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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n 29. 2024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 윤동주 시인의 모든 시에 강산 시인이 시로 답하다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윤동주 시인의 모든 시에

강산 시인이 시로 답하다


강가  


윤동주 시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강산 시인

 너에게 나를 보낸다

     

책 제목 후보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 시인시를 만나다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윤동주 시인은 평생 촛불을 켜고 봄을 찾아 떠났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 같은 집에서 3개월 먼저 태어난 송몽규가, 1935년 1월 1일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계기로 윤동주 시인은 시작노트에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_(1934, 윤동주 18세)


1934년 12월의 눈이 눈을 뜬다


1934년 12월의 눈이 내린다

송몽규의 놀라운 「술가락」이

북간도 명동촌에 눈을 뿌린다

윤동주의 가슴에 바람이 분다

밀러의 비너스가 축구를 한다

<文藻>란 글자가 발등에 있다

잃어버린 아프로디테 양 팔에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새싹이 돋아나 나무로 자란다

1934년 12월에 내렸던 눈이

2024년 7월의 무지개로 뜬다


* 송몽규의 콩트 「술가락」, 1935년 1월 1일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소식이 1934년 12월의 눈처럼 북간도 명동촌에 흩날렸다.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아닌 시()


 

  

                                     

* 윤동주 시인의 첫 번째 시작노트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에는 59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주로 동시가 많다. 그리고 제목이 없는 시도 있고 제목만 있는 시도 있다. 또한 윤동주 시인이 자필로 쓴 목차에는 36편의 제목만 적혀있다.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에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입학 전, 중학생 시절에 쓴 글들이 담겨 있다.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생정도일 것이다. 1934년부터 1938년 사이에 쓴 윤동주 시인의 습작기의 시들이 담겨있다. 윤동주 시인이 1917년 12월 30일 생이니, 18세에서 22세 사이에 쓴 글들이다. 그 나이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당신은 또한 그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_(1934, 윤동주 18세)


끝과 처음


나는 늘 처음만 있고, 끝이 없었다

삶도 사랑도 문학도 처음만 있었다


나는 늘 씨만 뿌리고, 나무만 심고

수확할 줄 모르는 게으른 농부였다


복숭아도 무화과도 스스로 열렸지만

부지런한 벌레와 새들이 다 먹었다


나도 이제 벌레와 새들에게 배운다

사랑도 문학도 삶도 끝까지 향한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으로 간다

시작은 언제나 끝을 향해가고 있다


초 한 대


초 한 대―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리고도 그의 생명인 심지(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버린다.


그리고도 책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가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간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_(1934.12.24, 윤동주 18세)


촛불 한 송이


초에 불을 붙인다

밤이 눈을 뜬다

어둠이 흔들린다


하지(夏至)를 지나

밤이 눈을 뜬다

불면의 밤이 온다


나는 앞으로

몇 번 더 

눈을 뜰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몇 번 더 

너를 볼 수 있을까


해가 뜨지 않아도

너를 보려고

자꾸만 눈이 떠진다


삶과 죽음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나는 이것만은 알았다.

이 노래의 끝을 맛본 이들은

자기만 알고,

다음 노래의 맛을 알려 주지 아니하였다)


하늘 복판에 아로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냐.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_(1934.12.24, 윤동주 18세)


삶의 길과 죽음의 길


길을 지우고 가면

새로운 길이 나온다


풀이 길을 지운다

발자국을 지운다


나는 풀을 뽑는다

나의 길을 만든다


풀은 다시 자란다

풀의 길은 하늘이다


나의 길도 하늘이다

나도 따라 하늘 간다


 내일은 없다

  ― 어린 마음이 물은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도

잠을 자고 돌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내일은 없나니

……


_(1934.12.24, 윤동주 18세)


내일의 태양도 오늘의 태양이다


내일의 태양도 오늘의 태양이다


태양은 정규직이 분명한데

달과 별들은 정규직이 아니다

달은 날마다 출근을 하는데

근무시간이 조금씩 다르다

별도 날마다 출근을 하는데

하청업체 직원처럼 이름표가 없다

아무래도 밤에 출근하는 길들은

비정규직이 많아서 어둡다

어머니는 오늘도 쉴 수 없어서

오래도록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은 내일도 출근할 것이다


거리에서


달밤의 거리

광풍이 휘날리는

북국의 거리

도시의 진주

전등 밑을 헤엄치는,

쪼그만 인어 나.

