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님, 저 그만둘래요."
문제없이 일하는 줄 알았던 아르바이트생 G양이 정색하며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일이 힘들어서는 아니고 학업 때문에도 아니다. 그럼 무슨 일 때문에 그만둔다고 하는 것일까?
"왜 그만두려고 하는 건가요?"
"저랑 안 맞는 애가 있어서요. 누구라고는 말 못 하는데 걔랑 같이 일하는 게 불편해서 근무하기 싫어요. 보니까 그 애는 적응도 잘해서 나갈 거 같지 않으니 제가 나가려고요."
"나간다고 하면 붙잡진 않겠지만 나가기 전에 그 불편한 사람이 누군지 알려줄 수 있어요?"
"누군지 말하면 저만 속 좁은 사람 될까 봐 말하긴 싫어요."
매장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이제는 '누구'때문에 나간다고 하는 말이 익숙하다. 그래도 나름 G양과 술자리도 몇 번 가지면서 친해졌는데 갑자기 나간다고 하니 아쉽고 섭섭했다. 누군지 말 못 하는 이유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일도 잘하고 주변 애들과 친해서 괜히 말했다가 이상한 소문이 퍼질까 걱정이 된다는 거다. 그래도 그렇지 누군지 알아야 우리도 조치를 취할 거 아닌가. 결국 누구로 인해 나가는지 말을 하지 않은 채 G양은 퇴사를 했고 G양과 친한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게 됐다.
"G양과 같은 고등학교였던 애가 얼마 전부터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그 애는 친구들이랑 다른 사람 험담을 자주 하고 다녔는데 고등학생 때 G양을 욕했나 봐요. 근데 시간이 지나고 지금 아르바이트할 때 만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친한 척을 하며 말을 건다고 하더라고요. 뒤에서는 G양 욕을 하면서 앞에서는 살갑게 구니까 꼴 보기 싫은 거죠. 심지어 대학교도 같은 곳인데 대학교 안에서도 똑같이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인 갈등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이곳이 학교도 아니고 굳이 내가 나서서 서로 잘 지낼 수 있게 중재할 수는 아니다. 그렇지만 저 친구가 말하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매장 분위기를 흩트릴 수 있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누군지 알아야 한다.
"그 애가 누구냐고요? D양이에요. C군과 사귀고 있는 D양."
D양이라고 듣는 순간 믿기지 않았다. 예의 바르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뒤에 숨어서 남을 욕하고 험담을 한다고?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G양이 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기 싫을 정도였으니 저 친구가 하는 말을 맞겠지만 그렇다고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까, 아니면 내가 직접 보고 느꼈던 경험에 빗댄 D양의 모습을 믿어야 할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매장의 관리자인 나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확인을 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공감을 해줄 수 있지만 동조를 해서는 안 된다. 감정이 느끼는 대로 옹호해 준다면 편가르는 행위와 다를 게 없지 않나. 일단 판단하기 어려우니 이 문제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G양은 이미 퇴사를 했으니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뽑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새롭게 들어온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근무표를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어? 매니저님, D양도 여기에서 일해요?"
"D양을 알고 있어요?"
"네, 고등학생 때 저랑 같은 학원을 다녔거든요. 인사만 했던 사이라 친하진 않아요. 하하."
"아, 그래요?"
"네, 근데 제 친구들은 D양을 꺼려하더라고요."
"응? 왜요?"
"D양이 뒷담도 잘하고 싸가지도 없어서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저야 뭐 인사만 한 사이라서 그리 신경 쓰진 않았지만 여기서는 잘 지내나 보네요?"
또 다른 사실을 듣게 되니 중립을 지키던 마음이 점차 기울었다. 정말 그런 사람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D양의 본모습을 보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누구나 처음 일을 시작하면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한다. 빠르게 배워서 조금이라도 남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하기 위한 노력보단 익숙한 환경에 머무르려는 마음으로 일하게 된다. 이렇게 마음이 변질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린 아르바이트생들이 시간이 지나도 의지를 갖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우수 사원' 시스템을 도입했다.
관리자들의 의견을 취합해서 선정하는 '우수 사원'의 혜택은 3만 원 상당의 기프티콘을 주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의 인원은 10명 정도 되니 누구나 열심히 하면 받을 수 있는 좋은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관리자는 성장해 가는 아르바이트생을 얻을 수 있고 아르바이트생들은 급여 이외에 또 다른 보상을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D양은 우수 사원 시스템이 생긴 후로 관리자의 말을 잘 들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매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면서 우수 사원을 받으려는 의지를 많이 보여줬다. 하지만 자신이 받을 거라 확신했던 D양의 예상과는 달리 그 달의 우수 사원은 남자 아르바이트생 H군이 받게 되었고 이후 D양의 태도는 돌변했다.
"매니저님, 쟤랑 더 이상 같이 근무하기 싫어요."
우수 사원을 받은 아르바이트생 H군이 말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우수 사원을 받은 뒤로 D양이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자신을 험담한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질투심에 눈이 먼 D양은 자신과 친한 사람이 모여있는 단톡방에다가 우수 사원을 받은 H군을 비난했고 보다 못한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이건 아닌 거 같다며 H군에게 단톡방 내용을 보여주며 이 사실을 말해줬다고 한다.
우수 사원 그게 뭐라고 남을 헐뜯기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D양만 내쫓으면 모든 게 해결이 되겠지만 매장에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게 없어서 함부로 내보낼 수 없다. 일말의 조치로 H군과 D양이 같은 시간에 근무하지 않도록 스케줄을 조정해 줬지만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직장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라면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맡은 일에 대한 수행 능력이 뛰어나면 남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오래 일하기를 원한다. 새로운 사람을 교육하는 비용보단 기존에 잘하는 직원을 지속적으로 쓰는 게 훨씬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D양도 마찬가지다. 그릇된 행동을 하곤 있지만 이 사람을 내보내는 득 보단 적당한 조치를 취하고 일하게 하는 득이 더 크다. 이런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곤란하긴 하지만 아르바이트 한 명 한 명이 귀한 걸 어떡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