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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달 Nov 12. 2023

호기심에 입사하기

전역하고 세 달 동안 평일과 주말을 나누어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쉬는 날 없이 하루에 7~8시간을 일하고 다음 날 또 출근해서 일하는 것이 나의 하루였다. 그러던 중 거리가 멀었던 주말 알바를 관두고 평일로 일했던 M사 아르바이트에 몰두하면서 휴일에는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원을 다녔다. 훗날 카페 사장이 되는 상상을 하면서 자격증을 준비하니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었다. M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돈을 모아 창업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퇴사했으니 이제는 어림없는 소리가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된 김에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딱히 열심히 살아온 건 아니었지만 재정비하고 다시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당분간은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쉬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지내기로 했다.


그리고 퇴사한 지 일주일 즈음 되었을 때 문자가 한 통 왔다.

[알바**]
OOO님에게 알바 제의가 왔습니다.
어떤 곳인지 지금 바로 확인하세요!


'알바 제의?'


당분간은 일하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 뜬금없이 비집고 들어온 문자 메시지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의 20대 인생에는 아르바이트를 지원해서 일했지, 자신의 매장으로 아르바이트 하러 오라고 했던 적은 없다.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어떤 곳에서 나의 이력서를 보고 일하자고 제안을 했을까? 한 번쯤 일해보고 싶었던 카페에서 연락이 온 걸까? 곧바로 사이트에 접속해서 확인을 했다. 알바 제안을 준 곳은 다름 아닌 L사 패스트푸드점이었다.


L사는 '여기에도 L사 패스트푸드점이 있네?'라고 느낄 정도로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집 근처에는 당연히 있고 조금만 가도 떡하니 있는 게 L사다. 그렇게 널리고 널린 L사 매장 중에서 알바 제의를 한 곳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1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곳에 있는 곳이었다. 바로 집 앞에 있는 매장도 가지 않고 있는데 저 멀리 위치한 매장에서 일을 한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도 생각을 한 번 해봤다. 멀리 있는 나에게 알바 제안을 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면접이라도 보고 할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알바 제안을 준 L사 매장은 지하철로 30분, 버스로 40분, 총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다. 심지어 외진 곳에 있어서 버스가 많지 않고 배차 간격이 길다. 한 번 놓치면 최소 20분을 기다려야 하는 동네였다. 지도앱을 보면서 겨우 도착한 매장 안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손님인 줄 알고 장사가 잘 되는 건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이들은 전부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아르바이트 지원해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나처럼 알바 제의를 통해 온 사람은 1~2명 정도였다.


차례가 되어 사장님과 마주 앉아 면접을 봤다.


"궁금한 게 있는데 멀리 사는 저에게 알바 제의를 하신 이유가 있나요?"
"패스트푸드 경력이 많고 잘할 거 같아서 제안을 했어요"
"근데 제가 교통비도 많이 나오고 거리가 멀어서 금방 그만둘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래도 괜찮나요?"
"그렇게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교통비는 지원해 드릴 수 있어요"



이외에도 면접을 진행하면서 나를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이 있었다. 아르바이트인 나를 맞춰주려고 하는 곳은 처음이라 잔잔한 감동이 물결처럼 흘러 들어오게 되어 한 번 일해보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었으니 돈이라도 벌면 좋지 않은가. M사에서 L사 아르바이트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던 경력 덕분에 어려운 점은 없었다. 나를 너무 믿는 건지는 몰라도 출근한 지 2일 차에 점심 피크 시간을 혼자 햄버거 제조하도록 했다. 레시피 외울 시간이라도 주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이건 좀 아니지 않았나 싶었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벽에 붙여진 레시피를 보면서 만들었는데 이러다 실수하는 건 아닐지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결국 시간 내에 모든 주문을 만들었고 실수는 없었다. 그날 사장님을 비롯한 매장 관리자들의 신뢰와 함께 앞으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질 거라는 신호탄이 되었다.


경력이 없는 사람이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 카운터 포스 업무를 적응하는데 2주, 햄버거 조리를 하는데 2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서 말하는 2주는 꾸준히 일을 해야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고 보통은 1~2달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하루 만에 햄버거 조리를 끝냈고 더 나아가 카운터와 마감 업무까지 배우게 됐다. 이 모든 걸 배우는데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업무에 대한 지식과 경력, 센스가 있어서 빠르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먹 뻗는 법만 가르쳐주고 투기장에 던져놓으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니까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정도 모른 채 사장님은 나의 성장 속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관리자 마감 업무까지 배워보라고 한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한테 너무 많은 일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아르바이트인 나에게 관리자 업무까지 배우라고? 불만의 씨앗이 발아되기 전에 얼른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취업 사이트를 둘러봤다. 언제까지 이 먼 곳까지 출퇴근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노릇. 이제는 아르바이트보다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문구를 봤다.


「신규 오픈 매장에서 함께 근무할 '관리자' 모집」


'신규 매장 관리자라·····.'


이 구인글에 관심이 생겨 모집 내용을 확인했다. 새롭게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N사에서 패스트푸드점 관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같은 패스트푸드 업종이고 지금까지의 경력을 바탕으로 매니저를 준비한다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오픈부터 시작하는 거라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질 필요도 없었다. 짧은 고민 끝에 이곳에서 일해보기로 결심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L사 출근길, 지원한 지 2주 만에 N사에서 문자가 도착했다. 날짜와 시간 그리고 면접을 볼 주소를 알려줬고 곧장 주소를 복사해서 면접 장소를 검색해봤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지도가 가리킨 곳은 패스트푸드 매장이 아닌 어느 건물 안에 있는 사무실이었다.


패스트푸드점인데 왜 사무실에서 면접을 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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