달과 전등에 비쳐

한 몸에 둘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회색빛 밤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선풍이 일고 있네.

외로우면서도

한 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푸른 공상(空想)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_(1935.1.18, 윤동주 19세)


책벌레


나는 이제 거리에서

책의 거리로 돌아왔다


나는 이제 거리에서

책의 거리에 숨었다


책벌레가 되었다

책다듬이벌레가 되었다


먼지다듬이벌레가 되었다

좀이 좀팽이처럼 산다


책의 거리에도

달빛이 어린다


공상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天空)에다,

무너질 줄도 모르고,

한 층 두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


* 1935년 10월 《숭실활천》에 발표  _(1935.10월 이전 추정, 윤동주 19세)


공상 상상


세상의 모든 꿈은

?, 에서 출발한다


세상의 모든 시는

¿에 걸려 나온다


나의 팔자는 이제

∞로 누워서 산다


꿈은 깨어지고


꿈은 눈을 떴다,

그윽한 유무(幽霧)에서.


노래하던 종다리,

도망쳐 날아 나고.


지난날 봄 타령 하던

금잔디밭은 아니다.


탑은 무너졌다,

붉은 마음의 탑이―


손톱으로 새긴 대리석 탑이―

하루 저녁 폭풍에 여지없이도,


오― 황폐의 쑥밭,

눈물과 목메임이여!


꿈은 깨어졌다,

탑은 무너졌다.


_(1935.10.27. 탈고, 1936.7.27. 개작, 윤동주 19세)


말의 씨앗


말의 씨앗에

너무나 무서운

것들이 참 많다


가시일까 낚시일까


미늘 깊은 가시들이

혀의 뿌리 쪽에

잔뜩 박혀 있다


병원은 갈 수 없다


현장법사 같은

나그네가

동전 두 개로

뽑기 시작한다


나는 입을 더 크게 벌린다


가시가 뽑힐 때마다

낚시가 뽑힐 때마다

혀의 살점까지

선득선득 뽑혀 나온다


꿈 밖에서도 혀가 얼얼하다


남쪽 하늘


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

스산한 가을날―


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

서리 내리는 저녁―

어린 영(靈)은 쪽나래의 향수를 타고

남쪽 하늘에 떠돌 뿐―


_(1935.10월, 평양에서, 윤동주 19세)


남쪽 하늘


제비는 남쪽만을 좋아하는 것일까

북간도의 제비는 어디가 남쪽일까


강남 갔던 제비는 언제 돌아올까

우리들의 강남은 도대체 어디일까


제주도의 산남과 산북은 어디일까

우리들 남쪽 하늘은 대체 어디일까


북간도는 남쪽 하늘이 될 수 없을까

우리들의 고향땅은 도대체 어디일까


제비들이 지붕 남쪽에 집을 짓는다

사람들이 하늘 남쪽에 살림 차린다 


조개껍질

― 바닷물 소리 듣고 싶어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울 언니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개껍데기


여긴 여긴 북쪽 나라요

조개는 귀여운 선물

장난감 조개껍데기.


데굴데굴 굴리며 놀다,

짝 잃은 조개껍데기

한 짝을 그리워하네


아롱아롱 조개껍데기

나처럼 그리워하네

물소리 바닷물 소리.


_(1935.12월, 봉수리(鳳峀里)에서, 윤동주 19세)


제비


제비는 왜 인간을 따르는가


지푸라기를 입에 물고

논가로 가서 진흙을 묻힌다


적당한 처마 밑에 집을,

제비들이 흙집을 짓는다


알을 낳고, 알은 부화한다

가장 크게 벌린 입에 먹인다


제비는 해마다 찾아온다

잊지 않고 다시 찾아서 온다


논이 있는 곳에 제비 온다

사람 있는 곳에 제비 온다


논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빈 고향에서 제비도 떠난다


제비는 왜 고향을 떠나는가


고향집

 ― 만주에서 부른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엔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 집.  

