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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Oct 24. 2021

괜찮다, 괜찮다

권고사직. 사전적 의미는 사용자 측에서 근로자에게 퇴직을 권유하고 근로자가 이를 받아들여 사직서를 제출하는 형식을 통해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했으므로 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근로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해고처럼 회사에서는 강제로 내보낼 수 없단다. 하지만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 나 역시 퇴직 권유에 거부하지 못하고 회사를 나왔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돌려 퇴사를 강요했던 그들에게 난 왜 좀 더 당당하게 따져 묻지 못했을까. 마음 같아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시원하게 한마디 내뱉어 준 다음 뒤도 안 돌아보고 멋지게 박차고 나오거나, 아니면 이렇게는 못 나간다 깡다구라도 부려 애 좀 태워 주고 싶었다(애가 탈까 싶기도 하지만). 하지만 난 퇴사하는 마지막 날까지 남은 업무를 꼼꼼하게 마무리하고, 업무로 인연을 맺은 외부 사람들에게도 일일이 인사를 하고, 인수인계도 성심성의껏 해 주고야 말았다. 회사는 미웠지만 남아서 인수인계 받는 직원들이 뭔 죄인가 싶어서. 또 내가 하던 일을 그렇게 하찮게 내팽개쳐 버리다시피 하고 나가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   


사실 천년만년 회사를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갈 거 언젠가 나가게 된다면 실업 급여도 받고 위로금도 챙기며 나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저 상상했던 것과 실제로 일이 벌어졌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사직을 권고 받은 기분. 한마디로 ‘더.럽.다’. 그건 내 의지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은 타이밍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나가야 하는 날이 정해졌기 때문일 거다. ‘권고사직’을 내가 나가고 싶은 타이밍에 딱 맞게 당하기가 어디 쉬운 일일까 싶지만.


나이대도 다르고, 회사를 다닌 기간도 다르고, 또 사람마다 성향도 다 다르기에 ‘권고사직’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괜찮다 웃으며 아무 일 없는 듯 회사에서의 마지막을 보냈던 이들, 어찌 마음속까지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했을까만. 일이야 어찌 되든 간단한 인수인계만 하곤 다음 날부터 휴가를 낸 후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난 이들, 뒤도 안 보고 바로 나가 버리기엔 남아 있는 동료들이 안쓰러워 퇴사 날까지 버텼지만, 행여 자신이 그 대상자임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이 싫어 마음 졸이며 마지막을 보낸 마음 여린 이들도 있었다.


문득 사회 초년생 때의 일이 생각났다. 처음으로 들어간 어느 작은 신문사에 다닐 적 IMF 외환 위기가 왔다. 당시 편집부의 기자들은 모두 정리 해고되었다. 주간님(편집장)을 제외한 기자들은 다 갓 들어온 햇병아리 기자들이었다. 마지막 날 회사를 나오며 난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을까. 그 회사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고, 6개월이 채 안 된 터라 회사나 동료들에게 정이 담뿍 들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사람을 잘라 내는 세상의 쓴맛을 첫 직장에서부터 본 데다 실업자가 넘쳐나는 암울한 경제 상황이 두려웠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뭐든 시작할 수 있는 젊음이란 무기가 있었는데. 아마도 처음으로 갑작스럽게 내쳐진 상황에 놀라고도 슬펐던 그 감정을 어찌 해야 할 줄 몰랐던 것 같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직장 생활을 오래 했다면 참으로 오래 했다 할 수 있는 지금, 또다시 권고사직이라는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난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산전수전 다 겪었다 할 순 없지만 사회 물을 먹을 만큼 먹어 웬만한 일엔 크게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단단함이 생겼음에도 이런 일엔 영 능숙해지질 않는다. 인사팀의 본부장과 이것이 면담인가 싶은 통보 식의 대화를 하면서도 어렸을 적 그때처럼 울지 않은 것을, 아니면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때와 달리 묻고 싶은 말이라도 다 내뱉고 나온 것을 장하다 생각해야 하려나. 비록 목소리는 덜덜 떨렸지만 말이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만큼 일에 대한 전문성, 모아 놓은 건 별로 없어도 당장은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을 만큼의 경제력이 생긴 반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나이와 경력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워진 것이 현실이다. 시장에서 잘 팔리기는커녕 너도나도 꺼리는 연차가 되어 버린 거다. 그러니 어려서는 어려서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이런 상황이 불안하긴 마찬가지란 것. 단지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나만 보였던 그때와 달리 함께 퇴사 대상자가 된 동료들 한 사람 한 사람, 같은 팀에서 혼자만 남게 된 팀원, 눈만 마주쳐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부서의 가까운 동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지금의 상황이 내가 원하는 회사에서의 마지막 모습은 아니었지만, 누구 하나 마음 편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괜찮다, 괜찮다.’ 진심으로 다친 마음들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20년 전 그 시절 펑펑 우는 내게 “괜찮다, 괜찮다.” 하며 따뜻하게 토닥토닥해 준 주간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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