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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락 Oct 20. 2021

Dante Purgatorio

연재소설 구름다리 #마지막회

10


“이 항공기는 이제 곧 인천 국제공항에 내립니다. 안전한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승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안전벨트를 착용하시고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상은 인공의 불빛들로 빛나고 있었다. 소박한 불빛은 도시에 가까워진 듯 환하게 빛을 발했다. 점처럼 작은 집들이 실물의 크기에 가까워질 무렵 가벼운 흔들림과 함께 비행기는 활주로에 착륙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사람들은 안전벨트를 풀고 승무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짐을 내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핸드폰을 켜고 마중 나온 사람들과 통화하는 소리로 기내는 금세 북새통을 이뤘고 현재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사람들이 빠져 나가길 기다렸다. 


늦은 시각 공항에는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가 선반에서 배낭을 꺼내 어깨에 메고 터벅터벅 비행기 출입구로 향하자 승무원들이 고개숙여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답례를 하고 현재는 입국장 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은혜의 아버지가 입국장을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실 줄 알았다면 좀 일찍 나올 걸 그랬다며 현재는 황망한 마음에 은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언제부터 기다리셨어요? 제가 오늘 오는 줄은 어떻게 아시고?”

“자네 집에 전화를 했지. 아무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는 들었어.”     

“죄송합니다.” 

“무슨, 전해 줄 것도 있고. 아무래도 기일에 오기는 힘들잖나.”      


종이백은 무겁지 않았다. 안에는 파란색 박스와 노트 한 권이 들어 있었다. 박스에 쓰여 있는 ‘Dante Purgatorio’에서 단테의 이름을 발견한 현재는 ‘Purgatorio’가 무슨 뜻인지는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 무엇을 떠올리려 애쓰던 현재는 그 해 여름 은혜에게 들었던 단테의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피렌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단테는 그 이듬해를 넘겨 실각하고 피렌체에서 영원히 추방된다. 라벤나에서 피렌체를 그리워하며 죽어간 단테를 은혜는 가여워했다.      


“얼마나 돌아가고 싶었을까?” 

“그래도 사형 당하기 전에 도망쳐서 죽지는 않았잖아.”     

“살아서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하는 게 더 슬프지 않아?”

“근데 진짜 못 갔어?”      

“쉰이 넘어서 죽음 때까지 피렌체에는 못 갔데.”

“그럼 우리가 대신 가주자.”      


현재는 박스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아무런 예물도 준비하지 말자던 말과 달리 은혜는 모아둔 돈으로 만년필을 샀다. 단테의 이름을 딴 만년필은 이태리의 어느 공방에서 직접 만든 것으로 주문해서 받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은혜는 신혼여행으로 피렌체에 가면 두오모에 올라 현재에게 만년필을 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얼마나 놀라고 기뻐할지 상상을 하며 은혜는 기다림마저 행복해 했다. 은혜는 바이킹이 가장 높이 상승할 때 현재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 표정을 본 적은 없었다. 


두오모에서 만년필을 꺼내 손에 쥐어 주는 그 순간을 은혜는 머릿속으로 수백 번 그려봤다. 만년필은 투병기간 내내 은혜가 손을 뻗으면 닿을 서랍 안에 있었다. 은혜는 가족들 몰래 하루에도 몇 번씩 만년필을 꺼내서 들여다봤다. 


만년필을 쥐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두오모 위에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몇 번이고 은혜는 현재가 눈치 채지 못하게 날렵한 솜씨로 만년필을 꺼내 현재에 손에 쥐어 주는 연습을 했다. 그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은혜만의 의식이자 기도였다. 


살려달라는 말조차 아꼈던 은혜는 만년필을 현재에게 남겼다. 현재에게 은혜의 마지막 선물은 받은 만년필이 아니라 받지 못한 만년필이었다. 그것은 은혜가 끝까지 살고자 했다는 증표였다. 현재는 만년필을 손에 꼭 쥐었다.      


“단테는 신곡을 왜 썼을까?”

“그러게 학자들 마다 의견이 분분한데 단테만 알고 있지 않을까?”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왜 썼을까?”

“난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쓴 것 같아. 베아트리체가 스물넷에 죽었잖아.”     

“그렇게 일찍?”

“아홉 살에 만나 열여덟에 영혼이 뒤흔들릴 만큼 사랑했고 스물넷에 죽었으니 그리웠겠지.”     

“단테가 진짜 베아트리체를 만났을까? 피렌체도 못 오는 사람이.”

“그래서 신곡을 쓴 것 아닐까? 나는 단테가 진짜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 같아. 사순절 여행에서.”     


만년필은 차갑고 딱딱했다. ‘다크블루 바디는 연옥을 상징하며 실버트림은 천국에 대한 희망을 나타냅니다.’ 설명서를 읽고서야 현재는 ‘Purgatorio’가 연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재는 지상도 하늘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헤매는 자신의 처지와 만년필이 어딘가 닮아 보였다. 현재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은색으로 빛나는 달을 감싸 안고 있는 하늘은 짙은 파란색이었다. 


달빛에 길게 현재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현재는 만년필에 잉크를 넣고 노트를 꺼내 베아트리체라고 썼다.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베아트리체, 은혜, 은혜, 은혜. 한 페이지 가득 은혜의 이름을 쓸 무렵 공항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구름다리 아래 내려 저쪽 동네에서 이쪽 동네로 건너 갈 무렵 비행기 한 대가 별들 사이를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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