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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달 Nov 05. 2023

화내면서 퇴사하기

"퇴직금 안 받을 테니까 내일부터 안 나오겠습니다"



1년 넘게 아르바이트했던 곳에서 내가 점장님에게 한 말이다.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사람은 냉정해지고 어떤 감정을 표출할지 판단의 기로에 서게 된다. 불쾌, 실망, 억울, 혐오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있었지만 내가 표출하고 싶었던 감정은 '분노'였다. 그것도 차갑고 냉랭한 분노.




나는 22살 때 서울에서 자취를 했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M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패스트푸드점이라 손님이 많았고 바빴지만 더불어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도 많았다. 일은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이 힘들어도 서로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에 항상 재밌게 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일한 지 2년이 지나고 입영통지서가 날아오게 되어 군대를 가게 되었다. 전역한 뒤에는 자취를 그만두고 본가에 내려와 살았고 허무맹랑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어서 아르바이트를 알아봤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M사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했고 M사 경력이 있던 나는 면접을 보자마자 빠르게 채용이 되었다.


서울 M사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는 좋은 추억이 많았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억을 남기며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좋은 추억은커녕 평생 기억에 남을 안 좋은 기억들만 새기게 되었다.


#첫 번째 사건

돈 욕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쉬는 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싫었다. 그래서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 'M사 투잡'이 생각났고 가까운 다른 지점 M사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뒤 면접을 보러 매장에 방문했고 분위기는 좋았다. 당연히 채용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연락을 기다리던 중 마침 면접 봤던 타 지점 M사에서 문자가 왔다.


 [저희 매장 채용 조건과는 맞지 않아 부득이하게 채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M사 경력이 많던 내가 채용되지 않았다. 원하는 시간과 요일에 일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는 M사에서 내가 채용 조건이 맞지 않았다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채용이 안 되는 게 이상했다. 미채용이 된 일에 대해서 그 지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M사 점장님이 면접 본 지점에 전화해서 나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과 욕을 섞어가며 채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배신감에 휩싸여 점장님을 찾아가서 왜 나에 대해서 안 좋게 얘기를 하고 투잡을 못하게 막는지 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매장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어처구니없게도 이유가 단지 이것뿐이다. 투잡을 하며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나의 계획이 틀어졌고 퇴사를 결정짓게 한 또 다른 일이 생겼다.




#두 번째 사건

어느 날 매니저 A가 자신과 스케줄을 바꿔줄 수 있냐는 카톡이 왔다. 아르바이트생이던 내가 매니저와 근무 변경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른 아르바이트생보다 직급이 다르고 매니저 업무를 병행해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스케줄이 아닌 관리자 스케줄로 근무를 했기에 나에게 근무 변경을 요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일정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알겠어. 네가 안 바꿔주면 내 마음대로 한다"


A 매니저와 나는 짧게 연애했다가 헤어진 관계였다. 술자리에서 다른 남자와 손 잡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난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고 A는 용서를 구했지만 뒤이어 화를 냈다. 미안하다고 하는데 왜 받아주지 못하냐고 말이다. 잘못을 해놓고서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게 가증스러웠다. 이러한 서사가 있는 A 매니저와 나의 관계에서 과연 A가 과연 나에게 좋게 행동을 할까. 결국 자기 멋대로 근무를 바꾸는 일이 생기게 되었고 이 일을 점장님께 말씀드리자 가재는 게 편이라고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참았던 감정이 쌓여서 결국 퇴사하겠다고 말하고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퇴직금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나에겐 돈보다는 이 사람들로부터의 해방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참으며 일을 한 결과가 화를 내며 퇴사를 한 것이다.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들은 밑에 누가 밟히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하늘만 보며 나가려고 애를 쓴다. 자신이 밟고 있는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본인만 생각하며 살아간다. 비록 아르바이트일지라도 '작은 사회'라는 우물 안에 있으니 서로를 좀 더 생각해 주면 좋지 않을까. 상처를 주면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퇴사를 하고 당분간은 쉬기로 했다. 만약 다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M사는 가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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