   

_(1936.1.6, 윤동주 20세)


교대근무 마지막 날


마지막 야간근무 마치고, 빈 거실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나고 있다 인터폰소리에 문을 열어주니, 젊은이가 들어와 부엌에 소방시설을 설치해 준다 가스레인지 사용도 하지 않는데 꼭 설치를 해야 하느냐 물으니 의무사항이란다 인덕션 레인지를 사용해도 가스 자동차단 밸브와 주방후드 자동 확산 소화기 설치는 의무사항이란다 100도씨 정도에서 화재 발생 1차 감지가 되고 139도씨가 넘어가면 2차로 소화 장치가 동작하여 불을 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아파트 시공자를 신고하라고 한다 건설업자도 감리자도 허가자도 모두가 범법자라고 한다 자기들끼리 서로가 눈을 감아주고 부당하게 돈을 챙겼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은 그렇게 큰 도둑들 작은 도둑들 투성이다 어쩌면 대통령도 대통령 부인도 도둑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 전에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주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불법은 부자들이 저지르고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입는다


나도 3년만 근무하고 나오려던 직장에서, 30년이 훨씬 넘도록 밤잠 자지 못하고 눈에 불을 켜고 별빛을 만들었다 그동안 참으로 고생 많이 했다 이제는 좀 쉬어도 되리라 이제는 정말 시인의 길만 걸어가야만 하리라 이제 집에는 나 혼자만 있다 다른 가족들은 다 나가고 나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윤동주 시인과 함께 재미있게 놀고 있다


병아리


“뾰, 뾰, 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꺽, 꺽, 꺽

오냐 좀 기다려”

엄마 닭 소리.


좀 있다가

병아리들은

엄마 품으로

다 들어갔지요.

  

_(1936.1.6, 『가톨릭소년』1936년 11월호에 발표, 윤동주 20세)                                     


새마을 구판장


고향 마을회관을 새로 지으면서 구판장이 생겼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마루에서 막걸리를 팔던 시절이었다

어머니께서 방물장사를 하던 우리 집이 먼저 시작했다


구판장 벽 이마에 참새가 그려져 있었고 막걸리와

아이들의 과자 등을 팔았다 명절 무렵에는 갈치와 

고등어도 팔았다 얼어붙은 동태를 떼어내서 팔았다


마을 회관 방도 불을 지펴 따뜻하게 유지해야 했다

마을 회관이 그렇게 늘 우리 집인 시절이 있었다

가게 방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을 뻔도 했었다


그런데 왜 자꾸만 이 구판장 시절이 꿈에 나오는가

꿈속에서 만나 그때처럼 싸우는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를 파는 나의 모습이 왜 등장하는 것일까


왜 나는 회관 방에 불을 지피고 태극기를 달고

가족들 아무도 몰래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떠날까

나는 어디를 향하여 그렇게 고향에서 도망쳤을까


오줌싸개 지도


밧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는

간밤에 내 동생

오줌 싸서 그린 지도.


위에 큰 것은

꿈에 본 만주 땅

그 아래

길고도 가는 건 우리 땅.

  

_(1936년 초 추정, 윤동주 20세)


연꽃과 산목련


연꽃이 피었다

나무를 보았다

목련이 되었다


목련꽃 피었다

먼 산을 보았다

산목련 되었다


산목련 피었다

시인을 보았다

시 꽃이 피었다


창구멍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옵니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_(1936년 초 추정, 윤동주 20세) 


하늘의 시인


윤동주 시인은 하늘의 시인이다


지상에서 평생 습작한 문학청년

가장 치열하게 습작한 문학청년

목숨으로 지킨 피 같은 문학정신


하늘이 발굴한 하늘의 시인이다


윤동주 시인의 등단지는 밤하늘

윤동주 시인의 등단작은 봄이며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은 어머니 


기왓장 내외


비 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 나선 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 웁니다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 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_(1936년 초 추정, 윤동주 20세)  


장마


장대비 뿌린다


하늘이 지상에

장대를 심는다


죽순이 자란다


지상이 하늘에

죽창을 깎는다


우우우 아아아


탄성이 들린다

함성이 퍼진다  


비둘기


안아 보고 싶게 귀여운

산비둘기 일곱 마리

하늘 끝까지 보일 듯이 맑은 주일날 아침에

벼를 거두어 뺀뺀한 논에서

앞을 다투어 요를 주으며

어려운 이야기를 주고받으오.


날씬한 두 나래로 조용한 공기를 흔들어

두 마리가 나오.

집에 새끼 생각이 나는 모양이오.


