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가운 열정 Nov 27.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43

헬스맨 02

헬씨가 매일 도시락을 스스로 싸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걸 싸줄 다른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삼겹살을 약속한 엄마도 사실 지금 안 계신다. 왜냐하면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지방에 계시기 때문이다. 형제도 없는 헬씨는 그냥 혼자 밥 해 먹고 청소, 빨래, 각종 분리수거 등등 집안 살림도 꾸려가며 그야말로 자취하고 있는 셈이다. 어수룩한 남자애 손길이 무슨 살림을 그리 잘하겠느냐마는, 그래도 야무지게 도시락을 싸다니며 학교 생활과 운동을 병행하는 걸 보면 부모님이 믿고 맡기실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헬씨의 부모님이 자리를 비우신지는 꼬박 6개월째가 되었다.

두 분 다 여수에 계시는데, 사실 장애인을 고용해주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 부득이하게 아이를 두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너무나 건강한 헬씨에 비해 부모님은 여러모로 몸이 편치 않으셨다. 어머니는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장애인 고용 안정을 위한 자격증을 취득하여 여수의 공장 주변에 장사가 꽤 잘 되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계신다. 청각에 손상이 있어 제대로 듣지 못하지만, 주문서가 커피 머신 앞에 테이핑 되어 붙을 때마다 그대로 커피를 내리기만 하면 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아버지는 여수의 한 공장에서 생산보조 업무를 맡고 있는데, 아버지 역시 듣지 못하는 장애와 상관없이 순차적으로 흘러오는 제품의 하자 여부를 검토하는 일이기에 현재 상황에서 이만한 일이 없다며 만족하고 계신다. 두 분은 작은 월세방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활하시면서 헬씨의 생활비와 적금을 감당하신다.




그래서인지 헬씨는 참 검소하다.

고가의 브랜드 패딩을 교복처럼 걸치고 다니는 요즘 아이들의 정서와는 달리 수수한 저가 브랜드나 상표조차 없는 점퍼를 입고도 늘 당당하다. 좋은 휴대폰 같은 건 욕심내지도 않고, 비싼 운동화도 관심 없다. 그냥 뭐든 편하고 튼튼한 것, 오래 써도 고장 없고 많이 닳지 않는 것이면 족하다. 요즘 이런 애가 어디 있나, 참 건전하고 정신머리 똑바로 박힌 놈이로다. 부모님이 집을 떠나 지방까지 가셔서 힘들게 벌어다 주신 돈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애틋한 마음, 그간 부모님에게서 받은 사랑과 그 끈끈한 관계성이 느껴져서 기특하다.




헬씨가 설명충이 된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어디서나 튀어나와 무엇인가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만족해하는 버릇. 부모님은 두 분 모두 듣지 못하시기 때문에 말도 하지 않으신다. 말을 잃으신 것 같다. 서로를 툭툭 치며 수화로 대화하신다. 부모님의 가장 큰 걱정은 하나뿐인 자식, 헬씨가 당신들로 인해 말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집에는 당신들이 들을 수도 없는 TV를 켜 두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헬씨는 모든 언어를 다 TV를 통해 배웠고, 그래서인지 쓸데없는 것들도 많이 알았으며, 호기심과 공감 능력도 남들보다 더 증폭되어 있었다. 자기가 보는 TV 내용을 부모님께 수화를 섞어가며 설명해드리기를 좋아했고, 자신이 설명한 걸 알아들은 부모님의 공감을 받는 것도 좋아했다. 부모님은 당신들을 닮아 아이마저 청각 장애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가득했기 때문에 헬씨가 멀쩡한 귀를 가지고 태어난 것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같은 두려움으로 더 이상의 아이는 갖지 않기로 했다. 유일한 아이, 헬씨는 그분들의 모든 것이었고, 모든 기쁨이었으며, 모든 이유였다.




건강한 헬씨에게 더 바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는 부모인가 보다. 아이가 똘똘하게 뭐든지 혼자 잘 습득하고 눈치껏 잘 배우며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착실하게 공부를 하니 점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정규직이 되어라. 이게 그분들의 소박하고도 견고한 소망이었고 아이에게 처음으로 드러낸 부모로서의 명령이었다. 뭐라고요? 헬씨는 뭔가 허탈감을 느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뭐든지 열심히 했는데, 이제 와서 단지 회사에 몸 바치는 정규직이 되라고요? 아니, 그냥 회사원도 아니고 '정규직'이라니. 무슨 아이를 향한 꿈이 저래? 헬씨는 이해가 되었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계약직으로, 잠시의 알바생으로 직업 전선을 전전해온 부모님. 장애인으로서 가지는 취업과 보장의 한계들. 맺힌 한이 서리서리 틀어져 헬씨의 바짓가랑이에 뻗쳐왔다.




