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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Apr 01. 2024

팽나무 아래 거꾸리

꿈삶글 109



팽나무 아래 거꾸리



월대천변 징검다리 앞 팽나무 아래

내가 좋아하는 거꾸리가 비어 있다


폭낭 그림자처럼 내가 살짝 기대면

나의 아픔까지 끌어안고 함께 운다


울음에 젖어서 슬며시 눈을 떠보면

슬픔의 잔가지마다 새 잎이 돋는다


연둣빛 새 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잘 보이지 않던 꽃들이 키득거린다


기둥 속으로 기어올라간 여울물이

연둣빛의 끝에서 징검다리 건넌다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그릇 떨어지면

쨍그랑 울음소리 들린다


국그릇이 떨어지면

철퍼덕 주저앉아서 운다


밥그릇이 떨어지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탕, 하고 총을 쏜다


밥상이 엎어지면

비행접시가 날고

대포와 미사일이 날아간다


눈을 뜨고도 꿈을 꾼다. 물에 젖은 영혼들이 나를 찾아와 말한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꼭 풀어달라고 말한다. 헛묘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헛묘의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죽음은 그냥 억울한 죽음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들의 죽음은 통일의 첫걸음이 되고 평화의 씨앗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나에게 당부한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죽음은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고 평화의 꽃을 피우는 씨앗이었음을 반드시 알려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흰 봉투 하나를 주고 떠난다. 미리 원고료를 주는 것이니 꼭 책을 한 권 써 달라고 말한다. 선인세를 미리 주는 것이니 틀림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알려달라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저승돈을 받아버렸으니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승에 가서 그들에게 다시 한번 죽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틀림없이 살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써야만 한다. 눈을 뜨고 꾼 꿈이 더욱 아프고 슬프고 무섭다. 아, 나는 이제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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