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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달 Dec 10. 2023

점장님께는 연애한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타인의 연애는 언제나 재밌는 법


21살 때 첫 아르바이트로 초밥 뷔페에서 일했다. 그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에 가장 눈에 띈 귀엽게 생긴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말을 잘하진 않아서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옆으로 가서 접시 치우는 걸 도와주고 장난을 치면서 일했다. 일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 애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먼저 그 애가 나한테 먼저 장난칠 정도로 많이 친해졌다. 비가 오던 날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 우산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퇴근 시간이 같았던 그 아이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는데 우산을 들고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우산 같이 쓰고 가요!"


그 뒤로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며칠 뒤 그 아이와 사귀게 되었고 우린 3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커플이 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실제로 커플이 가장 많이 생기는 아르바이트 중 하나인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플이 된 사람들을 많이 보곤 했다. 그런데 오픈한 지 몇 달이 지난 우리 매장에는 왜 커플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거지?


나는 연애를 하는 것도 좋지만 남이 하는 연애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환승연애'나 '연애의 참견'이 재밌는 이유가 바로 연애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과 아픔을 감정 소모 없이 보면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매장에서 누군가 커플이 되는 과정을 처음부터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마침 묘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있는데 한 번 봐볼까?




#첫 커플의 탄생


남자 아르바이트생 C군은 무뚝뚝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무뚝뚝한 만큼 본인 할 일을 묵묵히 잘 해내서 칭찬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을 자주 보긴 했지만 여자 아르바이트생 하고 장난을 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아직 여자한테 관심이 없나 싶었지만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장난을 치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생겼다.


매니저인 나는 주문이 없으면 주방 한편에 놓인 컴퓨터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본다. 아르바이트생들도 주문이 없으면 뒤쪽 주방으로 넘어와 싱크대에 쌓인 설거짓거리를 정리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누가 설거지를 하는지 신경 쓰지 않지만 그날은 달랐다. 출근한 지 한 달쯤 된 여자 아르바이트생 D양이 설거지를 하고 있던 C군에게 장난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깟 장난이 뭐라고 호들갑을 떠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성 간에 장난은 커피로 비유하자면 거품처럼 호감이 묻어 나오는 '카푸치노'같은 느낌과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에스프레소'같은 느낌이 있다. 내가 보는 저 둘의 느낌은 카푸치노였다.


평균적으로 여자들은 연애 상대로 연하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듬직해 보이기도 해서 의지할 수 있는 연상을 선호한다. 하지만 D양은 자신보다 어린 C군에게 관심을 보였다. 어리지만 듬직해 보였나? 연하라도 매력이 있긴 하겠지만 어떤 면에서 끌렸을지 궁금하긴 하다. 조만간 둘이 사귄다면 물어봐야겠다.


"매니저님! 저희 사귀기로 했어요."


D양이 설레는 표정으로 C군과 연애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사귀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C군과 장난치는 게 재밌고 대화가 잘 맞아서 좋았다고 한다. 이제 그들은 당당하게 서로 손잡고 퇴근할 수 있게 된 사이가 됐다. 더불어 우리 매장 1호 커플이 되었고 다행히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헤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1호 커플이 생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2호 커플이 생겼는데 이 커플은 점장님에게 본인들이 연애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커플이 된 두 사람이 점장님에게는 말하기 싫은 이유


2호 커플의 주인공은 지난번에 싸워서 나간 A 매니저의 뒤를 이은 F 매니저다. 원래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매니저로 일하고 싶다고 해서 2주 간에 관리자 교육을 마친 뒤 매니저가 된 것이다. F 매니저는 키가 커서 사람을 내려다보는 게 일상이었고 나는 그런 눈빛을 볼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유전자가 다른 걸 인정해야지. 그래도 다행인 건 키가 큰 덕분에 무섭게 생겼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실제로 무섭게 생긴 건지 아님 키 때문에 무서워 보이는 건지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 생긴 거라도 무서워야지. 아님 내가 너무 불리하잖아.


F 매니저를 볼 때마다 우리 매장 안에서는 연애하기 글렀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이유는 낯가림이 심하고 상대에게 말을 잘 걸지 않을뿐더러 조용히 일해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둠의 분위기를 내뿜던 그가 한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만큼은 말을 먼저 걸면서 묘한 분위기를 냈다. 설마 둘이 사귀겠어? 하지만 머지않아 둘이 같이 산책을 하다가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들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산책? 이성 간에 산책은 거의 사귀는 거나 다름없지 않나? 그리고 며칠 뒤 F 매니저가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저희 사귀기로 했는데 점장님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절대로 말하거나 티 내면 안 돼요!"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지만 점장님한테 만큼은 비밀로 하고 싶다고 했다. 입이 근질거리긴 했지만 지켜달라면 지켜줘야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둘이 커플이니까'라는 시선을 받기 쉽기에 연애하는 걸 당연히 숨기고 싶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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