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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르페디엠 Nov 23. 202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성공은 무엇인가?  

  영화에서 누가 보더라도 성공해 보이는 료타는 키도 크고, 똑똑한 출세가도를 달리는 직장인입니다. 자식도 본인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을 희망하여 명문 유치원에 입학시키고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하는 등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도록 합니다. 그러나 성공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을 외적인 기준으로만 본다면 료타는 분명 성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한 번도 같이 시간을 내어 놀아주지 못한 아빠의 삶은 과연 무엇을 위한 성공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뒤바뀐 가족

  그러던 어느 날, 부부에게 너무도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6년 전 태어나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다른 집의 아이라는 것입니다. 본인의 진짜 아이는 다른 집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를 출산한 병원을 통해 알게 됩니다. 뒤바뀐 가족이 만나 친해지기 위해 주로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음료수를 마시는 본인의 진짜 아들이 빨대를 씹는 모습이 상대 편 아버지의 빨대 씹는 습관과 같은 것을 보면서 료타는 깜짝 놀랍니다.   



  아버지란?  

두 가족이 만나는 동안 ‘아이와 놀아주라’는 유다이의 말에 료타는 ‘직장에서 나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일이 많다’라고 은근한 자랑과 변명을 함께 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라는 일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이 못하는 거죠’라고 유다이가 말합니다. 이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시대 많은 아버지들은 료타처럼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가족을 소홀하게 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진정 중요하고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군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일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입니다. 진정한 관계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관계입니다. 사소한 농담이나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함께 하면서 웃으며 시간을 보내야 ‘관계’가 형성됩니다. '관계'와 '만남'에는 시간의 두께가 필요합니다.


  남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

  료타는 직장상사에게 흘려들은 이야기로 그럼 둘 다 키워보는 것은 어떤가?라는 말을 듣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친구인 변호사와도 상의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시기를 엿보던 중 정말로 유다이에게 제안합니다. 자기 재산을 내세워 둘 다 주면 안 되겠냐고 말합니다. 말하자마자 보란 듯이 유다이에 뺨을 얻어맞습니다.

  그때 유다이는 료타에게 뼈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 ‘져본 적이 없는 녀석은 정말 남의 마음을 모르는 군’. 남의 마음이 어떠할 까? 지금 이 상황에서 이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 어떠한 마음으로 우리 기관에 왔을 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그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 애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혹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아무 말 없이 경청해서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의 마음이 어떠할 까? 마음을 모르면서 자신의 생각만으로 어설픅 접근하다 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기분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규칙을 강요

  아버지가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새로 이 집에 온 친자식에게 규칙을 강요하자 친아들인 류세이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을 견디지 못하고 도쿄 집을 탈출하여 본인을 키워준 유다이의 집으로 갑니다. 지금까지 키운 케이타는 규칙에 익숙해져 강요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진짜 그 규칙을 좋아했는지는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많은 부모가 자신이 만든 규칙을 아이에게 강요할 것입니다. 정말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규칙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고 규칙 없이 자유롭게 해 주어도 문제고? 정말 많은 해석을 이 상황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케이타는 원래 착한 아이여서 규칙을 강요하거나 강요하지 않거나 문제가 없는 아이 일 수 있고, 류세이는 원래 고집이 센 아이여서 규칙을 강요하거나 강요하지 않거나와 상관없이 어려운 아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고 화가 난 류세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서로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 규칙을 강요하는 것은 잔소리 역할 밖에는 못할 것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모두 맞는 말인데 듣기는 싫은 잔소리일 뿐입니다.


  아이에게 비치는 모습

  료타는 우연히 케이타가 찍은 카메라 속 사진을 보게 됩니다. 사진은 료타 자신의 자는 모습과 뒷모습뿐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비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함께 놀아준 시간을 함께 보낸 아버지가 아니라 언제나 잠 만자거나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제야 아이의 시선에서 자신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는 것인가?

  료타는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시선을 아들과 같게 맞춥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도 처음으로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어떻게 사랑해주어야 할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처음 아버지로 살아가며 고작 본 것이라곤 우리들의 아버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해 가족을 먹여 살려야만 했던 그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이 투사되어 오늘의 아버지의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단순히 일을 하고 집에서는 잠을 자고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로 인식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2010년 10월 23일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소개된 초등학생의 시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어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아버지의 슬픈 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라는 이제 '왜 있는지 모르겠다'에서 '있어서 좋아'의 존재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시선을 맞추고 함께 시간의 두께를 쌓아가는 ‘관계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 사진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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