를 이어가며 생겨나고 있다.


" 세상은 당신의 리액션으로부터 시작된다. "

어떤 환경을 접하더라도 당신의 리액션이 바뀌면 세상은 당신이 의도하는 대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이십대의 지난한 날들이 끝도 없는 어둠의 터널처럼 이어졌었다.

정말 인생에 기대할 것도 내 자신에게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삶의 한줄기 빛이 서서히 창문의 문틈으로 들어오듯 나의 의식의 창을 두드렸다.

나는 인연을 기다리지 않는다.

한국인의 최애 영화 " 비포선라이즈 " 처럼 뜻밖의 우연적 만남도 기대하지 않는다.

세상은 정확히 내가 움직인 것 만큼, 결과를보여준다.

 소개팅? 그런 것도 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일단,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생활 반경을 넓혀야 한다.

적극적으로 사교모임에도 나가고 명분있는 사회모임도 나간다.

하지만, 목적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사람들 때문에 만나고 모인다.

예전 네이버 까페가 유행했던 시절, 나는 와인 카페에 가입했다.

"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 비슷한 이름이었던 것 같다.

와인을 주제로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다 보니 꽤 흥미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파티나 소셜 모임이 전무한 2천년대 초반에는 그런 성격의 자리가 흥미로웠다.

정모를 하면 참석인원이 50명 쯤 모였던 것 같다.

와인 회비가 좀 되다 보니 어느 정도 경제력도 있고 마음의 여유도 있는 사람들이었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이 호스트가 되어 모임을 주도했다.

물론, 그 안에서 많은 사적인 갈래가 생겨나고 선남선녀 커플들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나 또한 연애에 꽤 적극적인 타입이라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고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의 남성에게는 먼저 연락을 하기도 했다.

첫번째 만남은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내 제안에 응했다고 다 넘어온 것으로 착각하면 절대 안된다.

그저 그는 한 번 만나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 첫번째 기회를 인상적으로 남겨야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아무런 준비도 무기도 없다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오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외모가 출중하다고 하여도
그것은 첫인상에 불과하다.

느낌을 이어갈 수 있는 나만의 매력을 어필하여야 한다.

나는 그러한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와인을 선택했다.

적당한 술은 긴장감을 풀게 하며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갖게 한다.

특히, 와인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붉은 색의 컬러와 와인 잔을 짠하며 부딪히는 울림 깊은 종소리, 혀로 맛보는 달콤 쌉싸름한 미각, 코로 섬세한 향기를 맡는 후각, 입술과 와인 글라스의 촉감까지 오감을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젊은 층의 남자들은 대부분 와인을 잘모른다.

사회적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나는 와인을 함께 마실 수 있는 경험, 그것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주최자가 된다.

여성이 주도적으로 장소 섭외와 와인 등을 자신있게 골랐을 때 남자들의 반응은?

십중팔구 남자들은 여자를 만나서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에 크게 관심도 없고 신경쓰기도 귀찮아 한다.

그런대 내가 알아서 좋은 장소를 데려가고 알아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면?

그들도 고마워한다. 결국, 남자는 여자가 좋아하는 것을 몰라서 고민인데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얼마나 편한가.

게다가 나는 와인을 직접 사가서 코키지를 이용한다. 레스토랑에서 와인까지 주문하면 금액이 상당하기 때문에 배려한다.

뭐먹고 싶냐느 질문에 여자들이  '아무거나'를 외칠 때 사실은 배려를 한다고 하는 것이지만, 남자들은 더 헤매게 된다.

정확한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여자에게 이끌리는 남자도 꽤 많다.

무조건 남자에게 맞추며 백치미를 보이는 것은 글쎄, 그닥 어필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와인은 꼭 근사한 레스토랑애서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와인을 꺼냈을 때 기대 이상의 효과를 주게 된다.


두번째 데이트에서는 야외를 선택한다.

근처 공원이나 한강변을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가볍게 손을 잡는 등 접촉이 가능하다.

처음의 만남이 다소 격식을 차리는 레스토랑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캐주얼하게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기도 하는 등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낀다.

여기까지는 중급 정도의 레벨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데이트 코스이다.

