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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과 함께 61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by 강산 Mar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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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과 함께 61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그때 그 젊은 나이에 나는

짐발이 자전거로 술통 배달을 하였고

새마을 구판장에서 술을 팔고 살았다

작두샘 있는 집이 한없이 부러울 때였다


시월 하순 정하섭이 벌교의 방죽길을 간다

술도가집 아들인 정하섭이 중도방죽길 간다


나의 고향 곡성에도 술도가집이 있었다

양조장이나 주조장보다 도겟집이라 불렀다

나의 친구 아버지와 딸기코 아저씨가 일했다

우리 새마을 구판장에서는 막걸리도 팔았다

논밭이 없는 우리 집은 구판장을 하였다

짐발이 자전거로 술통을 싣고 와서

땅에 묻혀 있는 술독에 부어주곤 하였다

코보 아저씨, 막걸리 배달부가 술에 취하면

나는 손수레로 술통을 실어오곤 하였다

짐발이 자전거로 술통을 싣고 올 수 없었다


나는 홀로 구판장 앞집 담장을 잡고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였다

넘어지면서 넘어지면서 무릎까지 깨졌다

그렇게 나는 짐발이 자전거 선수가 되었다

술통을 싣고도 잘 달려 다른 집에도 배달하였다

신작로를 달리며 나와 술통이 함께 춤을 추었다


신작로의 추억은 그렇게 쌓여갔다


도로포장이 되지 않았던 신작로에 가끔

쟁기식 불도저가 지나가며 평평하게 만들어도

금방 웅덩이가 파이거나 자갈이 늘어났다

먼지가 날리며 돌멩이들도 날아다녔다

도로변 민가의 장독이 깨지고 사람들도 다쳤다

                                  

다치면 빨간약 바르고 재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자동차도 달리고 달구지도 달리고 자전거도 달렸다

중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양조장 막걸리통 네댓 개씩 매단 막걸리 배달 자전거도 다녔다

한여름 더위에 막걸리가 숙성되며 흔들리니 때론

막걸리통 마개가 뻥 튀어올라 

제법 많은 막걸리를 쏟기도 하였다

돌멩이에 견디지 못한 자전거 타이어도 자주 터졌다

긍께, 그리하여 중학교 앞에도 펑크집이 있었고

주조장 앞에도 자전거 수리점과 펑크집이 있었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펑크가 뻥뻥 터지고 넘어져도 

지금 다시 생각하면 참으로 아프게 좋은 시절이었다


밀가루로 만들던 막걸리를 쌀로 만들고

낱개 포장으로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면서

막걸리 술통의 추억과 낭만은 신작로와 함께 떠났다


도겟집 주인 몰래 나에게 고두밥을 자주 주시던

나의 친구 김진섭이 아버지는 벌써 떠나시고

나의 친구 김진섭이도 서둘러 떠나고 말았다


정하섭이 침투했던 벌교의 중도방죽으로 가야만 할까

내 친구 진섭이와 함께 다이빙을 하던 각시둠벙으로 갈까

나는 오늘도 이렇게 그때 그 젊은 나이를 생각하고 있다


 


태백산맥 1-1. 일출 없는 새벽

    

  3

  습관적인 몸짓인 듯 정하섭은 흘러내리지도 않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손바닥에 닿아오는 이마의 감촉이 싸늘했다. 그리고 전신에 소름이 끼쳐오는 오한을 느꼈다. 정하섭은 윗도리의 단추를 꿰며 두 어깨를 부르르 떨어 오한을 털어내려 했다. 추위는 불현듯 집생각을 간절하게 했다. 긴 방죽길을 따라 빠르게 옮겨진 정하섭의 시선은 그 끝, 읍내의 어느 지점에선가 멎었다. 집이 보일 리 없었지만 그의 눈길은 아슴하게 멀어져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집 모습이 어리고, 집 언저리에 감돌고 있는 특이한 냄새까지 맡고 있었다. 그건 술도가가 내뿜고 있는 진득진득한 술냄새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지니고 있는 그 소박하고도 아늑한 냄새가 집에는 언제나 훈훈하게 서려 있었다. 아교풀처럼 끈끈하게 도배된 술도가의 냄새는 오로지 아버지의 냄새였다. 정하섭은 그 두 가지 냄새를 확연히 구분해서 맡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읍내는 이미 접근할 수 없는 위험지대였다.

