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설렘 그리고 걱정 한가득 머금고 이른 아침에 출근했다. 고객을 맞이할 준비는 끝났고 주문만 들어오면 된다. 아직은 한가한 시간, 주문이 하나 들어왔다. 고객은 한 명, 주문을 준비하는 직원과 알바는 5명. 햄버거 세트 하나가 우릴 분주하게 만들었다. 이러다 주문이 몰리면 망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시간은 벌써 점심시간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손님이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오픈 초창기라 배달 주문은 받지 않았다. 매장 안에서만 판매해서 주문이 한꺼번에 몰릴 걱정은 없었지만 지금 키오스크(무인주문기)에 줄 서있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져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줄은 매장 밖을 넘어 버스정류장 인근까지 뻗어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햄버거를 이 정도로 좋아했던가? 점심시간에 몰린 사람들은 결국 매장 안을 꽉 차게 만들었고 테이블이 부족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손님은 우리 매장을 처음 방문해 보는 거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도 여기서 처음 일해 본다.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주문이 빠르게 나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순간만큼은 ‘패스트’ 푸드가 아니다. 줄은 줄어들지 않고 기다리는 손님들은 팔짱을 끼며 늦게 나오는 주문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다른 패스트푸드점에 경력이 있다 한들 그곳과 이곳에 매뉴얼은 물론이고 레시피와 각종 기기들을 처음 사용해 보는 걸 어떡하나.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벌써 하루가 지났다.
분명 첫날에 손님이 많아서 놀랐는데 하루가 지났음에도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 내 눈앞에 보이는지 아리송하다. 또 한 번에 쉴 새 없는 주문은 혼을 쏙 빼놓게 만들었고 밀려오는 주문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겼다. 기다리는 손님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바쁜 와중에 햄버거가 너무 느리게 나오다 못해 더 이상 나오질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조리대를 쓱 봤는데 만들다가 멈춰있는 버거들이 줄지어 있었다. 상황을 보니 패티가 나오질 않아서 마무리를 못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패티구이기는 냉동된 패티를 넣으면 자동으로 구워져서 나온다.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레일 위에서 패티가 천천히 구워지고 다 익은 패티는 판을 타고 내려와 한 곳으로 모이게 된다. 하지만 간혹 패티가 레일 끝에 걸려 뒤에 오는 패티와 겹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오픈한 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패티가 걸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걸려있던 패티만 빼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문제였지만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에게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시 패티가 나오면 밀려있던 주문을 한 번에 뺄 수 있고 이 역경은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된다. 패티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고 서둘러 다시 버거를 만들려는 와중 패티구이기 앞에 가만히 서있던 점장님이 갑자기 매니저들을 불러 모았다.
"홀 안에 있는 모든 손님들한테 가서 제품이 나오기까지 좀 더 오래 걸릴 거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와"
굳이? 패티는 이미 나오고 있고 햄버거는 잘 나오고 있는데 여기서 직원이 빠지게 되면 버거 나오는 속도는 느려질 텐데 왜 이런 판단을 하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양해의 말은 카운터 앞에서 말해도 되지 않은가. 그리고 매니저들만 가서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 점장님도 함께 가서 얘기를 해줘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상하관계에서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밖으로 나가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와 맞는 사람들만 만나면 좋겠지만 어딜 가든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었다. 이거는 이렇게 해야 되는데 왜 저렇게 하라고 하는지, 혹은 누가 봐도 욕먹을 짓인데 그러한 행동을 한다든지. 이런 사람과도 일해보고 저런 사람과도 지내보고. 그냥 잘 지내보는 게 최선이겠지?
오픈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실수가 많았던 우리들은 실수가 줄고 실력은 많이 늘었다. 그러고 보니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못했다. 아직은 서먹한 사이를 원만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뭘까. 20대끼리 친해지려면 역시 술만큼 좋은 건 없다. 그래, 술자리를 만들어보자.
이 매장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어떤 식으로 지내야 하는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아르바이트였던 시절에는 단지 일만 해도 충분했지만 관리자로 일하게 됐으니 일뿐만 아니라 매장 전체를 보면서 아르바이트 관리도 해줘야 한다. 나는 매장 관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르바이트생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매출이 아무리 잘 나와도 받쳐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으니까.
몇 번의 술자리를 갖게 된 우리는 처음보다 많이 친해졌다. 이참에 사적으로 만나지 못했던 동료 매니저 A와도 친해지면 좋겠다 싶어서 아르바이트들과 함께 있는 술자리에 불렀다. 어린 나이에 관리자로 일하는 A는 대화를 거의 해보지 못해서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에 취하니 사람이 달라졌다. 물론 좋은 쪽이 아니고 나쁜 쪽으로 말이다.
매니저로 일을 하다 보면 능동적인 사람과 수동적인 사람,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과 센스 없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을 보더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매니저 A는 지금 일하는 사람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맞은편에서 같이 술을 마시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B였고 취기가 깊어질수록 매니저 A는 불편한 기색을 점점 드러냈다. 너에게 시급주는 게 아깝다는 말을 서슴없이 뱉었고 이 언쟁은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것도 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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