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곧 꺼진다. 무자비한 치매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1919~1999)의 말년에 직면한 알츠하이머 병의 투병 생활을 보여주는 영화 '아이리스'는 인생의 어두움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옥스퍼드를 졸업 후 오랜 기간 철학을 강의한 세계적인 작가 아이리스는 영화 속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합니다. "교육을 받는다고 행복해지진 않습니다. 자유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자유롭다고 해서 행복을 보장받는 게 아닙니다. 혹은, 교육을 받았더라도 말입니다. 행복할 때 그 행복을 느끼기 위해 교육이 필요한 것이지요. 교육은 사람의 눈과 귀를 뜨게 합니다. 어떤 것이 기쁨인지 알게 하며 세상엔 단 한 가지 자유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시킵니다. 그건 마음의 자유이지요. 그리고 교육이 제시하는 길을 따른다면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게 하지요. 인간은 서로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하면 섹스를 하고 우정을 쌓죠. 다른 존재에게도 애정을 느낍니다.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심지어 돌멩이까지도요. 행복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바로 이러한 사랑과 우리의 상상력에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정의나 절제 아름다움과 같은 순수한 개념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존중하는 도덕감도 갖고 태어나죠. 우리 이런 희미한 기억에 따라 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단순하면서도 고요하고 축복받은 느낌.. 자신을 정화시켰을 때 보이는 순수한 빛입니다".
영화는 아이리스의 정신세계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를 퀴블러 로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로 살펴볼 수 도 있습니다. 아이리스의 수용 단계라고 말하기보다는 남편 존이 받아들이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정의 단계입니다. 현재 수상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간단한 단어도 잘 표현할 수 없고 집안에서 길도 잃어버리고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 등 치매 증세가 심해지져 결국 치매진단을 받습니다. "두뇌가 비어있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요". 머릿속에 있던 생명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의사는 잔인한 말을 합니다. "빛은 곧 꺼집니다" 부인을 평생 존경한 남편 존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나이질 수 있다고 말하며 부정하고 싶어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입니다. 아이리스 분노보다는 돌보는 존의 분노가 폭발합니다. 존은 초기에는 모든 것을 감당해보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아이리스에게도 불만을 터뜨리며 화를 내는 상황에 까지 다 달르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타협입니다. 존은 어떻게 하든 아이리스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호수에서 수 영도하는 노력을 하며 온전한 정신을 붙잡아 연장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아이리스의 현재 기억은 사라지고 과거의 기억만이 남는 상황이 되어갑니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의 단계입니다. 잠시 우편배달부가 온 틈에 아이리스가 집 밖으로 나가 길을 잃어버립니다. 실종신고를 하고 아이리스를 찾기 위해 집안을 조사하는 경찰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집안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아이리스의 치매로 인해 모든 균형이 깨어지고 일상적인 삶마저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이제 기쁜 일보다는 슬픔과 우울이 가득한 가정이 됩니다. 마지막 단계는 수용의 단계입니다. 어떻게 하든 버텨보려고 하는 존은 결국 아이리스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극단적인 상황에 까지 이르자 요양원을 선택합니다. 퀼블러 로스의 5단계를 존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받아들입니다.
주인공 아이리스는 담담하게 본인의 알츠하이머 병을 받아들입니다. 아이리스는 의사의 진단을 들으며 "정말 무자비하네요", "어떨 때는 두렵기도 하지만, 어떨 땐 두렵지도 않아요. 그건 가망이 없다는 말이죠?"의사는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래요 가망이 없어요". 부정과, 분노 타협과 우울의 복잡한 심정을 함께 가지고 있겠지만 아이리스는 이를 운명으로 받아이고 영화에서는 수년간의 힘든 삶의 여정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마감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영화 마지막은 아이리스의 전성기 시절 강연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린 신성함을 믿어야 합니다. 꼭 신의 이름이 필요한 건 아니죠. 우리가 사랑이나 선이라 부르는 것이 있다면요. 시편에 이르기를 주의 생각을 벗어나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자리를 까록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새벽의 날개를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자리 잡아 보아도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그 오른손이 나를 붙드십니다".(시편 139:7-10-영화 속 번역문을 적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