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나가지 않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권고 수칙을 매우 잘 지키는 모범시민이라기 보단 제 몸을 끔찍이도 아끼는(?) '안전제일주의'인 편이라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더 그렇다.
그래서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어딘가 묻어 있을지도 모를 바이러스를 피하겠다는 일념으로 되도록이면 손잡이를 안 잡고 빈자리를 찾아 앉다가 버스가 급히 출발하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그 복잡한 만원버스에서 잡을 손잡이조차 없이 서 있을 때도 흔들림 없이 균형을 잡는 신공을 발휘했었는데! 몇 달 쉬었다고 그새 균형 감각이 사라져 버린 모양이다.
‘거참, 기사님 운전 한번 터프하게 하시네.’
속으로 투덜거리다 문득 출근길 버스에서 가끔 만나던 어느 기사님 생각이 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그 기사님의 버스를 처음 탄 날이었다. 승객들이 모두 타고 자리에 앉자 기사님이 안내 방송을 했다.
“승객 여러분, 모두 안전띠 단단히 매시기 바랍니다.”
‘엥? 시내버스에 뭔 안전띠?‘ 하는데 연이어 기사님의 활기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자, 마음의 안전띠 다 매셨으면 출발합니다.”
좀처럼 웃을 일 없는 피곤한 출근길, 기사님의 위트 있는 말 한마디 덕분에 킥킥 웃음이 새어나왔다.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사고 시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정하는 안전띠는 정말 차나 비행기를 탈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의 안전띠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크고 작은 상처를 받게 되는 곳이 바로 직장이니 말이다.
사실 직장에서 상처받는 것은 사회 초년생일 때나 10년, 20년을 넘게 회사를 다닌 이후에나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배려하며 하하호호 즐겁게만 일할 수 있는 직장 생활이란 애당초 없으니까. 그나마 위안이랄 수 있는 건, 직장 생활 연차가 높아지며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면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는 체념 반 이해 반의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 또한 경험을 통해 얻은 마음의 안전띠, 즉 자기만의 안전장치 하나쯤 두게 된다는 정도일 거다.
그렇게 마음의 안전띠라도 매고 있어야 일하며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충격을 덜 받고, 설사 우울감, 좌절감, 배신감, 어이없음, 빡침 등의 여러 격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더라도 그 부정적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쉽다.
그때 나를 붙들어 주었던, 마음의 안전띠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경우, 마음의 안전띠는 일과 삶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었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직장인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과 관계를 삶과 분리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회사에서 풀리지 않았던 일이나 엉켜버린 인간관계는 퇴근해서도 그림자처럼 질질 따라와 머릿속을 맴돌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전 직장에서 편집 일을 같이 했던 한 친구는 일의 특성상 하루에 끝나지 않고 다음 날 계속해서 이어지는 업무가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퇴근 후에도 업무에 대한 생각을 끊어낼 수 없었던 것이 늘 부담이었다고. 일을 그만두고 과감하게 전과는 전혀 다른 서비스 업종의 일을 택한 그 친구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그날의 업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편하고 좋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친구와 같은 그런 강력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각자에게 일과 삶을 분리시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나는 회사, 그리고 일이 곧, 나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열심을 다해 하고 있다고 해도 일은 나의 한 부분일 뿐이다.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꼭 일과 삶을 동일시하며 일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회사에서의 일이나 인간관계로 인한 힘들고 괴로운 감정이 회사 밖에서의 생활까지 집어삼키게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일과 생활을 무 자르듯 쉽게 자를 수 없다는 건 너무 잘 알지만, 그러기에 더욱 일과 삶을 분리해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도 중요하지만 회사 밖의 내 삶도 중요함을 늘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마음을 든든하게 붙잡아 줄 마음의 안전띠 하나쯤은 가지고 일하다 보면 회사 일과 그로 인한 관계의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