나는 여기서도 비장의 무기인 와인을 들이댄다.

쇼핑백에 예쁜 꽃무늬가 그려진 식탁보 (은박돗자리는 안된다)와 와인을 챙겨와서는 깜짝 서프라이즈 피크닉을 즐기는 것이다.

당신의 준비에 상대방은 화들짝 놀라게 된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준비했을 그 마음이 너무도 어여뻐서 그저 연신 웃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글을 읽는 당신이 남성이라면 제발 이정도는 그녀를 위해 센스있게 준비해주자)

일 년 전 이맘 때 나는 정확히 위와 같은 와인 피크닉을 양재천에서 즐겼다.
(그 날 쓴 일기를 살짝 공개합니다)


" 아무 날도 아닌 날은 잊혀지지 않는 날이 된다. "

 차츰 가을 색이 짙어지고 있다.  

봄날의 피어난 꽃봉오리도 아름답지만 나는 저물어가는 것들을 더욱 사랑한다.


노을에 감격하고 눈물 흘리는 것도 그러하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슬프다고 하지 않았는가.

노을 직전의 주황빛으로 타오르는 태양은 낙엽의 색을 닮았다. 붉어지기전에 노랗게 익어가는 법이다.

강남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공원은 양재천이다. 예전부터 나는 공원을 좋아하였다. 내 존재의 무게를 어쩌지 못할 때 산책을 나선다. 길을 떠난다. 그리고 나무를, 잎사귀들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나무는 홀로 서있어도 당당하다. 곧게 뻗은 척추는 하늘을 향해 서있고 뿌리는 땅을 향해 엎드린다. 여름날의 푸른 색이 빠진 잎새들은 노랗게 익어가고 붉게 울음을 토하고 마침내 바스라 진다.

오후 2시 그와 양재천에서 약속을 하였다.

총총걸음으로 바쁘게 걷는 나의 양손에는 짐이 한 가득이다.

내 나름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준비물이다.

타탄 체크의 붉은 패브릭과 레드 와인, 그리고 커플 와인잔이 들려져있다. 나는 인상적인 인생샷을 만들려는 중이다. 누구도 나를 위해 행복을 하늘에서 떨어뜨려 주지는 않는다.

내가 스스로 구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셀프서비스’ 그것이 나의 신조이다.

내가 감독이 되고 연출이 되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그것이 인생이다. 그런 인생은 무척 재미있다.
내가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위치정보를 주지 않았다.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너무 쉬우면 별로 재미없으니까.

“동선  따라 오다 보면 나를 찾게 될 거야~ ”

“무슨 동선? 어디서부터인데? ”

내 발걸음의 흐름대로 그가 따라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서로의 동선이 일치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리고 나를 찾으려고 애쓰는 그의 모습을 엿보고 싶었다. 내가 없을 때 나를 찾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전지적 시점으로 지켜보고 싶었다.


나는 적당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오 분 또다시 오 분이 지난다.
나의 성급함은 이내 참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 추적 단서를 보낸다.

부랴부랴 뛰어오는 그의 모습이 보이고 얼굴에는 반가움과 안도의 표정이 엇갈린다.


양재천 길에는 억새가 가득하다. 코스모스 꽃들도 심어졌다. 태양빛을 받은 풀과 잎들은 따스하게 빛났다.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조금은 아늑하고 조금은 비밀스런 공간을 찾으며 이동한다.

평일 한 낮의 시간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적당히 길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쇼핑백을 풀었다.

빨간 천 위에 와인이 세팅되고 커플잔이 놓여진다.

둘만의 공간에서 둘만의 와인을 따른다.

오늘을 위해 신중히 고른 와인은 미국의 burbon barrel aged wine 이다.
와인에 버번 위스키의 향이 묻어있다.

한 번 맛보면 그 독특한 맛에 매료된다.

와인의 풍부한 아로마에 위스키의 리치한 질감이 부가된다.

그는 감동의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아무 날도 아닌 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전개되는 놀라운 이벤트.

누군가 오롯이 자신을 위해서 생각하고 준비했다는 그런 마음이 고맙다고 느낀다.

