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뉴욕에 갔을 땐 가이드북에 표시해 둔 유명 명소를 찾아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돌아다녔다. 휴가는 짧은데 가고 싶은 곳은 많고 이것저것 다 보고 싶은 욕심에 인증 샷 찍고 바로 이동하면서 여러 곳에 발 도장 찍은 것을 내심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자유’ 여행 가서 자체적으로 ‘패키지’ 여행을 하며 돌아다닌 셈이다.
온종일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면 오늘은 어디어디를 갔고, 거기는 어땠다느니 하며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했더니 동생이 “뉴욕다운 곳을 보고 싶으면 관광지만 돌아다니지 말고 여기도 한번 가 봐.” 하며 한 곳을 이야기했다.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라는 곳인데, 동생 말로는 맨해튼 도심과는 다른 뉴욕 로컬 분위기가 나는 동네로 당시 새롭게 뜨는 ‘힙’한 곳이라고 했다.
귀가 얇은 만큼 결정도 빠른 나는 ‘힙한 곳을 안 가 보는 건 예의가 아니지.’ 하며 다음 날 일정을 바로 그곳으로 정했다. 윌리엄스버그의 베드포드 애비뉴역에 내렸을 때의 느낌은, 음 뭐랄까 ‘아, 여기도 뉴욕인 거야?’ 싶게 그곳은 생경한 분위기였다.
그동안 보았던 화려한 뉴욕의 모습과는 달리 창고 같은 황폐한 건물들, 빈티지 가게들, 그래피티 가득한 거리의 벽과 바닥, 집에서 가지고 나온 듯한 옷가지와 소품들을 길에 늘어놓고 파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르게 유유자적 앉아 있는 사람들,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에 낡은 운동화가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풍경은 ‘힙’하다는 것에 대한 나의 상상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 살짝 당황스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관광객들 가득한 도심과 달리 한적하면서도 날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거리는 오히려 더 특별해 보였다.
새로움을 발견하는 재미는 더 쏠쏠한 법. ‘저쪽 골목엔 또 어떤 특이한 것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지도 따위는 가방에 넣어 두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니며 뉴욕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진짜’ 동네에 와 있다는 기분을 만끽했다.
재미있는 동네다 싶어 찾아보니 윌리엄스버그는 소호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저렴한 작업 공간을 찾아 옮겨 온 곳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다시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힙’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했다.
소호의 경우처럼 예술가들의 활동으로 또는 다른 여러 가지 요인으로 낙후된 도시가 활성화되면 자본이 유입되어 그 지역이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에 따라 주거 비용이 올라가면서 원래의 주민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주지에서 밀려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의 홍대 인근으로, 젊은 예술가들을 주축으로 1990년대부터 문화 상권이 형성되었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거대 자본이 들어오면서 임대료가 엄청나게 치솟아 소규모 상가는 웬만해서는 버틸 수 없게 되었다. 서울의 서촌이나 전주의 한옥마을,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등에서도 기존의 예술가나 영세 상인들이 터전에서 내몰리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10여 년이 훌쩍 지나 최근 가 본 윌리엄스버그는 대형 애플 매장을 비롯해 유명 브랜드 매장들이 들어선,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풍경이었다. 새로운 건물들과 화려해진 매장들로 바뀌면서 이곳만의 감수성도 이전의 삶도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여기라고 별수 있나.’ 싶으면서도 재미있고 개성 넘치던 거리들이 거대한 자본 앞에서 하나 둘씩 사라지며 획일화되어 가는 모습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난한 예술가들과 영세 주민들은 또 어디로 옮겨 갔을까.
* 참고 자료 : 오마이뉴스 '젠트리피케이션' 발생과 '핫플레이스' 탄생, 한국 사회의 젠트리피케이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