  정하섭은 자르듯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의 팽팽해진 눈길이 박힌 지점에 기와집이 서너 채 잇대어 있었다. 그가 선 지점에서 측면만이 드러나 보였다. 그러나 그 집들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가늠하기에는 그 측면만으로도 충분할 정도였다. 기와집들은 흉물스럽게 엎드려 있었고, 그 둘레를 따라서는 키 큰 나무들이 팔짱을 끼듯 에워싸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달빛 아래 칙칙한 어둠을 드리우고 있는 나무숲과 불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덩치 큰 기와집들 언저리에는 음산한 괴기가 서려 있었다.

  정하섭은 주의 깊은 눈길을 왼편 언덕 쪽으로 옮겼다. 거기에 반원을 이루고 있는 대숲이 작고 낮은 한 채의 기와집을 보듬듯 하고 있었다. 그 집에도 불빛이라고는 없었다. 정하섭은 긴장된 눈길을 그 집을 향해 쏘고 있다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몸을 낮춰 내리막 외길을 민첩하게 달려 내렸다.

  그 기와집들은 현부자네 제각과 부속 별장이었다. 그 자리는 더 이를 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 산줄기가 경사를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문득 다리쉼이라도 해야겠다는 듯 중턱 조금 아래에다가 펑퍼짐한 평지를 이루어놓고는 다시 아래로 내리뻗친 것이었다. 그러니 그 터는 후덕한 부인네가 치마폭을 펼쳐 떨어지는 아이를 받아올리는 형상이라는 것이었다. 죽어가는 목숨을 구해올리는 터이니 부귀와 영화는 더 말하여 무엇하며, 정남향에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고 앞에 물길까지 트였으니 이에 더할 명당이 또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풀이는 결코 과장되었거나 말쟁이의 말만은 아니었다. 그 터의 맞은편으로 뻗어가고 있는 방죽 위에서 건너다보면 그 풀이가 아주 그럴싸했다. 두 줄기의 산등성이가 양쪽으로 뻗어내리고 있는 사이에 포근하게 감싸이듯 자리잡은 그 터는 눈여겨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묘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자연의 조형에 대해서 느낀 감정이 으레 그 터에 버티고 선 터무니없이 큰 기와집들로 손상되고는 했다. 원 돈푼깨나 있다고, 쯧쯧쯧. 명당 탐허는 것이사 인지상정이지만서도..... 사람들은 현부자네 제각을 짓게 되면서부터 이런 말들을 무수히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이런 시샘 탓이었을까. 아니면 현부자네의 기가 그 명당의 기에 꺾였다는 풍수장이의 말대로일까. 현부자네는 제각을 짓고 오 년이 다 못되어 살림이 거덜나고 말았다. 그것도 아니면,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제각 앞에 살림집을 지었으면 의당 정실을 들어앉혀야지 소실들을 끌어들여 별장을 삼고 주색잡기나 즐기니 조상들이 벌을 안 내릴리 있느냐는 많은 사람들의 말이 맞은 것일까. 현부자네는 일제치하에서 장사로 거부가 된 사람이었다. 그의 치부가 일본 관의 비호를 받았다는 파다한 소문이 거짓이 아닌 것은 신작로에서 제각에 이르는  넓고 긴 진입로 양쪽에 하필이면 '사쿠라'를 줄줄이 심은 것이었다. 현부자네가 망한 이유에 대해서 분분한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그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로 불리어지던 호화로운 별장은 일시에 밤마다 귀신이 나오는 폐가로 변하고 말았다. 현부자의 소실들이 거처했던 기와집들은 인적이 사라진 채 문이 꼭꼭 닫혔고, 잉어가 뛰놀던 인공연못의 물은 썩어가고 있었으며, 가무와 풍악이 울리던 정자의 구석에는 거미줄이 엉키고 단청은 퇴색해갔다. 몰락한 부자의 비참상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 그곳에는 낮에도 음산한 바람이 감돌고 있었다. 어른들마저도 밤에는 근접하기를 꺼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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