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싫어하는 데에는 수 백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부모님의 원수라는 만화 같은 이유부터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는 시답잖은 이유까지 가지각색이다. 지금까지 나도 사람을 만나면서 싫어하고 미워하고 때로는 혐오하기도 했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지만 좋은 사람에게도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지 않나. 그런 말이 있다. 열 번 잘해줘도 한 번 못해주면 실망한다고. 그래서 오히려 처음부터 못난 사람보단 좋은 사람을 미워하기 쉽다.
아르바이트생 B는 좋은 사람이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면서 공감도 잘해줬다. 자기표현이 서툴러서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언제나 웃으면서 일했다. 하지만 A 매니저는 그런 B를 싫어했다. 미워하고 싶었던 건지, 무시하고 싶었던 건지는 몰라도 B를 싫어하기로 마음먹은 건 틀림없었다. 그래서 뒤에서 B에 대한 험담을 내 앞에서는 물론 타 아르바이트생 앞에서도 즐겨했다. 둘이 마주치지 않으면 문제 될 일은 없었지만 이를 어쩌나, 술자리에서 서로를 보게 됐으니 이제 문제가 생기겠다.
주량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된 A 매니저는 B에게 결국 모진 말들을 뱉었다.
"나는 널 볼 때마다 돈 주는 게 너무 아까워. 일도 못하고 하는 것도 없는데 왜 우리가 시급을 줘야 하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네. 왜 알바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장난스레 던진 말인 줄 알았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느껴졌다. A 매니저 때문에 좋았던 분위기가 금세 차가워졌고 B의 표정은 살벌한 분위기보다 더 차가워졌다.
"그러는 매니저님도 똑같이 일도 못 하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세요? 그리고 왜 욕하세요? 동갑이라도 예의는 지켜야죠. 그런데도 계속 반말하고 욕한다면 저도 똑같이 할게요."
"그러든지 말든지 너 알아서 하고 그냥 나가면 안 되겠니? 꼴도 보기 싫은데 일하지 말고 집에나 있어."
대화는 점점 격해졌고 술에 취한 A는 계속 '나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이해되지 않아서 그만하라고 했지만 A는 이미 위아래가 사라진 뒤였다. 비흡연자인 내 앞에서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앉아 있고 도리어 나에게 자신이 잘못한 게 있냐는 비아냥까지 떨었다. 내 후임 매니저인 A의 태도는 지켜보는 내내 가관이었다.
"더 이상 저런 사람이랑 같이 있기도 싫고 일하기도 싫으니까 내일부터 그만둘게요."
B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뒤따라간 나는 B를 위로해주려 했지만 이미 상처받은 마음은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법. 택시를 타고 간 B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과해야 하는 사람은 A 매니저다. 다시 자리로 돌아간 나는 A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사람을 대하는 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보는 직장에서 함께 일할 수 없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도움이 되지만 자신의 감정을 무례하게 표현하는 건 도움은커녕 오히려 독이 된다. A 매니저가 자신을 바꾸지 않는 한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매장은 인력관리가 되지 않아서 우리들만 힘들어질 텐데 거기까진 생각은 하지 않나 보다. 다음 날이 되어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람들을 대하는 A가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A 매니저가 B를 싫어했던 것처럼.
매장 오픈부터 같이 근무했던 A 매니저를 보고 있으면 어린아이 같았다. 일적인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 혼내면 삐뚤어지고 말이 없어진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뭐라고 하면 바로 그만둘 거야'라는 마음이 눈에 보여서 A 매니저에게 피드백을 주기가 힘들다. 같은 20대지만 이 사람을 보면 책임 없이 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여서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한동안 A 매니저가 실수하고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더라도 혼내지 않았다. 괜히 뭐라고 했다가 토라져서 나가버리면 큰일 나니까. 하지만 나와는 달리 점장님은 불편한 구석이 있으면 A 매니저를 데리고 나가 혼내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며칠이 지나고 평소처럼 근무하던 중 교대를 위해 A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대 시간은 다가오는데 올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라는 생각에 A에게 전화를 했다. 한 통, 두 통···, 그리고 열 통. A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르니 카톡이라도 보내야겠다 싶어서 단톡방에 들어갔는데 톡방을 들어간 순간 짜증이 올라왔다.
['A 매니저'님이 나갔습니다.]
그녀는 말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고 도리어 잠수를 탔다. 그동안 점장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쌓이다가 B와의 다툼이 발화점이 되어 퇴사를 한 것으로 보였다. 관리자가 말없이 나가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근무 일정을 다른 관리자가 모두 채워줘야 한다. 3명이서 3교대로 근무했던 것을 이제 나와 점장님 두 명이서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쉬는 날? 새로운 매니저가 들어올 때까지 쉬는 날은 없다.
오픈하고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관리자가 나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A 매니저가 굴린 스노우볼이 결국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이러다 남은 사람들이 지쳐서 떠나면 어쩌려고 그럴까. 다행히 힘들어지기 전 새로운 매니저를 충원하게 됐고 매장의 분위기는 다시 복구가 됐다. 이제 아무 일 없이 평화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아, 그런데 혹시나 사내 커플이 생겨서 연애하다 헤어지면 어떡하지? 그때도 둘 다 퇴사하려나? 아직은 사내 커플이 없으니 안심해도 되려나.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