_(1936.2.10, 윤동주 20세)  


가방 들어주는 사람


나는 당신의 가방을 들어주고 싶었다

책가방을 들어주고 싶었다

도시락가방을 들어주고 싶었다

여행가방도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내가 가방이 되었다

책가방이 되었다

도시락가방이 되었다

여행 가방이 되었다

책도 되지 못하고

도시락도 되지 못하고

여행도 되지 못하고

당신도 되지 못하고

나는 평생 가방으로 살았다

낡은 가방이 되어 버려지고 말았다

버려진 가방은 오늘도 당신을 담고 싶다


이별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 내, 그리고,

커다란 기관차는 빼―액― 울며,

쪼그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이별이 너무 재빠르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

더운 손의 맛과, 구슬 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

  

_(1936.3.20, 윤동주 20세)  


별과 달과 태양


나는 

달과 해를 낳아 길렀다

달은 월말마다 어두웠다

해는 날마다 잘 살았다

나는 아마도

달도 없는 밤에 떨어질 것이다

죽어서도 달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밤에도 가슴이 아프다

별과 달과 해는

오늘도 그렇게 이별처럼 빛난다


식권


식권(食券)은 하루 세 끼를 준다.


식모는 젊은 아이들에게

한 때 흰 그릇 셋을 준다.


대동강 물로 끓인 국,

평안도 쌀로 지은 밥,

조선의 매운 고추장,


식권은 우리 배를 부르게.


_(1936.3.20, 윤동주 20세)  


동행


나는 윤동주 시인의 촛불을 켜고

시인의 길을 찾아 나선다

함께 길을 찾아서 나선다


날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요

날마다 일엽편주(一葉片舟)다

그래도 끝까지 노래하며 나아간다


시인은

불멸의 시 한 편 남기기 위하여

수많은 습작시를 밟으며 나아간다


모란봉에서


앙당한 솔나무 가지에,

훈훈한 바람의 날개가 스치고,

얼음 섞인 대동강 물에

한나절 햇발이 미끄러지다.


허물어진 성터에서

철모르는 여아들이

저도 모를 이국말로,

재잘대며 뜀을 뛰고.


난데없는 자동차가 밉다.


_(1936.3.24, 윤동주 20세)  


일방통행


나에게는 이제

일방통행 없다

나에게는 이제

이바토해 2000

누군가 자꾸만

이바이바 한다

토해토해 한다


황혼


햇살은 미닫이 틈으로

길쭉한 일 자(一字)를 쓰고 …… 지우고 ……


까마귀 떼 지붕 위로

둘, 둘, 셋, 넷, 자꾸 날아 지난다.

쑥쑥, 꿈틀꿈틀 북쪽 하늘로,


내사……

북쪽 하늘에 나래를 펴고 싶다.

  

_(1936.3.25, 평양에서, 윤동주 20세) 


배롱나무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를 맞으며, 식전부터, 배롱나무 주위의 풀을 좀 뽑았다 올봄에 나는 요놈 주위에서 많이 서성거렸다 요놈을 3월 초에 심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잎이 나오지 않았다


같이 심은 감나무는 잎이 바로 나왔는데, 요놈은 감감 소식이 없었다 혹시 죽었나 싶어서, 가지를 꺾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6월이 되어서야 겨우, 기미가 좀 이상하더니, 이렇게 잎이 돋아나서 부지런히 자라고 있다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처럼, 요놈은 꽃이 참으로 오래도록 피어난다


오래도록 꽃으로 피어 살려면 역시, 오래도록 기다려야만 한다 우리들의  인생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오래도록 피어나려면 오래도록 참아야만 한다



강산 2017년 6월 28일 

나에게는 이제

일방통행 없다

나에게는 이제

이바토해 2000

누군가 자꾸만

이바이바 한다

토해토해 한다


강산 2018년 6월 28일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를 맞으며

식전부터

배롱나무 주위

풀을 좀 뽑았다

올봄에 나는

요놈 주위를

많이 서성거렸다

요놈을 3월 초에 심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잎이 나오지 않았다

같이 심은 감나무는

잎이 바로 나왔는데

요놈은 감감 소식이 없었다

혹시 죽었나 싶어서

가지를 꺾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6월이 되어서야 겨우

기미가 좀 이상하더니

이렇게 잎이 돋아

부지런히 자라고 있다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처럼

요놈은 꽃이 오래도록 핀다

오래도록 꽃으로 피어 살려면

역시

오래도록 기다려야만 하는 듯

우리 인생도 대부분 그러하듯이


강산 2019년 6월 28일  연잎 따는 아침


https://youtu.be/-Zuq6c5J_UQ?si=ffC8YYIJungujk52

https://youtu.be/FNIIMz0KVuk?si=QDPVgFio3fi9E3mO

https://youtu.be/8Q01EBdUSXc?si=y9AS2rK-WYruIFrx

https://youtu.be/o_XO4qQ22rY?si=XjSC3DXeeqWQMi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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