헬씨의 헬스는 그래서 시작된 것이다.

부모님이 내려가 계시는 동안에 사고를 쳤다. 나는 큰 회사의 정규직 회사원이 되려는 게 아니다. 난 운동이 좋은데, 돈이 들 것 같아서 운동하고 싶다는 말을 못 했다. 사실 장애인 자녀 복지 혜택의 일환으로 스포츠클럽 이용권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걸로는 하고 싶은 운동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냥 간신히 헬스장을 다니는 수준. 태권도나 합기도 같은 걸 배워서 국가대표선수가 되고 싶은데, 매번 꾸준히 대회도 나가고 체육관에 붙어서 산다는 것이 우리 형편에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그동안 헬씨는 많이 참아왔다.

장애인 부모님, 이게 마냥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거다. 내 부모님이라서, 어쩔 수 없어서, 그래도 사랑하니까, 참고 버텼다. 누군가가 그냥 입에 붙은 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툭, 병신아, 하고 뱉어낼 때, 너무 거슬려 당장 멱살을 잡고 후려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버릇처럼 하는 말일 테니, 주먹 불끈 쥐다가 그냥 참았다.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갈 때, 아빠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곱 살 때부터 헬씨는 엄마가 병원에 가면 따라다녔다. 어린 나이에 TV에서 배운 눈치로 접수와 간호사의 호명과 진료 내용과 처방과 수납과 기다림에 관한 모든 것을 엄마에게 통역해주고, 엄마의 의사를 그들에게 통역해주었다. 병원만이 아니었다. 주민센터를 가든, 은행을 가든, 종종 다 같이 식당에를 가든, 헬씨는 부모님과 세상 사이의 다리가 되었다. 그걸 다, 헬씨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넉넉히 해냈다.




하지만, 진로는 다른 문제이다.

사랑? 감사하다. 장애? 안타깝다. 뭐 다 좋다. 하지만 내가 살고 싶은 미래까지, 사랑 넘치는 부모님의 장애에 얽힌 사연으로 인해, 다 오케이 하고 싶진 않다는 거다. 이참에 단단히 보여주리라. 안 계시는 동안, 내가 얼마나 운동을 원하는지 제대로 보여드리고 말 테다. 그래서 덜컥, 미스터 코리아 대회 고등부에 참가 신청서를 내고 말았다. 하다 보니 죽을 맛이다. 주 1회 아들과의 영상 통화를 통해 부쩍 여위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은 걱정이 되었다. 헬씨는 엄마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뜻밖에 부모님도 응원해주겠다고 했다. 이제 되었다. 우승만 하면 된다.




"이번 주말이에요, 쌤."

"그래, 이제 마지막이구나. 오늘내일만 잘 참으면 되겠다."

"제가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하긴 하는데요, 사실 또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운동이 쉽냐? 아우, 난 차라리 공부를 택할래."

"운동도 뭐, 짜릿한 맛이 있긴 한데요, 이걸 평생 하고 살 것인가, 이걸로 밥벌이할 것인가, 이건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게. 도전해보길 잘했다. 그래야 좀 신중할 수 있으니까. 잘 됐네."

"단기 목표로 가긴 가는데, 심란해서 사실 흥이 좀 안 나요."

"끝나고 나면 또 얘기해보자. 일단은 당장 이번 주말에 집중하도록 해. 파이팅!"

"아, 끝나면 진짜, 전국 삼겹살 죄다 조져버릴 거예요."

"금요일에 미리 먹어야겠다, 나는. 토요일 저녁부터는 너 다 먹으라고."




토요일 밤, 카톡이 왔다.

삼겹살 사진이다. 진짜 부모님이 일부러 오셔서 아이를 위로하겠다고, 삼겹살을 같이 먹나 보다. 그리고 이어진 사진 한 장, 깜짝 놀랐다. 이게 누구야? 세상에, 진짜 무슨 화보 사진처럼 헬씨가 대회 중에 뒤돌아 등 근육을 만들고 우렁차게 서있는 모습. 헬스장 관장님이 대회에 따라가서 찍어주신 사진들이 그야말로 프로 포토그래머의 작품처럼 빈틈없는 모양이다. 이게 우리 헬씨라고? 아무리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이게 두 달만에 완성된단 말인지. 고등부 입선. '입선'은 그냥 참가상 정도라고 보면 된다. 대단한 결과는 아니지만, 그 사진 한 장은 모든 걸 말해준다. 삼겹살을 나눠 먹으며 부모님과 헬씨의 소리 없는 대화가 아이의 진로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사실 헬씨의 부모님은 걱정이 많다.