평소는 건조하고 멋없는 나이지만 가끔은 이런 기특한 짓도 한다.

그냥 내가 좋아서, 상대방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리고 기억 속에 저장되고 싶어서.

해가 지면서 공기가 차가워지자 우리는 발걸음을 옮겨 이자까야로 향한다.

오랜만에 선술집 분위기의 이자까야는 따뜻하고 아늑하다. 마치 삿포로에 온 듯하다.

히레사케를 시키고 잔을 감싸쥐며 손을 데운다.

그는 일본 스타일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마시고 천천히 음미한다. 절대 많이 먹는 법이 없다. 그리고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천천히 듣고 천천히 생각한다.

나는 쉴새없이 끝도 모를 대화를 이어간다.

그는 나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그림 엽서에 적은 손글씨가 무척 정갈하다.

지중해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 위 양귀비 꽃밭,
파스텔톤 원피스에 머리에 쓴 페도라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한 손으로 잡고 서있는 여인.

생각의 속도는 우주의 빛보다 빠르지만 가끔은 천천히 거울을 보며 자신의 미를 감상해도 좋을 것 같다.’

이 문장 보다 가슴을 파고 드는 것은 마지막 문구이다.

50일째 바라다본 그녀에 대한 단상.

그는 날짜를 세어본 것이다. 그 순수한 고백이 설레여서 가슴이 쿵닥거린다.

백일도 아니고 오십 일을 세어보다니…

 50일은 길다고도 짧다고도 할 수 없는 기간이다.

나의 연애는 두 달을 넘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 달 사이에도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긴장으로 고조되다가 이내 추락하였다.

그것은 관계의 밀도와 강한 상관관계를 지닌다. 급하게 압축될 수록 이내 폭발하여 공중 속으로 사라진다.

기다려주고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부담을 주지 않았던 그의 태도가 적절했다.

한 밤 중 '보고싶다'는 말 대신 '책을 보고 싶다'고 말을 하였고
'같이 있고 싶다'는 말 대신 '같이 까페에 가고 싶다'고 말을 하였다.


그는 현명한 사람이다. 차분하지만 직관적이고 냉철하지만 인간적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생각보다 예리하고 관찰력이

뛰어나다. 자신의 그런 주도면밀함을 숨겼기에 내가

잘 느끼지 못하였던 것 같다.

나는 관계의 끈을 내가 쥐고 있었다고 생각하였으나 사실은 알게 모르게 그의 당김이 있었다.

잉크가 물에 젖 듯 서서히 물드는 색감처럼 그는 그렇게 나를 길들인 것 같다.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그는 push를 한 것이 아니라 pull을 한 것이다.

항상 그와 같이 길을 걸을 때도 나는 내 갈길 만 보지만 그는 전방 후방 측면을 다 예의 주시한다.

그리고 내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살짝 방향을 틀어 에스코트 해준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진심은 충분히 느껴지고 행동하지 않아도 그의 진정성은 알 수 있다.

‘50일째 바라다 본 그녀의 단상’

이 문장 하나에 모든 것이 느껴진다.
그는 나를 만나온 것이 아니라 관찰해 본 것이다.
그리고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고 고백한다.

나는 잊을 수 없는 오늘 밤을 '시'를 써서 그에게 건넨다.

 차츰 짙어지는 가을날

시민의 숲, 사색의 벤치에 앉는다.

차가운 공기는 밤을 가르고

시린 콧날이 서로 부딪힌다.

36.5°의 체온은 한쪽 옆구리를 데워주었고

13.5°의 와인은 혀를 타고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내 공기의 온도와 밀도가 달라졌다.

서로의 숨결을 타고 들숨과 날숨으로 같은 공기를 마신다.

아무 날도 아닌 날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그런 날이 된다.

 
모든 기억은 공간과 함께 저장되며, 기억을 꺼낼 때도 우리는 공간을 통해 회상한다.

그래서. 특정 장소에는 특정 기억이 쉽게 재현된다.

아마도 그는 언젠가 양재천의 이 길을 홀로 걸으며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아무날도 아닌 날은 서로의 기억 속에 특별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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