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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페디엠 Oct 26. 2020

나 다니엘 브레이크

성실했던 삶이 위협받는 현실의 냉혹함

  정보의 시대에 배제되어가는 이웃들  

  심장병 악화로 일을 쉬라는 의사의 진단으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 다니엘 브레이크는 질병수당을 신청했다가 비의료인인 상담사에 의해 질병수당을 거절당합니다.  콜 센터에 1시간 넘게 전화를 하여 가까스로 통화를 하지만 ‘전달할 테니 기다리라’는 대답이었다. 결국 실업수당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으로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생 목수로만 살아온 노인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노인, 장애인, 이주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는 정보를 알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점점 무인화와 자동화가 진행되고 사람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기보다는 모니터 속 시스템에 접근해야 함 음식도 사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영화에서는 결국 옆집의 청년들이 도움을 주어 인터넷으로 인증하고 상담을 예약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무사안일, 복지부동... 과 위선

  영화 속 관료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행정편의적인 관료의 모습입니다. 복지제도의 운영방식이 사람을 우선에 두고 운영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규정을 우선시하는 비정한 모습입니다. 약속시간을 조금 늦은 것에 대해 페널티를 주고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만 수당을 주는 등 인간적인 면은 사라지고 '위선'만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인터넷을 못하는 다니엘을 도우려는 말단 여직원을 혼내는 상사는  ‘당장 사무실로 와주면 고맙겠네요. 잘못된 선례가 남는다고요’라는 말로 형평성, fair 해야 하는 공정함 즉 도덕을 이야기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강자의 의상인 '법이나 도덕'의 전형적인 위선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숨은 우리의 이웃들

  그래도 약간의 위로와 희망이 있는 것은 사람 때문입니다. 다니엘에게 인간적인 조언과 도움을 준 사람은 시스템에서 가장 말단직에 있는 여자 직원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것도 혼날 것을 알면서도 도우려 했고 다니엘이 수당 신청을 포기하려 했을 때는 ‘항고가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다’라는 말과‘전에도 봤어요.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더라군요’,라고 다니엘을 만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분명합니다. 정답은 나와있는데 이를 실천하기는 더욱 어려워만 가는 시대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약자’의 편에 서서 도우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식료품 배급소의 모습은 인간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낙인의 장소입니다. 그곳에 줄을 서는 것 자체가 패배자요 창피하고 굴욕적인 사람이 됩니다. 영화에서 케이티가 보여준 모습은 가난한 이들의 절망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너무 오랜 기간 배고픔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식료품 배급소 안에서 통조림을 급하게 흘리면서까지 먹는 자신의 모습에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자존심마저 무너져 내립니다. 창피함에 주저앉아 우는 케이티를 배려한 것은 그래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다니엘이 함께 위로해주었습니다. 없는 사람들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가? 많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자존감을 잃으면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거요’. 라면서 자존심을 저당 잡히고 받아야 하는 지원을 거부합니다.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가면서 항고 일까지 버텨내는 다니엘의 모습은 국가 제도의 시스템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하는 가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웁니다.  관공서에서 자존심을 짓밟히는 일이 겪게 된 다니엘을 약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을 보여줍니다. 결국 데모의 형식을 빌려 이렇게 외친다.‘나 다니엘 브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이 모습을 보는 모든 시민들은 환호하고 응원해줍니다. 시스템이 잘못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항고 일이 되어 승소가 거의 확실시되는 법정에서 다니엘은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다니엘은 심사관 앞에서 읽기 위해 준비한 글이 있었습니다. 컴퓨터로 쓴 워드가 아니라 직접 연필로 글은 서로에게 진정한 이웃이었던 케이티가 장례식장에서 대신 읽습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영화는 해피엔드로 마감되지 않는다. 마치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우리는 영국 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볼 때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영국의 복지시스템에 의아함을 가지게 됩니다. 정말 그럴까? 그래도 영국인데 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영국의 복지시스템의 모습에서 우리의 복지시스템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복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선량하게 살아가던 우리의 이웃이 주변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빈곤을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것입니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복지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는 것에 안도감이 듭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각지대와 빈틈이 있어 보입니다. 시스템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이들을 찾아내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 사진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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