두 분 다 선천적으로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예 날 때부터 듣지 못했고 어머니는 열 살이 채 되기 전부터 서서히 청력을 읽어갔다. 아이도 혹시 서서히 듣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아이의 건강과 몸 상태에 관심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런데 운동이라니. 이 녀석이 학교에서 농구하다 삐끗하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데,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보겠다고? 가뜩이나 장애인 부모를 두었다고 아이들이 놀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 못 배우고 못 벌어서 아이도 못 가르치고 부족하게 키우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 눈물과 기도로 키워왔다. 그래도 항상 밝고 건강한 아이가 대견하다. 부모 공경할 줄도 알고, 거스른 적도 없는 착한 아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운동이라니, 굳이 왜? 남겨줄 것도 없는데, 부모 다 죽고 없어도 홀로 남아 먹고 살 수 있도록, 그냥 대학 졸업하고 남들처럼 좋은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면 좋겠는데 말이다.




"뭐라고 하시니?"

"일단은 생각해 보겠다고 하시죠."

"그럼, 너의 마음은?"

"운동과 정규직의 교집합 찾기?"

"정규직, 비정규직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

"쌤은 정규직?"

"야, 그런 걸 물어보다니."

"쌤도 정규직, 비정규직 있는 거죠?"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물론 근로자 입장에선 매우 민감한 사안이긴 하지만, 그게 교사로서의 자질과 사명감에 영향을 주는 대목은 전혀 아니라고 봄."

"쌤, 운동과 정규직의 교집합은 그래서 뭐가 있나요?"

"많지. 하지만 난 조금 다른 교집합을 구해볼까 해. 운동과 네 성향의 교집합. 어때?"

"정규직 아니면 안 되는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일단 들어봐."




부모님의 영향이든 성품의 영향이든, 헬씨는 가르치는 걸 참 좋아한다.

심지어 잘한다. 설명도 친절하고 예시도 적절하며 군더더기도 없다. 엄마와 병원을 연결시켜 명확하게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도록 도왔던 통역, 단지 단어와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상황과 센스의 조합, 알맞은 뉘앙스로 서로의 의향을 딱딱 맞추어 전달한 바로 그 솜씨가 가르치는 실력과 그대로 이어진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통역도 참 좋겠지만, 그건 운동과 연결 짓기 쉽지 않으니. 체육 교사라든가 체육관 관장이라든가, 책임지고 가르치는 일, 게다가 헬씨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두루 대할수록 에너지를 더 많이 얻는 스타일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바로 그게 어쩌면 헬씨와 딱 맞는 진로가 아닐까 싶었다.




"체육 쌤. 어때? 넌 쌤이 어울리는데."

"쌤 좋죠. 으흠, 선수 아니고 쌤이라니, 그럼 뭐, 학교 선생님이 되거나 내 도장을 차리라는 거네요."

"그러게. 뭘 하든 대학을 꼭 가긴 해야겠네. 배워서 자격증을 따야 하는 분야이니."

"대학이라.. 사범대는 진짜 힘들잖아요."

"응.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 우린 특별 전형도 해볼 수 있어. 장애인 부모님을 둔 아이들에게 '기회 균형' 같은 전형이 있으니까. 경쟁할 대상이 우린 따로 있다 이거지. 어때?

"오호, 좋아요. 그렇게 되면 약간, 가능성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당신의 성향상으로는 매우 높고요, 그 가능성, 공부하면 더 높아지고요."

"제가 아무래도 미스터 코리아 해보길 잘한 것 같아요. 그쵸?"

"운동으로 밥 벌어먹기 힘들 것 같다고 하더니, 결국 운동에 공부까지 해서 밥 벌어먹어야 하게 생겼네."

"축복인가, 저주인가?"

"갓 블레스 유."

"알았어요. 쌤도 밥 블레스 유. ㅋㅋㅋ."

"밥? 야! 나 다이어트한다고!"




헬씨는 여전히 헬스를 다닌다.

끌려갔던 네 명의 친구들은 거기에 또 셋을 보태어 도합 여덟 명의 군단이 되었다. 대단한 영향력이다. 나는 종종 점심시간에 자기네끼리 자세 교정해가며 푸시업이나 스쿼트 등등 몇몇 코어 운동을 하는, 복도나 체육관 앞이나 급식실 앞에 차린 자체 헬스장에 가서 내 어정쩡한 스쿼트 자세를 교정받곤 했다. 헬씨는 늘 그럴 듯한 말로 내게 소질이 있다는 둥, 가능성이 보인다는 둥, 누가 봐도 뻔한 입에 발린 말을 하며 포기하지 않고 가르치려고 든다. 나는 속아주면서도 알 수 없는 희망 고문에 시달리다 못해, 진짜 가능성이 있는 것만 같아 종종 제대로 해서 바디프로필이라도 찍어야 하나, 하는 말 같지도 않은 고민을 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아, 이쯤 되면 이건 선생님이 아니라 회원 관리하는 헬스장 영업 실장을 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